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노릇 안 해도 가족인가, ‘구하라법’ 언제 통과되나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지난달 31일, ‘아들 사망보험금 노리고 54년 만에 나타난 친모, 항소심도 승소했다’라는 뉴스가 뜨자 분노와 탄식이 쏟아졌다. 특히 많은 지지를 받은 댓글이 있었다. “아니, 구하라법 여태 통과 안 됐어? 국회는 대체 뭐하는 거야?”
2021년 폭풍우로 실종된 선원 김종안씨의 생모는 김씨가 두 살 때 집을 떠나 54년간 한 번도 자녀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의 누나는 항소심 후에 “부모로 인정해 주는 것이 말도 안 된다”며 “(생모에게 보험금이 가느니) 차라리 국가에서 환수해 어려운 사람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다. 자식을 돌보지 않고 그 죽음조차 이용하려는 모친을 “부모로 인정할 수 없다”는 외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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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년 만에 나타난 친모 항소심
“아들 사망보험금 받을 수 있어”
2020년 ‘상속권 제한’ 처음 발의
“국회는 뭐 하고 있나” 비판 쇄도
혈연과 자녀 부양, 뭐가 중요한가
‘가족’ 개념 싸고 두 법안 대립 중
」
“자식 죽음도 이용하는 엄마” 원성
예전부터 비슷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공론화된 것은 2010년대 이후다. 2014년 세월호 희생자 친부 사건, 2019년 가수 구하라씨 친모 사건 등에 사람들이 공분하면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민법 개정안, 일명 ‘구하라법’이 2020년 발의됐다.
구씨 오빠의 법률대리인이자 구하라법 발의를 도운 노종언 변호사는 “시대정신을 반영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방송인 박수홍 등 가족 간 부당한 관계의 피해자로 알려진 연예인의 법률대리인도 맡고 있다.
“과거 유교사회로부터 내려오던 ‘그래도 부모인데’ 같은 정서가 근대화 시기에 법제화되었고, 80년대까지도 그 정서가 강했어요. 하지만 민주화가 진행되고 자유주의가 퍼지면서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많은 사람이 예전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법은 그대로이니 괴리와 충돌이 일어나는 상황입니다. 구하라씨 유족 사건이나 박수홍씨 뉴스가 나오기만 하면 조회 수가 폭증하는데, 국민이 느꼈던 괴리감과 불편함이 연예인 사건을 계기로 표출된 것이죠.”
이런 변화는 문화 콘텐트에도 확인된다. 예전 드라마에서는 ‘막장 부모’도 결국 자식에게 용서받고 눈물 속에 화해하는 결말로 끝나곤 했다. 올해 히트 드라마인 ‘더 글로리’는 그렇지 않았다. 주인공(송혜교)의 엄마는 자식의 “첫 가해자”로서 자식이 용기를 내어 학교폭력을 고발했을 때 가해자 부모로부터 돈을 받고 고발을 무마한 후 돈을 들고 달아났다. 그리고는 되돌아와 “그래도 핏줄인데”라면서 자식을 이용하려 한다. 그러자 주인공은 “핏줄만이 할 수 있는 복수”로 응수한다.
정부와 국회도 구하라법에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관련법은 3년 동안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상속권 제한 방식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서다. 우선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민법 개정안을 냈고, 이후 법무부와 다른 여야 의원도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한데 ‘서영교안’과 ‘법무부안’이 대립 중이다. 법무부안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 발의된 것이다. 진영의 대립이 아니라 법리와 가족에 대한 관념의 대립이다.
우선 서영교안은 ‘상속결격사유 확대’ 방식이다. 현재 민법에서는 고인을 살해·살해시도하거나 유언에 강제 개입한 가족만이 상속 결격(자격 없음)에 해당하는데 여기에다 “양육을 현저히 게을리하는 등 양육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자”를 포함하자고 제안한다. 반면 법무부안은 ‘상속권상실선고제도’ 방식이다. 피상속인의 청구에 따라 법원이 자격 없는 이를 상속에서 배제한다고 선고하는 것이다. 피상속인이 청구를 미리 못하고 사망할 경우에는 법이 정하는 범위의 다른 상속인(예를 들어 구하라씨 오빠나 선원 누나 같은)이 청구를 할 수 있다.
서 의원은 지난 10일 상속결격사유 확대 방식의 구하라법 통과를 재촉구했다. 상속권상실선고 제도 방식은 “자녀가 사망 전에 부모에게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비상식적인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반면에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 의원 안도 의미가 있지만 법무부안이 좀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게 상속결격사유다’라고 폭넓게 규정하면 법적 안정성에 문제가 생긴다. 뉴스에는 누가 봐도 상속결격인 사례가 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경계선에 있는 사건도 많다. 상속결격사유 확대 방식도 어차피 ‘이 사람은 상속결격에 해당할 정도로 양육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라는 걸 소송으로 입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영교 의원 안 vs 법무부 안
서영교안의 입안을 도운 노종언 변호사는 “두 법안이 각자 장단점이 있지만 실무적으로는 사실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둘의 결정적 차이는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이념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서영교안은 “가족 의무를 하지 않으면 혈연이라도 가족이 아니다”라고 보지만, 법무부안은 “가족이긴 한데 상속받을 자격은 없다”라는 것이다.
“서구는 상속결격제도가 기본이다. 가족을 혈연이 아닌, 같이 살고 서로 도움을 주는 의미로 파악한다. 부모의 의무를 안 하면 바로 그때부터 부모 자격이 상실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한국의 민법 체계는 일본 법제를 많이 참고했는데, 도리를 다하지 않아도 일단 가족으로는 인정하되, 그 권리는 상실시키자는 것이다. 법무부안은 이러한 한국 민법 체계에 더 맞는 게 사실이다. 서 의원 안이 현대적 상식과 정의에 더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이 안으로 가려면 다른 법까지 전반적으로 다듬어야 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는 또 “사실 피해자들은 어느 안이든 상관없으니 빨리 구하라법을 통과시키라는 입장”이라며 “양쪽 안이 각기 장단점이 있는 만큼 조화롭게 해결해서 조속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가 발걸음을 더욱 재촉해야 한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가족의 개념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아예 혈연이 아닌 의무 중심 가족 개념으로 가야하는가, 아니면 혈연 중심 개념은 유지하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권리를 제한해야 하는가.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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