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학폭위가… “때린 아이를 피해자, 교사를 가해자 취급” [이슈&탐사]
대전 초등교사 비극 상징적 사건
정당한 훈계가 아동학대 덫으로
역할에 충실할수록 좌절에 휩싸이는 현실은 어디에서 왔을까. 국민일보는 대전 한 초등학교 교사 A씨의 죽음을 시작으로 한국사회에서 근절되지 않는 갑질과 감정노동 실태를 살펴본다. A씨의 유족은 A씨가 교사로서의 일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지만 세상이 변하지 않아 비극을 맞았다고 말하고 있다.
A씨의 남편 B씨(46)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A씨가 2019년 학부모의 민원과 고소에 직면했을 때 “나는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하느냐,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교사로서 정당한 지도를 했지만 학부모는 교장을 찾아 항의했고, 번번이 사과를 요구받는 쪽은 A씨였다고 한다. A씨에게는 반복된 민원으로부터 스스로와 일터를 지킬 힘이 없었다.
교직사회의 분노는 숨진 A씨의 경험을 공감하는 데서 온다. 학생 지도가 아동학대 피소로 이어진 사례는 비단 A씨만의 일이 아니며, 교사들에 대한 갑질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국민일보는 A씨가 2019년 대전 유성구의 한 초등학교 1학년을 지도하면서 겪은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회의록 내용을 14일 확인했다. 친구의 뺨을 때린 학생을 혼내고 교장실에 보낸 교사가 마치 학교폭력 가해학생이 된 것처럼 학폭위가 열려 있었다.
A씨의 2019년 근무 초등학교의 학폭위 회의록 내용에 따르면 이 학교는 그해 12월 학교폭력을 다루는 자리가 아니라면서도 사실상 A씨를 가해자 격으로 한 학폭위를 열었다. 친구의 뺨을 때렸다는 이유 등으로 A씨로부터 지도를 받은 학생의 학부모가 “자녀가 학교에 가는 것을 무서워한다”며 소집을 요구한 학폭위였다.
유족은 학폭위 개최 절차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학폭위는 학생끼리의 일을 대상으로 하며, 담임교사가 ‘관련학생’처럼 학폭위에 얽히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이 학폭위 위원장은 학교폭력을 다루는 자리가 아닌 아동보호조치 심의를 진행하기 위해 소집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수사기관에 고발까지 된 상황에서, 열릴 이유가 없음을 아는 이들이 학폭위를 연 셈이라며 유족 측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학생을 지도한 교사가 가해학생처럼 된 학폭위가 실제 열린 반면, 정작 필요한 학폭위는 열리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의록 내용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는 학폭위 개회를 요구한 학부모의 자녀가 친구를 때린 사실이 어느 정도 인정됐다. 한 위원이 ‘친구의 뺨을 때린 사건’에 대해 묻자 학부모가 “가볍게 때리고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진술한 것이다. 이 학부모는 최근 온라인에 글을 올려 “같은 반 친구와 놀다가 손이 친구 뺨에 맞았고, 선생님이 제 아이와 뺨을 맞은 친구를 반 아이들 앞에 서게 해 사과하라고 했다”고 밝혔었다.
애초 아동보호조치 심의가 논의된 자리일 뿐이라서 A씨는 학폭위에 출석하진 않았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법적 대응을 다수 대리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이런 학폭위는 처음 본다”며 “애초 대상이 아니면 열리지 않았어야 하며, 다른 폭력 사실이 발견됐다면 또 다른 학폭위가 열렸어야 한다”고 말했다. A씨와 함께 근무했다는 한 교사는 “어떻게 뺨을 때린 아이가 피해자가 되고, 교육한 교사는 학교폭력 가해자와 아동학대로 신고를 받아야 하느냐”고 했다.
A씨는 이 사건을 포함해 2019년 3~10월 다양한 내용의 아동학대 고소를 당해 조사전문기관의 조사, 경찰의 수사를 받았다. 검찰에서 최종 검토된 6가지 피의사실은 학생들을 ‘공개적으로 혼낸’ 행위인데, ‘뺨 사건’ 이외에도 △시험시간에 뒤를 돌아본 학생에게 “넌 0점이야”라고 말한 일 △다른 학생의 배를 때린 학생을 혼낸 일 △교실에서 지우개를 씹고 있었는데 “껌을 씹었다”고 하며 혼낸 일 △색종이를 가지고 놀았다는 이유로 혼낸 일 △다른 학생 책에 우유를 쏟은 학생에게 “네가 똑같은 책으로 사줘야 한다”고 혼낸 일이었다.
경찰은 A씨를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했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불기소결정서에 따르면 검찰은 A씨가 공개적으로 훈계한 것이 정서적 학대인지, ‘큰 소리 훈계’가 정서적 학대인지 등을 검토했다. 6가지 행위 모두에 대한 최종 판단은 “반드시 비공개적으로 혼내야 할 상황이라 보기 어렵다” “훈육을 넘어 학대 의도가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A씨는 민원과 고소에도 무작정 사과하지 않고 끝까지 교육했다 한다. ‘뺨 사건’ 학부모가 학생에게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A씨는 학생에게 “이만저만해서 너를 그리 지도했었다, 네게 상처를 주려 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 남편 B씨의 기억이다. 다만 A씨는 수사를 받은 뒤부터 담임이 아닌 교과전담 교사로 일했다.
A씨가 겪은 일은 교사들이 아동학대법상 ‘정서적 학대’의 모호성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돼 있다. 그의 무혐의 처분 기록 등은 지난 7월 ‘서이초 사건’ 이후 있었던 교원단체의 헌법소원 때 헌법재판소에 제출됐다. 교원단체는 전국에서 제보받은 50여 사례를 검토해 헌재에 의견을 제출했는데, A씨의 사건이 5번째로 언급됐다 한다.
A씨가 2019년 근무하던 학교의 교장이 현재 재직한 학교 교문 앞에는 “대전 교육의 수치”라는 내용의 조화가 놓였다. 대전교사노조는 “교권이란 교사의 특권이나 권위를 말한 것이 아니라, 교육할 권리와 일할 권리를 말한다”고 했다.
이슈&탐사팀 대전=이경원 기자, 이택현 정진영 김지훈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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