북러 무기거래설에도 '담담'한 정부 대응 왜?
포탄 지원 필요성 제기
정부는 '기존 입장' 견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년 반 만에 러시아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만 하루가 지나도록 구체적 회담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정보력을 동원해 정상회담 일정을 공개한 이후, 국제사회 이목이 집중되자 북러가 일단 몸을 낮춘 모양새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14일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전날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담을 가졌다며 두 정상이 "국가부흥과 두 나라 인민들의 복리를 위한 앞으로의 발전방향에 대한 심도 있는 의견들을 나눴다"고 전했다. 경제 분야와 관련해 대북 식량 지원 및 북한 노동자 송출 등을 논의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통신은 두 사람이 "인류의 자주성과 진보, 평화로운 삶을 침탈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 위협과 도발, 강권과 전횡을 짓부시기 위한 공동 전선에서 두 나라 사이의 전략전술적 협동을 더욱 긴밀히 하고 강력히 지지·연대하면서 힘을 합쳐 국가의 주권과 발전 이익,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전, 국제적 정의를 수호해 나가는 데 나서는 중대한 문제들과 당면한 협조 사항들을 허심탄회하게 토의했다"며 "만족한 합의와 견해일치를 봤다"고도 했다.
구체적 합의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공동전선' '전략전술적 협동' '지역 및 세계의 평화·안전' '국제적 정의 수호' 등의 표현을 감안하면, 북러 협력 범위를 동북아 너머로 확장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공식적 핵보유국인 러시아가 '자칭 핵보유국' 북한의 '역할 확대'를 공인해 준 셈이다.
이는 중국이 생각하는 북중관계의 '위상'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북한 정권수립 75주년(9월 9일)을 맞아 김 위원장에게 보낸 축전에서 북중관계 발전을 통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 번영에 보다 큰 기여를 할 용의가 있다"고 했었다. 사실상 양자 협력 범위를 '지역'으로 국한시킨 것이다.
정부, 북러 무기거래 가능성에
"안보리 결의 준수 기대…지켜봐야"
북러의 전방위 협력 강화 가능성이 대두됨에 따라 정부는 구체적 합의 내용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대북 위성기술 이전을 비롯해 북한의 대러시아 포탄 지원, 북러 연합훈련 등 다양한 가능성을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위성 개발을 포함한 군사협력 문제가 논의된 데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북러가 살상무기와 첨단기술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 부분이 충분히 있을 것"이라며 "러시아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향후 행보는 그러한 것이 잘 준수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고, 조금 더 지켜봐야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러 간 '거래'가 국제법인 안보리 결의에 위배된다는 점을 러시아도 인지하고 있는 만큼, 러시아가 북한과의 과도한 밀착은 삼갈 거란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러 정상회담 관련 우려를 러시아 측에 전달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임 대변인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하는 위성을 포함해 핵미사일 개발에 기여하는 과학기술 협력은 안보리 결의에 의해 금지돼 있다"며 "북러 간 군사협력이 현실화될 경우 한러 관계에도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을 러(시아) 측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 입장을 의식한 듯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각)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의 방러 계획 관련 세부 사항을 모스크바주재 한국대사관에 전달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루덴코 차관은 "한국은 러시아의 교역 파트너"라며 "양국은 동북아와 한반도 안정화를 위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한국과 계속 접촉할 것"이라고도 했다.
정부, '장기적 관점' 강조
"장기적 관점서 러시아에
北보다 韓이 훨씬 중요할 것"
같은 맥락에서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러 정상회담 여파를 '긴 안목'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북러 정상회담이 우리 안보에 굉장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단기적 관점에서만 볼 게 아니고 장기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당국자는 "러시아 역시 북한과의 관계보다 대한민국과의 관계가 장기적 관점에서 훨씬 중요할 것"이라며 "과연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포탄을 얻는 것 외에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 지원도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그는 "일각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이뤄지니 우리도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면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가 대단히 신중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주변 세력들이 '행동'한다고 하루 이틀 사이 돌변해서 원칙과 접근법이 바뀌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군 당국 역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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