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보면 안다, 떠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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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정 기자]
▲ 떠버기 가방 떠버기 가방 |
ⓒ 박유정 |
앞서 고전문구에 대한기사를 쓴 적이 있다. 기사는 내 예상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나는 고전문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에 놀랐다.
[관련 기사]
"재고 발견하면 연락 달라" MZ세대 사로잡은 '고전문구' https://omn.kr/1zfpu
나는 꽤 오랫동안 고전문구(시대와 관련 없이 개인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오래된 문구)수집가로 살아왔다. 색종이, 샤프펜슬, 캐릭터 인형, 집게 등등 아주 다양한 문구 팬시들을 모아왔다.
내가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고전문구만이 가지는 분명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각각의 문구류, 추억의 캐릭터를 소개하여 나만이 기억하고 있는 나의 오래된 꾸러기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바른손 꼬마또래의 '떠버기'이다.
80~9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보면'아, 이거!' 하고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던 아이이다. 커다란 입에 낙서한 듯한 머리카락이 특징인 꼬마로, 칩칩스타, 태비치로, 리틀타이니(후에 모두 설명하도록 하겠다) 보다도 꼬마 또래라는 캐릭터 브랜딩에 가장 잘 맞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 순끼 작가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 휴지통 |
ⓒ 순끼 |
위 사진은 9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한 네이버 웹툰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순끼 작가)의 한 장면인데, 주인공의 방 쓰레기통에 그려진 캐릭터가 바로 떠버기이다. 떠버기 상품을 살펴보면 안경을 쓴 떠버기, 자고 있는 떠버기 뿐만 아니라 아라비안나이트에 간 떠버기, 우주인 떠버기 등 별의별 종류가 다 있다.
이 무수한 떠버기들 중 내가 처음 만난 떠버기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떠버기였다.
나는 언니와 남동생이 있는 차녀였다. <반올림>의 옥림이, <응답하라1988>의 덕선이를 본 사람들이라면 3남매 중 둘째, 차녀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내가 8살이 되었을 때, 나의 초등학교 입학은 우리 가족에게 그리 큰 이슈가 아니었다.
남동생의 감기, 언니의 첫 학력상 등이 당시의 이슈였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나는 울고 떼쓰는 말랑한 애가 아니었다. 나는 알림장을 보고 스스로 가방을 챙기는 단단한 애기였던 것이다.
어느날은 아침에 학교 앞에 다 도착했을 때, 덜컥 준비물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8칸 공책을 준비해 오라고 알림장에 썼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돈이 있을 리 만무했고, 한참을 방설이다 일단 문구점에 들어갔다.
들어가서도 괜히 물건들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 9시가 다 되어 애들이 모두 교문 안으로 들어가 나와 문방구 아줌마 둘만 남을 때까지도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너 1학년이지?"
문방구 아줌마가 말을 걸어왔다. 그 시대의 문방구 아줌마들은 학년 별로 어떤 준비물들이 있는지를 모두 암기하고 있는 정보요원들이었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내가 대답을 하고 가만히 있자 아줌마는 "잘됐다. 아줌마 좀 도와줄래?" 하고 물었다. 나는 교문 밖으로 수업시작 종소리가 울릴까 봐 불안했지만 별로 곤란해 보이지 않는 아줌마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줌마를 따라 어두운 문방구 구석으로 갔다. 아줌마의 부탁은 엉뚱한 것이었다.
"여기 낡은 게 너무 많아서 가면서 몇 개만 버려줄래?"
그렇게 말하고 아줌마는 먼지 쌓인 납작한 것들을 몇 개 꺼냈다. 나는 그게 뭔지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때였다.
"비닐은 아줌마가 치울 테니까 이것만 버려주면 돼."
아줌마가 먼지가 쌓인 비닐을 벗기자 그 안에는 새 것 같은 공책이 있었다. 8칸 공책이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었다. 비닐 안에는 양탄자를 타고 활짝 웃고 있는 떠버기의 얼굴이 있었다. 내가 알았다며 공책을 가방에 넣자 아줌마는 이제 곧 종이 치겠다며 나를 내쫓듯 학교로 보냈다.
그 덕분에 나는 '말듣쓰'(말하기, 듣기, 쓰기) 시간에 준비물을 못 가져온 애가 되어 독립적인 둘째로서의 명예를 잃는 곤욕을 피할 수 있었고, 떠버기의 웃는 얼굴과 아줌마의 부탁은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남았다.
당시에는 약속을 어겼다는 생각에 무서워 그 문방구를 피해 다른 문방구까지 돌아서 학교에 가곤 했지만 자라고 나서 생각해보면 아줌마는 시골마을의 수호천사였던 것 같다. 그렇게 아줌마를 통해 나에게 온 떠버기. 그 얼굴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고전문구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줌마와 떠버기도 한몫 했을 것이다.
정겨운 낡은 꾸러기 캐릭터들에 마음이 끌리는 것에는 뽀얗게 피어오르던 사랑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 떠버기 일기장 떠버기 일기장 |
ⓒ 박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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