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 더는 참기 힘들다…케이팝, 문화로서 존중받아야” [존중 못받는 케이팝②]
"대중문화산업 도박판에 비유한 '그알' 피프티 편 불쾌"
“K-컬처를 세계 문화의 미래로 발전시키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지원 공약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당시 윤 대통령의 말을 빌려,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K-콘텐츠기업의 글로벌 진출이 용이해졌다. 그런데 지난달 잼버리 콘서트가 진행되기까지의 과정들에선 정작 K-콘텐츠의 글로벌화를 주도한 케이팝(K-POP)에 대한 존중은 보이지 않는다.
가수들의 스케줄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 잼버리 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해 크고 작은 희생들을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아티스트가 대중 앞에 서기 위해서는 여러 준비가 필요하다. 스스로가 갖추어야 할 연습과 노력뿐만 아니라 안전한 무대, 충분한 리허설, 세심한 연출, 이를 도울 스태프들까지 갖추어야 한다. 사전 준비 기간 없이 대형 공연을 소화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런 조건들에는 무관심했다.
과거 나훈아의 경우 2002년 평양 단독 공연 제안을 고사했는데,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당시 북측이 한국 공연 스태프와 악기의 반입을 불허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제대로 장비가 갖춰지지 않은 곳에선 노래하지 않겠다는 소리꾼의 고집이었다. 가수는 무대로 자신을 증명한다. 제대로 된 가수라면 단순히 돈과 명예를 위해, 또 이슈를 위해 준비도 되지 않은 무대에 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한 가요 관계자는 “아직까지도 ‘대중음악은 천하다’라는 인식으로 시작해서 ‘여론은 대중음악을 이용해서 쉽게 막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대중음악을 이용하는 데는 거침이 없지만, 정작 이들이 몸 담고 있는 산업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못해 관심조차 없다. 결국 이용만 할 뿐, 대우나 처우는 고려하지 않는, 여전히 문화 선진국에는 도달하기 힘든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국방부는 현재 군인 신분인 방탄소년단이 (잼버리 콘서트에)모두 함께 참여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일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주시길 바란다”며 “방탄소년단과 함께 세계 청소년들이 담아가는 추억은 또 다른 대한민국의 자산이 될 것이다. 마지막까지 대한민국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국방부는 선제적으로 대응해주시길 바란다”라고 말해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발언을 두고 “연예인을 막 대하는 정치인들의 우월적인 사고의 민낯”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가요 기획사 대표는 “이미 실추된 잼버리 대회를 만회하기 위한 방법들을 고안했을 때 가장 먼저 연예인 동원이 나왔을 것”이라며 “연예인은 언제든 불러낼 수 있다는 오만함의 결과다. 체계가 서지 않은 국가 행사의 파행을 연예인으로 덮으려는 시도는 문화를 정치에 예속된 것으로 밖에 보지 않았던 구시대적 방식을 연상시키는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케이팝에 대한 존중 없는 태도를 보여준 건 잼버리 콘서트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1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소속사와 전속계약 관련 분쟁을 겪고 있는 피프티 피프티 사건을 다루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소속사와 아티스트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대중음악씬을 ‘도박판’으로, 대중음악 종사자들을 ‘도박꾼’으로 폄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국매니지먼트연합과 한국연예제작자협회 등은 즉각 입장문을 냈다. 이들은 “기업 활동과 사업 구조를 카지노 테이블과 칩을 사용해 재연해 대중문화산업을 도박판으로 폄하하고 정상적으로 기업 경영을 하는 제작자들을 도박꾼으로 폄훼했다”고 지적하면서 “SBS에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징계를 요구한다. 시청자 권익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SBS에 대해서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가수와 제작자를 비롯한 업계 종사자들이 무대를 존중하고, 자부심을 지키는 태도가 지금의 세계화의 바탕이 됐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글로벌 그룹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그룹인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하이브는 올해 상반기 매출 1조316억원(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반기보고서)을 기록했다. 이 매출 중 63.3%에 해당하는 6526억원이 해외에서 나왔다.
엔터테인먼트 홍보 관계자는 “하이브를 비롯해 국내 가요 기획사들이 해외에서 높은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케이팝이 최고의 수출 콘텐츠’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면서 “이러한 세계적인 영향력의 바탕엔 아티스트와 제작자들의 노력, 즉 무대에 대한 존중이 있기에 가능했다. 세계 무대를 뛰고 있는 아티스트와 케이팝 씬이 더욱 성장하려면 업계 종사자들은 물론 국내에서 케이팝씬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달라져야 한다. 하나의 문화로서 케이팝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바랐다.
존중 없는 인식에 불만만 쏟아내는 건 아니다. 정준일, 디어클라우드 등이 소속된 음악 레이블 엠와이뮤직을 운영하면서,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윤동환 대표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이고, 인식되는 것은 본인 스스로가 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음악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서 큰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 이젠 한국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인식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혐회를 비롯해 음악 단체들은 함께 음악산업의 전문화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함께 존중받을 수 있는 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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