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책 한물갔나”…정통 경제학 서적이 더 인기라는데, 왜?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에 이어 저성장까지 ‘3고 1저’의 복합 불황 시대에 직면하면서 경제·경영서를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 재테크 서적만 찾던 2021~2022년과 정반대의 흐름이 나타난다. 현재 경제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한 ‘정통 경제학’ 서적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재테크 투자로 한몫 챙긴 뒤 이른 나이에 은퇴하는 ‘파이어족’ 유행도 꺾였다. 직장 내에서 성공하는 법을 안내하는 성공학과 경영 관리 책이 인기를 끈다. 투자 시장이 불황을 겪으면서 직장에서 ‘버티기’에 나선 직장인이 증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직장 내 생존 위한 성공학 서적도 눈길
최근 2년간 경영·경제 서적의 주류는 ‘재테크 서적’이었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투자 시장이 활황을 띠면서 투자 비법을 알려주는 서적 수요가 크게 늘었다.
실제로 2022년 상반기 교보문고의 경제 일반서와 재테크·금융서의 판매 점유율은 각각 24.1%와 75.9%를 차지했다. 경제 일반과 재테크·금융으로 분류된 책의 총 판매량에서 각 분류 항목이 차지한 비율이다. 2019년 각각 45.7%와 54.3%였던 것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재테크서는 2020년에만 전년보다 판매량이 93.5% 늘었다. 2021년에도 판매 증가율이 34.6%에 달했다. 반면 경제 일반서는 2020년에 판매량이 2.3% 줄었고, 2021년에는 16.4% 늘어나는 데 그쳤다.
흐름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금리가 오르면서 투자 시장이 위축됐고, 재테크 서적을 찾는 발걸음이 뚝 떨어졌다. 그 자리를 정통 경제학 도서가 차지했다.
인터넷서점 업체 예스24 집계 결과, 2023년 상반기 ‘각국 경제·경제사·전망’ 등을 다룬 경제 분야 도서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간 대비 45.4% 증가했다. 올해 7월과 8월 판매량 역시 전월 대비 각각 약 31%, 25% 늘었다. 예스24 관계자는 “경제 불안 속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독자들의 적극적인 활로 모색이 관련 도서 판매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통 경제학 서적과 더불어 성공학·경영 관리 역시 불티나게 팔렸다. 지난 2년간의 흐름과 상반되는 현상이다. 2020년대부터 재테크로 돈을 번 뒤 이른 나이에 일을 그만두는 ‘파이어족’이 쏟아졌다. 파이어족이 된 지인을 보고 박탈감을 느끼는 ‘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2022년 중반부터 각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고, 투자 시장과 산업 현장은 급격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경기가 위축되면서 막대한 돈을 단기간에 벌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오히려 유일한 밥벌이인 직장 내 자리마저 위태로워졌다. 예측하기 어려운 시장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미래를 대비하고 새롭게 적응할 것인가라는 화두는 자연스럽게 직장 내 생존을 목표로 이어졌다. 덕분에 ‘성공학·경력 관리’ 분야의 경제·경영서 구매량이 증가했다. 예스24 분석 결과, 2023년 상반기 ‘성공학·경력 관리’ 분야 서적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64.3% 늘었다.
경제 역사·글로벌 패권 관심
정통 경제학 서적 중에서도, 관심이 뜨거운 분야는 ‘경제사’다. 과거 경제 위기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독자들 손길이 이어지면서 경제사 분야 서적이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투자가 레이 달리오의 저서 ‘변화하는 세계질서’와 경제학도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비롯해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 ‘40일간의 산업일주’ 등이 상반기 예스24 경제 분야 스테디셀러 20위 안에 올랐다. 6월부터는 국제 경제 전문가 안유화 성균관대 교수의 저서 ‘더 플로’가 7월에는 오건영 신한은행 WM사업부 팀장의 ‘위기의 역사’가 인기를 끌며 순위가 상승 중이다.
레이 달리오가 지은 ‘변화하는 세계질서’는 정치·권력·경제의 패턴을 연구한 책이다. 레이 달리오는 지난 500년 동안 모든 부와 권력의 근저에서 반복되는 전 세계 주요 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역사적 패턴과 원인·결과를 도출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빅사이클’을 찾아냈다. 레이 달리오는 책을 통해 자본 시장을 움직이는 빅사이클의 실체를 상세히 소개한다.
안유화 교수의 저서 ‘더 플로’는 예약 판매를 시작한 6월부터 월간 판매량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예스24 경제 분야 베스트셀러 8월 1주 차 3위, 2주 차 2위, 3주 차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더 플로’는 과거부터 이어진 기술 혁신의 큰 흐름을 50년 경제 주기 ‘콘드라티예프 파동’에 대입해 분석한 책이다. 동시에 현재의 미·중 패권 갈등, 지정학적 문제 등 이슈도 집중 탐구한다. 과거와 현재 이슈를 함께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경제 흐름 전망을 짚어본다.
올해 7월 출간된 ‘위기의 역사’는 1997년 IMF 외환 위기부터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금융 위기, 2020년 인플레이션 위기를 차례로 파헤친다. 경제 위기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쉽게 풀어내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일명 ‘경제의 역사책’이라 불리며 7월 3주 차(7월 24~30일)와 4주 차(7월 31일~8월 6일) 판매량이 전주 대비 각각 31.8%, 19.7% 증가했다. 주요 구매 연령층은 40대(43.3%), 30대(24.4%), 50대(22.3%) 순으로 많이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공학·경영 관리 분야에서는 ‘몰입’ ‘일이란 무엇인가’ ‘사장학개론’ 등 서적이 화제를 모았다.
‘몰입’은 황농문 서울대 교수가 몰입의 과학적 효과를 풀어낸 책이다. 2023년 1월부터 7월까지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약 10배 폭증하며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이 펴낸 ‘일이란 무엇인가’는 8월 3주 차(8월 15~21일) 판매량이 전주 대비 약 50% 늘었다. 고 전 사장은 삼성전자 재직 시절 스마트폰사업부(현 MX사업부)의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책은 직장인으로서 고 전 사장의 성공 비법을 담았다.
김승호 회장의 경영학을 총망라한 ‘사장학개론’은 올해 4월 출간된 이후 8월까지 5개월 연속 ‘성공학·경력 관리’ 분야 월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 중이다. ‘사장학개론’은 해외에 널리 알려진 외식 프랜차이즈 ‘스노우폭스’를 성공시킨 김승호 회장의 비법을 정리한 책이다.
이 밖에도 ‘왜 일하는가’ ‘레버리지’ 등도 ‘성공학·경력 관리’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인기몰이 중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6호 (2023.09.13~2023.09.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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