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 협력'으로 포장했지만 고립·제재 부를 자충수 [북·러 정상회담 긴급 좌담]

장세정, 정용수 2023. 9. 15.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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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푸틴의 '위험한 만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시찰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평양을 출발해 러시아를 방문 중이다. [AP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난 13일 '잘못된 만남'으로 한반도가 신냉전의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위험한 '무기 거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진단하고 앞으로 몰고 올 파장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대응 전략 등을 진단하기 위해 중앙일보가 긴급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장세정 논설위원의 사회로 진행한 좌담회에 주러시아 대사를 역임한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문상균 서울사이버대 겸임교수(전 국방부 대변인)가 참석했다.

「 여행 금지 인물까지 버젓이 동행
유엔 안보리 결의 정면으로 도전
북·러, 국제사회 고립 심화될 듯

한·미·일 공조 더욱 굳건히 하며
'신3축 체계' 등 안보역량 점검을
조율되고 통합된 대외 전략 필요

한·러 관계 중대 전환점 맞아

-4년 5개월 만의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을 총평하면.
▶위성락 사무총장=회담 준비 과정이나 장소 등을 고려하면 유엔 안보리 결의를 포함해 기존의 국제 질서와 규범을 완전히 무시하고 도전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협조도 어렵게 됐다. 한·러 관계는 전환점에 서고, 북·러 관계는 다른 점에서 이번이 전환점이 될 것이다.
▶박원곤 교수=김정은 위원장의 자충수다. 푸틴 대통령은 전범으로 판단이 난 상태다. 두 불량 국가의 정상이 만난 것은 국제사회의 고립과 제재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동시에 북한을 견제·제재하는데 동참할 가능성도 커졌다. 중국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발을 담그려 하지 않고 있는데 중국과의 관계도 복잡해졌다.
▶문상균 교수=보스토니치 우주기지에서 회담이 열렸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첨단 우주 관련 기술과 재래식 무기의 성능 개량이 필요한 북한, 여기에 북한의 소모성 전쟁 물자가 필요한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일치한 상황이라는 점은 과거의 정상회담과 결이 다르다.

지난 13일 열린 북·러 정상회담이 국제정치 구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중앙일보가 14일 외교·안보 전문가들을 초대해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사진 왼쪽부터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전 주러시아 대사), 문상균 서울사이버대 겸임교수(전 국방부 대변인), 장세정 중앙일보 논설위원(사회). 김성룡 기자


-가장 주목한 장면·발언·메시지를 꼽는다면.
▶위=우주 발사기지에서 두 사람이 조우하고, 발사장 현장을 같이 투어한 장면이다. 전 세계를 향해 치밀하게 계산해 내보낸 메시지다. 푸틴 대통령이 “위성 발사”라고 표현하며 북·러의 협력을 정당화하려 했지만, 이는 대북 제재의 빈틈을 찾으려는 시도일 뿐이다.
▶박=위성과 우주개발 분야는 아직 명확한 국제 규범이 없는 회색 지대다. 평화적 개발이라는 최소한의 명분을 찾으려 우주기지를 택한 것이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우주 개발을 통해 선대 지도자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푸틴은 전날 현지에 도착해 30분 동안 김 위원장을 기다려 절박함을 드러냈다.
▶문=올해 두 차례 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한 북한이 러시아의 기술을 지원받기로 한 것을 주목했다. 2019년 4월 방러 당시엔 총참모장 등 극소수가 수행했는데 이전과 달리 이번엔 대규모 군부 인사들이 동행한 것이 눈에 띄었다. 특히 이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조춘룡 당 군수공업부장 등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대상으로 해외여행이 금지된 인물도 포함됐다.

기술 전수, 생각만큼 쉽지 않을 듯

-무기 거래는 '빅딜'일까, '스몰 딜'이었을까.
▶문=노후한 미그기와 함정 등 재래식 무기 현대화와 관련한 거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그동안 의문시됐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재진입 기술이나 종말 유도와 관련한 기술 제공도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언급했던 핵잠수함 개발이나 북한 잠수함의 잠항 능력을 확충하기 위한 기술 지원을 눈여겨봐야 한다. 다만, 기술 전수에 합의해도 협상에서 넘어야 할 벽은 존재한다.
▶박=옛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는 핵심 기술을 이전하거나 제공한 적이 없다. 미그-29 부품 공급이나 식량 지원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핵잠수함 기술을 주더라도 실전 배치까지 15년 넘게 걸릴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스몰 딜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생각보다 북한과 러시아의 신뢰가 두텁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언제든 돌아설 수 있고, 북한도 이를 잘 알 것이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1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크렘린 궁은 "공개되면 안 되는 민감한 영역의 협력"이라는 표현을 썼다.
▶위=의미심장한 뭔가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안보리 결의에 저촉되는 것일 수 있다는 모호성을 드러낸 것이다. 행간을 굳이 읽어보자면 안보리 결의를 개의치 않겠다, 무시하겠다는 메시지로 봐야 한다.
▶문=북한은 이미 미사일 발사체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위성의 궤도 진입 기술과 정찰위성 렌즈 같은 정보 획득 수단을 협력하는 부분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정상회담 한 시간 전에 미사일 두 발을 쏜 의도는.
▶박=북한은 최근 외교 문법과 군사 문법을 새롭게 쓰고 있다. 과거엔 최고 지도자가 평양을 비우면 도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전술핵무기 탑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미사일을 쐈다. 핵 통제 능력을 보여주면서 김 위원장이 평양에 없어도 핵무기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매우 위험한 시도다.

합의문도 공동성명도 없는 회담

-이번엔 합의문도 공동성명도 없다고 했는데.
▶위=러시아는 합의문 등 문서를 작성하는 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회담은 푸틴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는 시점에 맞춰 급하게 진행됐을 수 있다.
▶박=반면 북한은 합의문을 잘 만들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자회견도 꺼린다. 합의문이 있더라도 내용이 공개되면 안 되는 민감한 것일 수도 있다.
-이번 회담이 향후 국제정치 질서에 어떤 영향을 줄까.
▶박=2019년 정상회담 때는 북한이 '보통 국가'를 추구하며 주변에 정상적인 모습을 어필(호소)하려 했다. 북한을 향한 국제사회도 당시엔 적대적이지 않았다. 이번엔 북·러 정상회담이 우크라이나전쟁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미국이 사전에 여러 차례 경고했다. 북한이 전쟁에 개입하면 이는 세계 질서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위=북한과 러시아는 비밀로 포장하겠지만,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북한의 무기 지원이 있을 것이고, 미국이나 서방의 제재 움직임이 예상된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직면할 수도 있다.
▶문=이렇게 북·러 군사협력이 가시화해 북한의 기술적 진전이 이뤄진다면 남북 대치와 대립 국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 입장에선 러시아를 뒷배로 대북 제재의 틀이 무너진 틈을 타 7차 핵실험이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 고체형 ICBM, 극초음속 미사일 등 유엔 결의를 대놓고 위반하는 고강도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9·19 합의를 위반하는 전술적 도발에도 대비해야 한다.

중앙일보가 14일 마련한 북·러 정상회담 긴급 진단 좌담회에 참석한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전 주러시아 대사)이 발언하는 가운데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와 문상균 서울사이버대 겸임교수(전 국방부 대변인)가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중·러 상대 외교 공간은 남겨둬야
-상황이 위중한데도 유엔 안보리는 아무런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위=기능부전 상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이미 기존 질서, 유엔 정신을 위반했다. 불행하게도 유엔 차원에 할 수 있는 것이 마땅치 않다. 독자 제재나 나토 또는 주요 7개국(G7) 등 유엔 이외의 조직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박=러시아와 중국은 그동안 북한에 뒷문을 일부 열어줬을지언정 기존 안보리 결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러시아가 동의한 기존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 최근 행위는 더 심각한 문제다. 러시아의 자기 부정이자 안보리의 정당성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다.
-한국은 이런 러시아에 어떤 신호를 보내야 할까.
▶위=우선 국제 규범과 안보리 결의 위반을 지적해야 한다. 독자적으로 하거나 한미가 연대해 경고 메시지를 발신할 수도 있다. 필요하면 개인과 조직을 제재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 제공도 고려하되 보완책도 생각해야 한다.
▶박=러시아에 대량살상무기(WMD)나 관련 기술 제공 등 '레드 라인(red line)'을 절대 넘지 말라고 신호를 보내면서도 더 적극적인 대러 외교 노력이 필요하다.

단호히 대응하되 기회비용은 줄여야
-북·러와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위=중·러 사이에 미묘한 공간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 기류가 있더라도 그걸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미묘한 흐름이 있지만 한·일,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는 와중에 중국과 러시아는 다른 길을 가기보다 공조와 연대에 방점이 찍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북·러 회담 이후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위=한·미 동맹이나 한·미·일 협력 강화는 맞는 선택이다. 그러나 과도한 액션은 리액션과 기회비용을 초래할 수 있어 범위와 내용을 신중하게 해 기회비용을 줄여야 한다.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되 중·러에 대한 외교 공간을 남겨 둬야 한다. 동시에 대외 정책 전반에 대한 조율되고 통합된 전략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박=한·미·일은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방향과 액션 플랜을 확보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러시아·북한에 대해서는 구체성이 잘 보이지 않다. 동시에 유럽과 나토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도 포괄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문=이번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군사력이 갑자기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중장기 계획의 그림을 다시 그리고 이를 토대로 군사 전력 향상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3축 체계(킬체인,한국형미사일방어,대량응징보복)를 재점검하고 보완해 ‘신 3축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잠재적인 핵보유국이 될 수 있도록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미국에 제안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정리=정용수 논설위원 ※윤지수 인턴 기자가 인터뷰 정리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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