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잡은 두 불량국가에 잇단 경고…제재 vs 버티기 체력전 돌입

정진우 2023. 9. 1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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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국제사회의 안보 질서를 흔드는 두 불량국가의 정상이 벼랑 끝에서 손을 맞잡으며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대응책 마련에 분주해졌다.

대통령실은 1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통해 북·러 정상회담 이후의 동향 분석과 대응 시나리오 마련에 나섰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 역시 이날 브리핑을 통해 북·러 군사 협력을 “중대한 우려”로 규정하고 “북·러가 무기 거래를 추진하기로 결정한다면 미국과 국제사회 모두로부터 좋지 않은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번 방러는 그 자체만으로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이다. 이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조춘룡 노동당 군수공업부장 등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해외여행이 금지된 인사가 김정은 수행단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유엔 회원국은 제재에 따라 여행금지 대상으로 지정된 인물의 입국을 허용해선 안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번 방러 수행단엔 이병철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 대북 제재에 따른 여행 금지 대상이 포함됐다. 연합뉴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정례브리핑에서 “안보리 결의에 따라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인사의 해외여행은 제재위원회의 면제가 없는 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러시아 '비토권'에 개점휴업 안보리


문제는 러시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정찰위성·핵무력잠수함 등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프로세스를 지원하기 위한 첨단 기술을 실제 북한에 이전하더라도 이를 제지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당장 국제 평화에 위배되는 불법 행위를 단죄하는 핵심 기구인 유엔 안보리는 정상적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비토(veto·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추가 대북제재 결의 등 안보리 차원의 구속력 있는 조치는 도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비토권을 가진 러시아가 비토권을 사용할 경우 북러 군사협력은 물론 핵 기술 이전 등의 극단적 불법 행위에 대한 구체적 조치는 도출되기 어렵다. AFP=연합뉴스.

물론 중·러는 북한이 탄도미사일 도발을 재개한 지난해부터 줄곧 안보리의 추가 대북 제재를 막아서며 북한과의 연대를 과시했다. 다만 당시 중·러가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불법 행위를 옹호하는 공범이었다면, 김정은 방러를 계기로 논의가 가속화할 핵무기 기술 이전의 경우 러시아가 주범에 해당한다. 결의를 준수하려면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제재하는 모순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한 정부는 미·일은 물론 유럽연합(EU) 등과 연합하는 추가 대북 독자제재 조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 북·러의 문제 행위에 경각심을 갖고 있는 자유주의 진영 여러 국가들이 각기 독자 제재를 취하는 방식으로 연합, 안보리 차원의 독자 제재와 유사한 효과를 발휘하겠다는 취지다.

미국의 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도 제재)도 유효한 카드다. 북한과 러시아 모두 미국의 독자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2차 제재를 통해 중첩적으로 범법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


EDSCG서 북·러 향한 경고메시지 발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이나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사안과 후속조치 등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인 이유다. 연합뉴스
다만 북·러 정상회담의 결과를 둘러싼 구체적인 정보 확인이 어려운 데다, 아직 무기 거래나 핵 기술 이전 등의 불법 행위 단서가 포착되지 않은 만큼 당장은 대북·대러 제재 등의 구체적 조치를 취하긴 어려운 상태다. 대통령실이 이번 김정은의 방러와 관련 지난달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당시 합의한 ‘공동의 이익·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위협에 대한 신속 협의’ 프로세스를 가동하지 않는 것 역시 아직 위협의 구체적 내용과 정도를 판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미는 일단 15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외교·국방차관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통해 북·러 밀착에 대한 강도 높은 경고 메시지를 발신할 예정이다. 또 핵 기술 이전 등 극단적 상황까지 염두에 둔 대비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의 방러와 북·러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사안을 중심으로 제재 위반 사안들을 추려낸 이후, 추가적으로 어떤 조치들이 이어지는지에 따라 제재의 범위와 강도가 정해질 것”이라며 “다만 북·러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결과는 ‘약속’일 뿐 아직 실제로 이행되지 않은 상태라 당장에 추가적인 강제 조치에 나서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제재 vs 버티기' 체력전 돌입하나


한미일 3국은 북러 군사협력에 대응해 공조 체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독자 제재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핵·미사일 고도화에 나서는 북한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하는 러시아 간의 군사 협력과 이를 제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맞대응은 버티기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재의 허점을 벌리며 품앗이를 하는 북·러 대 제재망을 점검하고 각국의 독자 제재 조치로 압박 강도를 높이는 한·미·일 간의 강대강 대치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물망 제재의 효과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공급할 무기가 고갈되거나, 러시아가 약속했던 인공위성 기술 등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을 경우 북·러 연대 역시 내부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과 푸틴은 이번 만남을 통해 북·러 간에 앞으로 지속가능한 형태로 모든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을 드러낸 만큼 핵 기술 이전 등의 극단적 거래까지도 상정한 최대 수준의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며 “현 정부의 기조인 ‘힘에 의한 평화’에 무게를 실으면서 자체적인 북핵 대응 전력을 증강해야 하고, 북·러 간 거래 동향에 따라 특단의 조치도 한·미 간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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