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사고 많았던 여름이여 가라

유영숙 2023. 9. 14. 15: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채워지길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유영숙 기자]

아침에 출근하는데 기분이 상쾌하다. 피부에 닿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어제 내린 가을비 때문인 것 같다. 아파트 둘레길 벚나무에 노란 잎이 제법 많이 매달렸다. 지금은 초록 잎이 더 많지만, 곧 노란 잎으로 덮이겠지.

땅에 떨어진 노란 잎을 하나 주워 가을 냄새를 맡아본다. 곧 가을이 올 듯하다. 주운 노란색 느티나무잎은 책갈피에 넣어 올해 첫 단풍잎으로 기억하려고 한다.
 
▲ 노란 잎으로 물들기 시작한 벚나무 여름이 물러나는 9월 중순, 노란 잎으로 물들기 시작한 벚나무가 가을 소식을 전해준다.
ⓒ 유영숙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었다. 봄을 시샘하여 급하게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긴긴 겨울을 떨쳐내고 싶어 조금 이른 듯했지만, 봄옷을 앞줄에 걸어놓고 월화수목금 한 벌씩 입으려고 했는데 몇 번 못 입고 뒷줄로 물렸다. 그 자리에는 여름옷이 자리 잡았다.
올여름은 유난히 빨리 찾아왔다. 봄인가 했는데 봄은 어디로 사라지고 바로 여름이 되었다. 그렇게 일찍 찾아온 여름은 무덥고 길었다. 사람들이 지쳤다. 물러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여름이지만, 이제 그 자리를 가을에게 물려주려나 보다.
 
▲ 올해 처음 책갈피에 끼워 둔 벚나무잎 떨어져 있는 벚나무 노란 잎을 주워 책갈피에 끼우고 가을을 기다립니다.
ⓒ 유영숙
 
올 여름엔 슬픈 일도 많았다. 태풍이 불고 폭우가 내려 산사태가 나고, 집이 부서졌다. 많은 이재민이 생겼다. 터널에 갑자기 물이 들어차서 자동차가 잠기고, 사람이 많이 사망하였다.

대낮 길거리에서 사람이 흉기에 찔려 사망하고, 쇼핑센터에서도 흉기 난동 사건이 일어났다. 소중한 대학생이 운명하였다. 동네 등산로에서도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서 사람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하였다. 올여름은 가장 무서운 계절로 기억될 것 같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준비 부실로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세계적으로 망신이었다. 많은 기업과 단체에서 물품을 지원하고, 중앙 정부에서 직접 나서서 챙겼다. 조금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태풍으로 대회를 중단하고 철수하는 일까지 생겼다. 오히려 잘 된 것 같기도 했다. 청소년들을 열악한 환경에서 보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까. 롯데 타워에서 만난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행복해 보여서 조금 다행이었다.

이 모든 일보다 가장 슬펐던 일은 서이초 새내기 교사의 사망이었다. 이 사고로 선생님들께서 교권 보호를 외치며 토요일마다 거리로 나섰다. 공교육 멈춤의 날을 진행하고 투쟁 아닌 투쟁을 하였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또 다른 죽음이 계속 이어져서 학교가 불안하다. 걱정된다. 더 이상 세상을 버리는 교사가 없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학교가 정상으로 돌아와 교사와 학생이 행복한 교육 현장이 되길 바란다.

여름이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 백로가 지났지만 낮엔 여전히 덥다. 아직 여름이 완전하게 물러날 생각이 없나 보다. 어쩜 추석 전까지는 이렇게 일교차 큰 날씨가 계속 유지될 듯하다. 올여름이 무섭다. 어서 슬픈 소식을 다 가지고 떠났으면 좋겠다. 여름을 몰아내고 싶다. 나쁜 일들과 함께 꽁꽁 싸서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다. 무슨 미련이 남아서 자꾸 뒤를 돌아보는지 모르겠다.

이제 여름에게 작별 인사하려고 한다. 그동안 곡식을 키워주고, 과일을 영글게 해 준 건 고맙다. 나무를 키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예쁜 꽃들을 피워준 것도 고맙다. 이제 떠나기 전에 풍년이 들도록 황금 들판을 만들어주고 가렴. 그리고 미련 버리고 멀리멀리 떠나렴. 슬픈 소식도 나쁜 일도 모두 품고, 소리 없이 떠나렴. 내년 여름에 다시 만나겠지만, 그때는 올해처럼 너무 덥지 않았으면 좋겠다.
 
▲ 여름을 추억하는 봉숭아꽃 어린 시절 여름이면 늘 들였던 봉숭아 꽃물이 생각납니다.
ⓒ 유영숙
  
어쩜 무더운 여름이 있어서 가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질 거다. 누구나 기다리는 가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가을에는 아름다운 소식이 많아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을이 짧게 머물다 지나가겠지만,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은 행복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