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더 미루면 안 될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
제21대 국회 마지막 정기회가 지난 1일 100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번 회기에 처리해야 할 입법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무엇보다 유·초·중·고 교육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교육재정 교부금을 대학 교육에 사용할 수 있도록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
의무 교육에 필요한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1972년 제정한 지방교육재정 교부금법은 내국세의 일정 비율(현행 20.79%)을 각 시·도 교육청에 교부금으로 배정해 유·초·중·고 교육 지원에 활용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함께 자동으로 늘어나게 설계된 교부금 총규모는 2014년 약 41조원에서 2022년 약 81조원으로 증가했다. 올해도 약 75조원의 예산이 교부금으로 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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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등록금 통제로 실험도 못해
대학생 교육비 초등생보다 적어
대학 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해야
」
이처럼 사용처와 내국세 연동 비율을 법으로 명시한 지방교육재정 교부금법은 학생 수가 계속 늘어나던 시절에는 교육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대한민국 교육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경제성장과 함께 교부금 규모는 지속해서 증가했지만, 출생률의 급격한 하락에 따라 취학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남아도는 교부금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각 시·도 교육청이 중앙정부로부터 받은 교부금 가운데 사용하지 못하고 남겨둔 잉여금이 2021년 약 7조5000억원, 지난해엔 약 14조원이나 됐다. 이에 따라 각 시·도 교육청이 기금으로 쌓아 둔 적립금 규모도 2018년 4763억원에서 지난해 22조원을 넘어섰다.
돈이 넘치다 보니 관리 부실과 예산 낭비 사례가 전국 곳곳에서 불거져 문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 감사원이 발표한 감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사태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일부 시·도 교육청은 학생들에게 수십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하거나 노트북과 태블릿PC를 무료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등 예산을 방만하게 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멀쩡한 교실을 뜯어고치고 불필요한 도색 작업에 수백억원의 예산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초·중·고에서는 예산이 남아돌아 문제가 되지만 대학에서는 돈이 없어 아우성이다. 인구절벽으로 대학 입학 자원은 과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지 오래다. 특히 비수도권 대학은 입학 정원을 채우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14년간 대학 등록금이 동결되다 보니 상당수 대학은 기본적인 교육 운영비조차 마련하기 버거운 실정이다.
정년 트랙 교수가 퇴임한 자리는 신분이 불안정한 비정년 트랙의 단기 계약직 교수로 대체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실험실습비가 부족해 기본적인 과학 실험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교육의 위기다.
초·중·고와 대학의 교육 환경 격차는 1인당 공교육비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2년 10월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1만1287달러로 OECD 평균(1만7559달러)의 약 64%에 불과했다. 반면 초등학생은 1만3341달러, 중·고등학생은 1만7078달러로 OECD 평균(각각 9923달러, 1만1400달러)을 크게 넘어섰다.
또한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대비 정부재원 중 공교육비 비율도 초·중고는 3.4%로 OECD 평균(3.1%)을 상회했다. 하지만 대학은 0.6%로 OECD 평균(0.9%)에도 못 미쳤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대학생 공교육비가 초등학생 공교육비보다 적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처럼 대학 교육에 대한 투자가 인색한 상황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춘 인재 양성이 가능할 수 있을지 강한 의문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2021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 교육 경쟁력 순위는 조사 대상 64개국 중 47위에 그쳤다. 이처럼 한국의 대학 경쟁력 저하는 결국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대학 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번 정기국회 기간에 지방교육재정 교부금법의 합리적 개정이 시급하다. 법 개정을 통해 대학 교육에 대한 대폭적인 투자 확대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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