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인류의 위대한 유산
천명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2013년작 ‘고령화 가족’이 넷플릭스 영화 상위권에 오르내리고 있다. 영화는 콩가루 집안의 지지고 볶는 이야기다. 44세, 40세, 35세의 2남 1녀가 69세 엄마(윤여정)의 연립주택에 얹혀산다. 속수무책의 자식들은 화장품 외판 일을 하는 엄마를 중심으로 공전한다. 평소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지만 남이 가족을 건드리면 쌍심지를 켜고 달려든다.(※다량의 스포일러 있음.)
차남 인모(박해일)는 실패한 영화감독으로 찌질함의 끝판왕이다. 그런 인모가 사고를 치고 달아난 장남 한모(윤제문) 때문에 깡패들에게 끌려가 맞는다. 인모는 자신에게 사정없이 각목을 내려치는 덩치들에게 “잠깐 할 말이 있다”고 한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주저앉아 “우린 위대한 문명을 창조하고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도록 제도를 발전시키며 살아왔다”고 일장훈시를 시작한다.
“니들은 날 짐승처럼 다뤘어. 그건 단지 나 개인을 두들겨 팬 게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피 흘리며 이룩한 위대한 유산을 짓밟은 거야.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은 거라고.”
그렇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문명에 있다. 문명이 없다면 우린 그저 동물일 뿐이다. 아무리 더워도 옷을 입고, 화가 치밀어도 예의를 갖추고, 본능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은 문명 때문이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사회적이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다면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짓밟는 일이다.
지금껏 우리가 자부해왔던, 중요한 제도와 가치들이 흙탕물에 떠밀려 가는 느낌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의 마음도, 대화와 타협의 정신도, 진심 어린 자성의 순간들도 어디론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인모는 그래도 뒤늦게 반성이란 걸 한다. “니들한테 졸라게 맞으면서 든 생각인데 내가 오한모한테 참 ×같이 했더라고.” 거칠지만 들을수록 아름다운 대사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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