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벌기도 힘든데... 동네책방 창업의 감춰진 진실 [소셜 코리아]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조형근]
▲ 경기도 파주시 쩜오책방 내부 모습. |
ⓒ 쩜오책방 |
아마 동네의 협동조합 책방에 참가하고 있다는 이유로 몇 년 전 다른 매체에 응한 인터뷰 때문인 듯했다. 그때 인터뷰도 동네책방의 '부상'에 주목했다. 그런데 동네책방이 '부상'하고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출판산업과 서점업계가 해마다 '단군 이래' 수준을 넘어 '파피루스 발명 이래 최대의 불황'을 갱신하고 있다는데 말이다.
동네책방의 부상이란 지역의 일반서점이 잘 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교재, 학습서 등을 취급하지 않고 단행본 판매에만 주력하면서 나름의 개성을 추구하는 (통계분류상) 독립서점·기타서점들이 급증하고 있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현상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출판 및 서점업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반적인 쇠퇴의 흐름 속에서 발견한 작은 생존 공간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보자면, 2000년대 이후 점증해 온 지역재생 및 커뮤니티 활동의 사회문화적 가치에 대한 주목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둘 수도 있겠다. 그 한계까지 포함해서 살펴보자.
출판·서점 산업 통계의 진실
출판과 도서 유통시장의 불황은 어느 정도일까? 막상 정확한 사실 확인은 쉽지 않다. 산업이 영세하니 통계도 부실하다. 서점은 물론 대다수 출판사가 법인사업자도 아니고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있다. 정확한 재무정보를 알 수 없다. 최소한의 사실만 확인해 보자.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매년 조사·발표하는 출판시장 통계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재무제표를 확인할 수 있는 소수의 출판·서점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대표성은 낮지만 추세는 짐작할 수 있다.
조사 대상 77개 출판사의 2022년 총매출액은 전년 대비 2.8% 늘었다. 불황이라더니 웬일일까? 분야별로 사정이 다르다. 교과서, 학습참고서, 학습지, 외국어 교재 등을 출판하는 교육도서 출판사들의 매출액은 3.1% 늘었지만, 단행본 출판사들은 1.4% 줄었다. 비중은 작지만 네이버웹툰, 밀리의 서재 등 전자출판 플랫폼 기업의 매출액은 30.1% 증가로 폭증 수준이다. 즉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일반 단행본 출판사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매출액은 더욱 비교가 안 된다. 교육도서 출판사 46곳의 매출액 합계가 4조 4220억 원인 반면, 단행본 출판사 23곳의 매출액 합계는 4629억 원으로 10분의 1 수준이다. 한국의 출판문화를 대표한다는 유명 단행본 출판사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중소 출판사들의 어려움은 오죽할까?
발행 종수 감소도 의미심장하다. 출협이 발간한 <2022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해마다 증가하던 발행 종수가 2021년에 들어 전년 대비 1.7% 줄었다. 2013년까지 2천 부를 넘던 종당 평균 발행 부수도 꾸준히 줄어 2021년에는 1236부에 그쳤다. 이 추세면 2023년에는 딱 반토막이 날 듯하다.
소득은 늘어도 도서 구입비는 준다.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2022년의 가구당 월 평균 서적 구입비 실질금액은 1만 36원으로 전년 대비 10.1% 감소했다. 2021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 중 지난 1년 동안 1권 이상의 책을 읽은 독서인구의 비중은 45.6%로 절반이 못 된다.
2013년 이후 꾸준히 감소 추세다. 독서 인구 1인당 평균 독서 권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서점도 급감하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서련)에서 펴낸 <2022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03년 3589개이던 지역서점(일반서점)이 2019년에는 1976개가 됐다. 2023년 통계가 잡히면 역시 20년 만에 딱 반토막이 날 것 같다.
라디오와 TV, 영화 등의 대중매체와 한 세기를 동거하며 성장해 온 단행본 시장이지만, 인터넷-유튜브, 다양한 소셜 미디어와 동반 성장하기는 난망해 보인다. 극소수 대형서점, 인터넷서점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는 게 대세라는 생각이 횡행한다.
▲ 동네책방은 지역에서 문화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 경기도 파주시 ‘쩜오책방’에서 클래식 강좌가 열리고 있다. |
ⓒ 쩜오책방 |
전반적인 쇠퇴 흐름 중 유독 한 지표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2015년부터 통계에 잡히기 시작한 동네책방(기타서점·독립서점)의 증가다. 서련 통계로 그해 49곳이던 기타서점이 2019년 344곳으로 늘어났다. 동네책방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주식회사 동네서점이 펴낸 <2022년 동네서점 트렌드>에 따르면 독립서점(동네서점)은 2022년 현재 815곳에 이른다. 2019년 기준 서련 집계보다 200곳 이상 많다.
동네책방은 대개 2014년 도서정가제 개정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지역의 작고 개성 강한 서점들을 가리킨다. 학습서, 교재 등을 취급하지 않고 일반 단행본만 판매한다. 교재라는 큰 수요를 포기하는 대신 다양성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셀럽(유명인)들의 유명 책방은 동네책방의 이 다양한 생태계 위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일부일 뿐이다.
단행본 시장의 축소 와중에 단행본에 특화된 동네책방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산업의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된다. 창업 문턱이 낮다는 게 적극적인 창업 유인은 아니다. 동네책방의 경영 현황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어려운 건 분명하다. 애당초 도매상들이 대형서점, 인터넷 서점보다 높은 공급률(도서 정가 대비 공급가의 비율)로 책을 주기 때문에 이익률이 구조적으로 낮은데, 교재도 팔지 않으니 경영이 잘 될 리 없다. 카페, 빵집 등 매장 내 겸업이든, 서점 외의 일을 하든 겸업이 많은 이유다.
유동인구가 많은 대도시 도심에 있거나, 팬층이 두터운 유명인사가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책만으로는 최저임금도 벌기 쉽지 않다는 공감대가 있다. 서점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자체나 출협이 운영하는 서점학교들의 속 이야기를 들어보면, 업계의 선수인 강사들이 강의는 열심히 하면서도 "창업은 하지 말라"며 말린다는 것이다. 어려운 사정을 솔직히 알리려는 것이다. 수강생들의 반응이 더 재미있다. 어려운 줄 알고서 시작하는 일이니 말리지 말란다는 것이다.
굳이 동네책방을 하는 이유
산업의 논리로 설명이 안 된다면 결국 주체의 요인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이들은 왜 뻔히 보이는 고생길로 들어서는 것일까? 내가 참여하는 협동조합 책방이 전형은 아니지만 사례가 될 수는 있겠다.
우리 책방은 2015년 파주 교하의 신도시 상가주택 구역 작은 카페 안에서 숍인숍 형태로 출발했다. 본업을 가진 주민 다섯 명이 '취미생활'로 시작했다. 지역 커뮤니티 활동이 조금씩 활발해지던 무렵이었다. 읽고 싶은 책으로 큐레이션을 했고, 북토크나 강연도 열었다. 딱 2년만 해보고 밑천이 동나면 그만두자며 시작했는데, 2년 후 정산을 했더니 그만 순이익 20만 원(!)이 남았다. 그 참에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참가자를 늘렸다. 조합원은 대략 10명에서 15명 내외를 오간다.
2019년에 독립 공간으로 확장 이전을 하면서 활동이 크게 늘었다. 상근·반상근으로 근무하는 두 명의 조합원이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요일별 책방지기 조합원도 운영을 돕는다.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여러 명이 함께 일한다. 문화 프로그램이 매우 많다. 저자 북토크나 인문학 강연, 전시와 공연, 책읽기 모임과 글쓰기 교실, 지역잡지 기자단 모임 등 온갖 모임으로 늘 북적인다. 공방이 많은 동네 특성에 맞춰, 공방의 자영업자들과 함께하는 콜라보 프로그램도 만든다. 지역의 공공도서관과 협력 프로그램도 자주 만든다. 공공기관이나 지자체의 지원사업도 많이 하지만, 대부분 서점에 대한 지원사업은 아니다.
이익을 생각하면 못 할 일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참여한다. 책방이 차츰 알려지면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럭저럭 인건비와 임대료를 내면서 유지가 되고 있다. 상근·반상근 조합원들도 최저임금을 벌 뿐이다. 다른 조합원들은 사실상 보상이 없다. 기회비용의 관점에서는 손해다. 책과 문화예술을 좋아하고, 그것을 통해 이웃과 관계 맺는 데서 즐거움이라는 다른 종류의 보상을 얻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독립서점의 운영 방식은 다양하지만 적어도 이 점은 비슷하다. 경제적 성공에 대한 욕구보다는 문화적 욕구를 중시하고, 경쟁보다는 친교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독립서점을 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꾸 늘어나고, 또 그래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우리 책방이 그나마 유지되는 것은 동네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곳에서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부담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화가 쉽지 않은 모델이다.
▲ 경기도 용인시 동네책방 ‘우주소년’에서 주민들이 저자와 함께 북토크를 하고 있다. |
ⓒ 우주소년 |
도서정가제, 지역서점 우선구매제도, 지역서점 인증제도 등이 동네책방 생태계를 가능하게 하는 보호막으로 곧잘 거론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지자체 등 공공의 지원사업도 있다(지원사업은 윤석열 정부에 의해 크게 줄어들고 있다). 동네책방의 시선에서 보자면 도서정가제는 불완전해서 오히려 문제다. 정가제라는 말과는 달리 10%의 기본 할인에 적립 5%까지 15% 할인이 가능하다. 3년마다 한 번씩 제도를 고치게 해놓았는데, 그때마다 완화·폐지의 압력이 거세다.
지역서점이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에 우선 납품할 수 있도록 한 우선구매제도와 지역서점 인증제 또한 여전히 문제가 있다.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아도 되고, 일반서점의 압력으로 독립서점을 납품에서 배제하는 지자체도 있다. 조례가 없는 곳도 적지 않다. 경기도처럼 시행규칙까지 상세하게 만든 곳은 별로 없다. 더 강화해야 할 제도다.
책이 그저 상품에 불과하다면 이 모두가 자유로운 경쟁과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비합리적인 규제로 보일 것이다. 책은 사적 재화이자 상품이지만 동시에 공공재이기도 하다. 공공도서관은 책의 공공재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거대한 시설과 인력을 운영하면서 책을 구매하고 무상으로 빌려준다. 모두 세금이다.
도서관은 책이 담고 있는 지식, 정보, 문화가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유될 때 더 큰 가치를 낳고 혁신도 가능하다는 믿음에 기반한 제도다. 서점이 도서관을 불공정 경쟁자라며 고발하기는커녕 책 읽는 사람을 늘리겠다며 적극 협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과 지식은 상품이지만 동시에 공공재다. 이 이중의 성격 속에서 책과 독서문화, 지식의 풍경이 발전해 왔다.
지금 한국에서 동네책방은 단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가장 말단에 자리 잡은 문화 플랫폼이다. 여기서 지식과 정보가 교류되고, 사람들이 만나고 '작은 문화'가 형성된다. 그래서 지역으로, 지방으로 갈수록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진다. 농민이, 노동자가 만나는 책방이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 이북 플랫폼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동네책방이 소위 86세대 중산층 중심의 일시적 유행이라며 폄하하기 어려운 이유다.
셀럽이 부각되는 그런 책방도 있을 것이다. 동네책방의 절대다수는 그런 곳이 아니다. 생계가 걱정되지만 이런 일을 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지역의 문화 플랫폼이다. 물론 한계도 뚜렷하다. 출판산업과 서점업계의 전반적 쇠퇴를 되돌릴 힘이 동네책방에 있을까? 선뜻 긍정할 수 없다. 책방의 한계 때문은 아니다. 문제는 그보다 훨씬 크고 복잡하다.
▲ 조형근 / 동네 사회학자 |
ⓒ 조형근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조형근은 대학 교수를 그만두고 동네책방을 근거지 삼아 세상을 고민하는 사회학자입니다. 지역 공동체, 민주주의, 불평등, 이주민 등 여러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겨레>, <시사IN>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고, 방송활동도 합니다. 지은 책으로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우리 안의 친일>,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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