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가장 비싼 것_돈쓸신잡 #115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국내에 출간됐다. 곧바로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차지했다. 하루키 문학에 대한 호불호는 꽤 오래된 논쟁거리다. 하지만 현존하는 작가 중 하루키만큼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인물이 많지 않다는 건 논쟁 여지가 없다.
나는 한때 두 가지 이유로 그리스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정확히는 그리스의 섬이 궁금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작품 속 배경인 크레타 섬에 대해 상상해 봤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하루키의 에세이 〈먼 북소리〉다. 하루키가 80년대 후반에 3년 동안 유럽에 머물던 경험을 담은 글이다. 그는 그리스의 작은 섬들에 머물렀고, 그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글을 썼다.
하루키는 일본인이지만 굳이 일본에만 머물지 않고, 전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곳에서 얼마간 체류하며 글을 썼다. 그가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일찍이 경제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우리나라에서만 선인세로 10억 원 이상을 받는 작가다. 책을 팔기도 전에 이미 10억 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출판 시장 규모가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일본에서도 이번 신작 역시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무엇보다 이런 슈퍼스타 지위를 30년 이상 누렸을 정도니 그는 문학이 아니라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어마어마한 업적을 세운 작가다. 결국 그가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통해서 사들인 가장 값진 것은 바로 자유다. 그는 경제적으로 성공했고 그 결과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렇다고 시간이 과연 모두에게 공평한 자원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시간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가장 값진 가치다. 일을 전혀 안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사람은 경제적으로도 부자이겠지만, 본질적으론 시간 부자다. 사람들이 부자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단지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관건은 돈이 많기 때문에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배당주에 투자해서 1년에 배당금으로만 200만 원을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최저 시급으로 따지면 200시간 정도를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이 돈을 내가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고도 자동으로 들어오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은 200시간을 사는 것과 같다. 하루키가 수십 년 동안 꾸준히 글만 쓸 수 있는 이유는 일찍이 시간적 자유를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 위해서라도 돈은 필수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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