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간 안 쓰고 모아야 집 산다...집값 올리는 '정책 엇박자'
올해 한국에선 직장인이 26년간 연봉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고금리 기조를 이어가며 강력한 통화 정책을 펼쳤지만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는 완화하는 '정책 엇박자'가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은 당국에 정책 공조와 일관성을 주문하는 한편 "집값이 오를 거란 기대를 꺾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은은 14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현재 주택가격이 소득과 괴리돼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올해 집값(90㎡ 아파트 기준)이 가계 순가처분소득액의 26배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주요 80개국의 중위값(11.9배)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주택가격은 2020년 3월부터 빠르게 상승하다 기준금리 인상 등 영향으로 지난해 8월 하락세로 전환했지만,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확대하는 추세다. 올해 상반기 전국 아파트 매매(20만3437건) 중 31.3%(6만3683건)를 30대 이하가 사들이는 등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부동산 러시'가 재개된 영향이다.
'젊은 영끌족'이 돌아오면서 가계대출 규모도 확대됐다. 금융당국이 특례보금자리론을 공급하는 등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를 완화한 영향도 크다. 이는 고금리 시대에 집값 상승과 대출 확대를 부추기는 '정책 엇박자'로, 금융불균형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금융 불균형’은 과도한 레버리지, 자산가격 고평가, 과도한 위험추구성향 등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특히 한국에선 과거부터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금융 불균형이 누증돼 왔는데, 한은은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저하하고 부동산 경기에 대한 경제 취약성이 증대되는 등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위해선 관련 당국 간 공조가 필수적"이라며 “거시건전성 정책과 통화 정책이 반대 방향일 땐 정책효과가 반감되거나 불확실성이 증대된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주택가격이 오를 거란 기대가 유지되지 않도록 꺾는 정책이 있어야 금융 불균형 누증이 가라앉을 것”이라면서 “향후 대출 자금 수요를 꺾는 금융당국 조치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날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산정 체계 개선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는 “2~3개월의 시차를 갖고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책 효과와 거래 현황 등을 지켜보면서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또 “통화정책은 경기와 물가, 가계대출 상황을 고려해 상당 기간 긴축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또 "국내 금융불균형 해소 대책은 긴 시계에서 일관되게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7월 한은 경제연구원도 GDP 대비 부채 비율이 100% 상회했던 7개 국가의 사례를 들면서, 부채 비율이 100% 미만으로 내려가기까지 노르웨이·아일랜드의 경우 약 5년, 덴마크·네덜란드는 약 18년 소요됐다고 소개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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