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푸틴에 밀가루 얻어가나…北 급한 '먹는 문제'도 다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열린 정상회담에서 밀·비료 지원을 포함한 농업 분야 협력을논의한 것으로 나타났다.북한 스스로 '절박한 과업'이라고 밝힐 정도로 정책적 우선순위에 올라있는 농업 문제를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북·러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무기 거래'를 축으로 하는 군사 협력뿐 아니라 경제, 교육, 극동개발 등 전방위 협력 강화를 시사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과의 만찬이 끝난 후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과 농업 문제에 관해서도 논의했다"며 "농업 분야에서도 북한에 무언가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회담 결과 북한의 탄환과 포탄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할 재래식 무기 지원에 대한 러시아 측의 반대 급부 리스트에 농업 협력도 올라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하는 등 식량 문제에 봉착한 북한은 지난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경제 발전을 위한 '12개 중요 고지"를 확정하고, 이 중에서 첫 번째를 '알곡'으로 내세웠다. 김정은은 지난 2월 말 농업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한 당 전원회의에서 "올해 알곡 생산량을 반드시 완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북·러 양국 간 농업협력은 2011년 김정일 국무위원장의 방러 당시에도 심도있게 다뤄진 의제였다. 당시 정상회담에 배석한 러시아 극동 지역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 의사를 밝혔다.
2014년에는 고명희 당시 농업부 부부장이 이끄는 북한 농업대표단이 하바롭스크를 방문해 연해주 농업국장과 농업·축산분야 협력을 타진하기도 했다. 당시 북한은 연해주 지역에서 1만 ha 이상의 농지를 빌려 각종 채소 재배와 목축, 농산물 가공 공장을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양국 간 농업협력은 농지가 부족해 산비탈까지 개간해 동사를 짓는 북한과, 광활한 농지를 가졌지만 농업에 투입할 노동력이 부족한 러시아의 입장이 맞아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러시아 지역에서도 농기계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노동력 투입 만으로는 대규모 재배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게서 기대하는 건 비료라는 관측도 있다. 김일한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교수는 "러시아는 질소 비료를 비롯해 주요 3대 비료 생산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제재로 수출길이 막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충분한 양의 지원이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낮은 생산성을 보이는 북한 농촌에 비료를 투입할 경우 상당한 증산(增産) 효과를 내며 곧바로 가시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북한의 비료 수급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복합비료 1t을 추가로 투입할 경우 쌀 증산 효과는 대략 2~3t 규모로 추산할 정도로 비료의 식량 증산 효과는 절대적"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에서도 서구식 식생활이 확산하면서 밀가루 수요가 늘고 있어 밀 재배 경험이 풍부한 러시아와의 관련 기술 협력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북한 입장에선 밀은 겨울 작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모작이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러시아산 밀가루 또한 수출길이 막혀있어 북한이 수출 대상이 될 수 있다.
농업이나 식량을 비롯한 인도적 지원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서 일정 부분 자유로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 지원에 대한 반대 급부로 농업이나 식량 지원이 이뤄진다면 문제의 소지는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최근 식량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농촌진흥청이나 국제기구가 내놓은 북한의 식량 작물 생산량 추정치를 보면 아사자가 대량으로 발생할 만큼 북한 내 식량 생산량이 급감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 내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한 것은 당국이 식량 유통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분배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측면이 있다"면서 "식량 문제 해결을 넘어 김정은이 강조하는 전쟁 준비와 연관해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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