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60세’ 10년 “청년 일자리 잠식” vs “되레 65세로 늘려야”

이희권 2023. 9. 1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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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수원시 노인 일자리 채용한마당'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년 60세가 법제화한 후 55세 이상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빠르게 늘었지만 대부분이 임시·일용직 근로자 또는 소규모 자영업자로 일자리의 질은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년 연장의 혜택이 노조가 있는 대기업 근로자에 집중돼 정작 노동시장 양극화와 세대 간 일자리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년을 65세까지 늘려야 한다는 노동계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경영계는 근속 연수에 비례해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형 임금체계’부터 먼저 수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14일 ‘정년 60세 법제화 10년, 노동시장 과제’ 보고서에서 정년 60세가 도입된 2013년 이후 10년 동안 55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 지표 분석 결과를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신재민 기자


최근 10년 사이 고령자들의 고용 지표는 꾸준히 좋아졌다. 2013년 대비 지난해년 55세 이상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8%포인트, 고용률은 4.3%포인트 증가해 같은 기간 전체(15세 이상)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폭(2.2%포인트)과 고용률 증가폭(2.3%포인트)보다 2배 높았다.

하지만 정작 취업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취약한 부분이 많았다. 고령 취업자 중 상용직 비중은 35.1%로 15~54세 핵심 근로 연령층의 상용직 비중(65.6%)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고정된 일자리를 얻은 고령자들이 그만큼 적었다는 의미다.

반면 55세 이상 고령 취업자 중 임시·일용직 비중(27.7%)과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비중(31.7%)은 전체의 60% 가까이를 차지했다. 경총은 “늘어난 일자리 상당수가 임시·일용직 또는 소규모 자영업자로 고령층 일자리의 질적인 개선이 미흡했다”고 분석했다.

신재민 기자


오히려 조기 퇴직자 증가세가 치솟으며 정년 연장 확산이라는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2013년 28만5000명이었던 정년 퇴직자는 지난해 41만7000명으로 46.3% 증가한 반면 명예퇴직과 권고사직, 경영상 해고를 이유로 지난해 일자리에서 이탈한 조기 퇴직자는 56만9000명으로 2013년 대비 76.2% 늘었다.

경총은 법정 정년 연장이 결과적으로 국내 노동시장에서 기업의 비용 부담을 증가시켰다고 주장했다. 정년 60세 법제화 이후 연공형 임금 체계와 맞물리며 기업 입장에서 임금 등 직접 노동비용은 물론 사회보험료, 퇴직금 등 간접 노동비용 부담까지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신재민 기자


특히 정년 연장이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게 경총 측 얘기다. 청년층 실업률은 최근 10년간 평균 8.7% 수준이었지만 정년 60세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16~2017년에는 9.8%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정년 연장으로 매년 1만~1만2000개의 청년 일자리가 잠식된다는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연구 결과도 제시했다.

경총은 “65세 고령자 고용 확보 조치를 의무화한 일본조차 고령자 고용에 따르는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법정 정년은 1998년부터 우리와 같은 60세로 유지하고 있다”며 “현재 노동시장 여건을 고려하면 법정 정년을 늘리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기아와 한국GM 등 완성차 3사 노조가 지난 2021년 국회 앞에서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는 내용의 법제화를 정부와 국회에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현대차 노조


반면 노동계를 중심으로 정년 연장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정년 60세를 65세 이상으로 단계적으로 늦추자는 내용의 고령자고용법 개정안이 포함된 국민동의 청원이 5만 명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국회 국민동의 청원은 공개일로부터 30일 안에 5만 명 이상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되며 심사에서 채택되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노동계는 “현재 국민연금은 소득 대체율이 낮기 때문에 고령자들은 연금소득만으로는 노후소득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노후 빈곤 예방과 고령자의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도록 정년 연장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경영계는 현재의 연공형 임금체계를 유연하게 개편하는 방식으로 고령층 고용 연장에 대응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임영태 경총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임금 체계 개편이 선행되지 않는 정년 연장 논의는 기업에 부담을 줄 것”이라며 “시대적 소명을 다한 산업화 시대의 연공급 임금체계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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