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李대표, 단식 접는 결단 내리길

손병호 2023. 9. 15.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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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16일째 단식 중인 야당 대표
민주주의 수호 내걸었지만
여권은 요지부동에 조롱만

국민들에 투쟁 이유 전달됐고
중요한 정기국회 중인 점 감안
단식 정국 속히 끝내야

'방탄 단식' 의구심 해소 위해
체포동의안 가결 호소와 함께
단식 중단하는 결단 내렸으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오늘로 단식 16일째다. 금주 들어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13일부터는 국회 본청 앞 천막에서 하던 단식을 당대표실로 옮겨서 하고 있다. 기력이 약해져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 다니고, 그냥 앉아 있기도 힘에 부쳐 대표실 안에서도 거의 누워 있는 상태다. 며칠 전까지도 그를 찾아오는 이들이 위로의 말을 하면 “아직 괜찮다”고 답했지만, 이제는 입을 여는 것조차 힘겨워하고 있다고 한다. 대표실로 장소를 옮긴 것도 저체온증으로 신체기능이 눈에 띄게 저하됐기 때문이다.

한 종교계 인사의 전언에 따르면 이 대표 부인 김혜경씨는 애초 남편이 단식을 하겠다고 하자 극구 뜯어말렸다고 한다. 이 대표가 10대 초반부터 공장 일을 하는 등 험한 환경에서 자라 여느 사람보다 몸이 약한데, 단식을 하면 자칫 몸이 크게 망가질 수 있겠다는 우려에서다. 이 인사가 이 대표를 찾아가 “부인이 요즘 울면서 기도만 하고 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얼른 단식을 접으라”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위로 방문하는 당내 인사들도 헛걸음하기는 마찬가지다. 상임고문단, 국회의장단 출신, 중진의원단은 물론 당내 최대 의원모임인 ‘더좋은미래’, 초선의원 모임 ‘더민초’, 김근태계 모임 ‘민평련’ 소속 의원들이 연이어 방문해 단식 중단을 요청하고 있지만 이 대표 마음을 돌리지는 못하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도 “금방 끝날 싸움이 아니지 않으냐. 이 대표가 얼른 건강을 회복해 나랑 같이 싸우자”고 간곡히 요청했지만 역시 대답은 “아직 견딜만 합니다”였다고 한다.

이 대표는 단식을 시작할 때 “현 정권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마지막 수단으로 사즉생의 각오로 이를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에게 민생 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표명, 국정 쇄신 및 개각 세 가지를 요구했다. 지금쯤이면 민주당 지지층이나 일반 국민들도 이 대표가 왜 목숨을 걸고 단식에 나섰는지, 왜 그런 요구 조건을 내세우고 있는지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처음 단식에 나섰을 때보다 동정 여론도 커졌을 수 있다. 민주당은 제1야당 대표의 보름 넘는 단식에 꿈쩍도 하지 않는 정권을 비난하고 있지만, 그런 여권에 대해서도 국민들 나름의 판단이 있을 것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한참 뒤늦은 14일 단식 중단을 요청했지만,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나 여당이 이 대표의 요구사항을 수용할 리는 만무하다. 이 대표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충분히 어필했고, 이어질 단식으로 더 얻어질 것도 없다면 이제 단식을 접는 게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무엇보다 지금은 시기적으로도 중차대한 때다. 곧 다가올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현 정부 지난 1년의 국정 운영을 점검하고, 이어 내년도 예산안을 촘촘히 짜야 한다. 그런 걸 철저히 하라고 야당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표 단식이 길어져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면 정기국회 농사를 망치는 것은 물론이고, 가뜩이나 어려운 민생이 더더욱 나락에 빠질 게 뻔하다. 이 대표가 단식에 나서며 ‘민생 파괴를 하지 말라’고 요구했는데, 지금은 단식 중단이 민생이 더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다.

아울러 책임 있는 야당 대표라면 본인을 지지하지 않는 ‘또 다른 쪽’ 국민의 의구심을 해소해줄 의무도 있다. 상당수 국민이 이 대표 단식에 대해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한 체포동의안을 무력화하기 위한 ‘방탄 단식’ 아니냐고 바라보고 있다. 이 대표 스스로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실제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온당하지 않겠는가. 이 대표는 비회기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영장심사에 응하겠다는 입장이나, 지금 정기국회가 열려 있어도 단식을 둘러싼 여야 대치 때문에 정쟁만 넘치는 상황에서 ‘회기 내’ 청구냐 아니냐는 구분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이 대표가 회기 중이라도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을 가결해 달라고 당에 호소하는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야당 대표의 단식을 여권이 줄곧 비아냥거리는 현실도 안타깝지만, 그런 ‘조롱의 정치’를 빨리 매듭짓기 위해서라도 이 대표가 속히 결단해야 한다. 이 대표가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할지가 내년 총선 때 국민의 판단에도 큰 영향을 미치리라 본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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