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세계 90개국 방랑하며 오감체험…'여행픽션' 쓰고 싶었다"
세계 누비기 위해 독신·자유 추구
4년 전 스포츠마케팅 회사 정리하고 본격 글쓰기
"대중적이고 쉬운 재미 전하는 작가 되고파"
‘국제탐정K 달의 두 얼굴’(지도없는여행)의 작가 최범석(56)은 ‘반더루스트’다. 방랑벽이라는 독일어 뜻처럼, 그는 일평생 자유를 추구하며 전 세계를 누볐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중학생 시절을 독일 등지에서 보냈고, 고등학교는 미국에서 나왔다.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 경제학, 독문학을 전공하고, 서울대와 하버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껏 여행한 나라는 90여개국, 한 달 이상 머문 나라만 40개국에 달한다. 학창 시절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이 마련되는 대로 세계여행에 나섰다.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부의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자신이 늘 ‘부자’였다고 고백한다. 그의 말처럼 정말 원 없이 세계를 떠돌며 자유를 만끽했다. 자유의 무게를 알기에 행여 무책임한 남편, 아버지가 될까봐 일평생 독신으로 살면서까지 추구해온 자유. 그 자유의지로 이번엔 소설가에 도전했다. 지금까지 에세이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 ‘서울에 있는 나의 섬, 학소도’ 등을 냈지만,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옴니버스 형태로 세계를 방랑하며 오감으로 느낀 이야기를 풀어냈다. 작업실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머무는 서울 인왕산 인근의 고향집 ‘학소도’. 전작 이후 13년 만에 탐정소설의 외피를 두른 여행소설 ‘국제탐정K 달의 두 얼굴’로 돌아온 최범석 작가를 마주했다.
-근황이 궁금하다.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회를 비롯해 수십 년간 스포츠마케팅에 몸담았다. 4년 전 20년간 운영한 스포츠마케팅 회사를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젊을 때부터 글을 쓰고 싶었지만, 밑작업을 하다 보니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그러던 중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작정하고 펜을 들었는데 이상하게 한 글자도 써지지 않더라. 번아웃인 것 같아 6개월을 혼자 배스 낚시만 다녔다. 글은 올해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하루에 15시간씩 썼다. 500페이지 초고를 4주 만에 썼다. 한 달 쉬고 편집해 2달 만에 완성했다. 결론을 정하지 않고, 써지는 대로 즐겁게 썼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첫 소설 ‘국제탐정K 달의 두 얼굴’을 출간했다. 집필 계기는.
▲돌아보니 10년에 한 번꼴로 에세이를 출간했다. 근데 사실에 기반한 에세이에 상상력을 더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 오래 머물며 얻은 독특한 소재를 좀 더 풍부하게 묘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흥미로운 내용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싶었다.
-주인공 탐정이 전 세계를 무대로 벌이는 이야기를 담았다. 탐정물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같이 탐정 이야기를 주축으로, 새로운 여행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서구에는 ‘트래블픽션(travel fiction)’이라는 오랜 문학 장르가 있다. 서구 첫 소설이라 할 수 있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도 알고 보면 여행소설이다. 생각해보면 과거 ‘열하일기’처럼 분단 이전 작품들은 스케일이 컸다. 반면 현대문학은 배경이 제한되는 느낌이다. 세계를 배경으로 제가 가본 곳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재미 요소로 탐정을 등장시켰지만, 탐정소설보다는 여행소설에 가깝다. 자극적인 트릭과 큰 업&다운(극적인 전개)이 없다. 한국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벌이는 우정, 사랑, 삶을 담백하게 적어냈다. 평양냉면처럼 싱거운 맛일지 모른다.(웃음)
-주인공 이름이 알파벳으로 표기된 경우가 많다. 오히려 조연은 현지 이름이던데, 특별한 의도가 담겨 있나.
▲여행소설인 만큼 현지인 조연을 주목받게 하기 위한 의도다. 주인공 역시 국적을 제한하고 싶지 않았다. 이름을 정하는 순간 그 틀에 갇히게 된다. 한국인일 수도 있고, 독일인일 수도 있다. 지구촌을 사랑하는 모습을 제 방식대로 소설이란 장르로 표현하려는 시도였다.
-집필하면서 겪은 애로점은 없었는지.
▲앞에서 말했듯 여행소설이란 장르를 잡기까지가 어려웠다. 나만의 스타일을 잡으려고 고심했고, 그 결과 탐정소설도 그렇다고 순정소설도 아닌 여행소설의 구도를 잡게 됐다.
-제목에 있는 ‘달의 두 얼굴’이란 글귀는 마크 트웨인이 말했던 "달과 같아서, 타인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면을 지닌다"의 의미가 담긴 듯하다.
▲지구촌에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는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탐정을 주인공으로 삼은 건 그런 양면을 다루기 위함이다. 조화롭게 사는 것 같지만, 실상 사람은 두 얼굴을 하고 산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자유가 버거워 또는 안정된 삶이 진부해"란 문구가 나온다. 대다수 사람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일상을 살아내고 있을 텐데, 본인은 어떠한지.
▲1999년 출간한 첫 에세이 제목이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이었다. 말 그대로 자유가 주제였다. 돌아보면 정말 자유를 위해 살아왔다. 대학 시절부터 자유를 진지하게 고찰하며 추구해왔다. 90개국 이상을 여행했고, 한 달 이상 머무른 나라만 40개국 정도 된다. 행여 자유에 방해가 되고, 가족에게 무책임해질까 봐 지금껏 결혼도 안 했다. 지금 사는 ‘학소도’를 베이스캠프 삼아 평생 살고 싶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주변이 다 개발됐다.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내용처럼 언젠가 불도저로 밀리는 날이 올 것만 같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이후에는 해외로 나가 여기저기 떠돌며 살려고 한다. 이건 20대부터 꿈꿔왔던 삶이다. 부모님 곁에 잠시 있어 드리고, 사회생활을 경험하려고 했는데, 벌써 30~40대가 훌쩍 지나갔다. 이제는 다시 전 세계를 누비고 싶다.
-자유의 무게가 버겁지는 않나. 자유를 대하는 어린 시절의 느낌과 지금이 다를 것도 같은데.
▲자유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다 가질 수 없기에 나 역시 많이 포기했다. 결혼부터 사회적으로 누릴 수 있는 많은 혜택을 버렸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감당해야 할 비용이 존재한다. 자유 선택을 이기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책임을 충분히 의식한다면 그건 좋은 이기주의(개인주의)다. 다만 요즘 사회 분위기를 보면 자유에서 책임이 간과되는 것 같다. 자유를 요구하면서 책임을 거부한다면 그 비용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 지불해야 한다. 자유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외로움을 감당할 준비도 매우 중요하다.
-외로움은 어떻게 감당하나.
▲고독은 자유의 그림자다.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그게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도록 트레이닝해야 한다. 마땅히 감당해야 할 대가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외로움은 육체·정신으로 구분되는데, 정신적 외로움은 독서로 해소하는 편이다. ‘학소도’에 살면서 식물을 만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식물의 세계는 어마어마하다. 모르면 그냥 ‘풀’에 불과하지만, 주변 식물 이름만 알아도 삶이 풍요로워진다. 낚시도 그렇다. 잡고 그냥 풀어준다. 자연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는 건데, 그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산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도전일 수도 있다. 최근에는 1인 출판사를 설립했다. 이번 책도 ‘인디자인’ 등의 프로그램을 배워가며 모든 과정을 제가 직접 작업했다.
-굳이 1인 출판사를 설립한 이유가 있나.
▲책은 제 자식과 같다. 어울리는 옷을 골라 입혀야 하는데, 그걸 작가가 가장 잘 알지 않나. 그런 특권을 누리기 위해 설립했다. 글을 쓸 때와 책을 만들 때 쓰는 뇌가 다르다. 매우 즐겁게 작업했다.
-본인에게 소설은 어떤 의미인가. 독자에게는 어떤 존재로 가닿길 원하나.
▲소설은 재미있게 잘 읽혀야 한다. 평가는 제각각일지라도 많은 독자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르는 책을 내고 싶다. 비평가의 그럴듯한 평을 기대하지 않는다. 비평가들의 카르텔은 끝났다고 본다. 이제는 독자가, 인터넷이 실시간으로 평을 공유하는 시대가 됐다. 이제는 대중적이고 쉬운 재미를 전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후속작도 준비하고 있나.
▲28년 전 하버드 대학원을 휴학하고 파리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에서 6개월 머물면서 쓰기 시작한 소설을 다시 꺼내어 작업 중이다. 하버드 대학원생들이 세계를 배경으로 펼치는 이야기다. 450쪽에 이르는 첫 장편소설이다. 고칠 부분이 거의 없더라. 공중전화나 자동응답기 등 시대와 안 맞는 내용만 현 상황에 맞게 다듬었다. 올해 안에 나올 것 같다. 앞으로 1년에 2~3권 정도 꾸준히 책을 낼 예정이다. 탐정 이야기도 시리즈로 준비하고 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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