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청소에 "담임 바꿔달라"…UN협약 꺼낸 2심, 대법 뒤집었다
방과후 교실 청소도 체벌이라며 담임교사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던 학부모에 대해, 대법원이 교권침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4일 학부모 A씨가 학교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속적인 담임 교체 요구는 교육활동 침해행위”라고 판단했다.
사건은 2년 전 전라북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2학년 담임교사 B씨는 수업 중 생수 페트병을 가지고 놀며 소리를 내는 학생에게 주의를 주었음에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자 칠판 ‘레드카드’에 학생의 이름표를 붙였다. 칠판의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부위에 이름표가 붙으면, 청소를 하도록 하는 게 학급 내 규칙이었다. 학생은 그날 레드카드를 받은 또 다른 학생과 함께 방과 후 14분간 교실 바닥을 빗자루로 쓸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학부모 A씨는 교감을 찾아가 아이에게 청소를 시킨 것은 아동학대라며 담임교사를 교체해줄 것을 요구했고, 다음날부터 3일간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담임교사 B씨는 스트레스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결국 학생이 담임교사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건 청소 사건 2주 후였다. A씨는 이날 학생을 데리고 조퇴했다. 또다시 담임 교체를 요구했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결석은 B씨가 다시 병가를 써 학교에 안 나올 때까지 10일간 이어졌다.
학부모 A씨는 교육청 등에 민원을 넣었고, 담임교사 B씨는 ‘A씨의 교권 침해 활동과 민원제기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적 충격이 크다’며 학교에 교육활동 침해 신고를 했다. 학교 교권보호위원회 심의 결과, 학교장은 A씨의 담임교체 요구가 부당했다고 보고 ‘교육활동 침해행위를 중단하도록 권고’하는 조치를 했다. 소송은 A씨가 이 조치를 취소하라며 낸 것이다.
1심 “아이 못 맡기겠단 학부모 잘못” VS 2심 “교사가 아동 존엄성 침해”
이는 2심에서 뒤집혔다. 광주고등법원 전주1행정부(부장 백강진)는 애초에 담임교사 B씨의 ‘레드카드제’가 큰 문제였다고 보고, 이에 대한 학부모의 문제제기가 부당한 것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UN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인용하며, “교사가 훈육에 따르지 않는 아동의 이름을 친구들에게 공개하여 창피를 줌으로써 따돌림의 가능성을 열어 주고, 나아가 강제로 청소 노동까지 부과하는 것은 아동의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침해행위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학부모 의견제시의 한계, 담임교체 요구의 조건은…대법원, 법리 첫 판시
이날 대법원은 부모의 자녀 교육에 관한 의견제시권의 한계에 대한 법리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관해 학교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학교는 이러한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만,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한계를 명백히 했다.
대법원은 학부모의 담임 교체 요구가 정당화되기 위한 요건도 제시했다. 대법원은 “학급 담당 교원의 교육방법이 부적절하여 교체를 희망한다는 의견도 부모가 교장에게 제시할 수 있다”면서도, “학기 중 담임에서 배제되는 것은 해당 교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인사상으로도 불이익한 처분이며, 학교장에게는 인사를 다시 하는 부담이 발생하고 학생들에게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해당 담임교사의 교육방법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교육방법의 변경 등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먼저 그 방안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런 해결 방안이 불가능하거나 이를 시도하였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그러한 문제로 인해 담임교사로서 온전한 직무수행을 기대할 수 없는 비상적인 상황”일 때에 한하여 보충적으로만 학부모가 담임 교체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같은 취지로 판결을 다시 하라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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