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걸그룹 열풍 시작엔 ‘시스터즈’가 있었다
국내외 자료 모두 수집해 고증
30~70년대 걸그룹 소개
“이들이 있었다는 것 기억해 주길”
한국 최초의 걸그룹이라 불리는 저고리시스터. 훗날 ‘목포는 항구다’로 잘 알려진 이난영을 비롯한 김능자, 박향림, 장세정, 이화자가 무대에 오른다. 일제강점기로 종로경찰서 고위 간부가 관람을 온 상황. 젊은이들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무대에 서지 못한다는 엄포에 마지못해 동의하지만, 민족의 얼이 서린 ‘아리랑’을 기습적으로 섞어 부른 후 너스레를 떤다. “두 곡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불러봤는데, 역시나 잘 어울리네요.”
이처럼 뮤지컬 ‘시스터즈’는 국내 걸그룹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당시 시대 상황을 노래와 버무려 드라마틱하게 소개한다. 1930년대 조선악극단 여성 단원으로 구성된 ‘저고리시스터’를 시작으로, 1950년 미국에 진출해 한류 원조를 이끈 ‘김시스터즈’, 60년대를 화려하게 빛낸 걸그룹 ‘이시스터즈’, 대중음악의 전설 윤복희의 ‘코리안키튼즈’,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영원한 디바 인순이를 배출한 70년대 ‘희자매’ 등을 재현했다.
준비기간은 무려 10년에 달한다. 13일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대극장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박칼린 연출은 “당시 가수들의 의상과 무대를 사진 자료와 영상, 해외 논문 등을 통해 고증했다. 전수양 작가가 국내 자료를 찾고, 전 해외 자료를 찾았다”며 “(작고하신) 이난영 선생님 외에는 모두 직접 만나서 인터뷰했다. 선생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시스터즈’ 무대는 배우들의 일인다역으로 꾸며진다. 주역으로 등장했다가, 다른 무대에서는 조역으로 등장하고, 그마저도 고정되지 않고 공연마다 배역이 바뀐다. 배우들마저도 “오늘은 네가 숙자니? 애자니? 라며 헷갈리는 상황이 많아 더 열심히 연습했다”고 할 정도. 이를 두고 박 연출은 “걸그룹이라는 게 어마어마한 화합이 필요하다. 자리를 틀리면 알아서 가서 맞추고, 음이 틀리면 화음으로 대처한다”며 “한방에 가는 라이브 상황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서로를 돕는 그룹의 모습을 몸소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극 중 유일한 남자배우인 황성현은 노래 이면의 배경을 촘촘하게 전한다. 김시스터즈의 무대에서 당시 이들이 주급으로 한화 1억7000만원 상당의 수입을 거둬들였다는 정보를 전하는 식. 박 연출은 “역사 비하인드가 없으면 그냥 알던 곡에 불과하다. 설명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고 없애도 봤는데 배경 설명이 없으면 다른 노래가 될 수 있을 것 같더라”며 “그래서 쇼 뮤지컬로 콘셉트를 잡았다”고 전했다.
지난 8일에는 실제 모델인 윤복희, 고재숙, 김희선이 공연을 관람하고 무대에 올라 “너무 감동적이고 즐겁고 멋있는 순간”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감동은 걸그룹 레전드를 연기한 배우들도 마찬가지. 윤복희를 연기한 이예은은 "무대에서 춤을 추던 중 객석을 비추는 빛 속에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윤복희 선생님 얼굴이 보였는데, 환하게 웃고 계시더라"며 "그 모습에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고재숙을 연기한 이서영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기분이다. 감사하다고 해주셨다"며 "저희가 추억을 선물해드린 것 같아 기뻤고, 그런 무대를 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전했다.
공연 말미에는 배우들이 시스터즈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색 장면도 연출된다. 박 연출은 “지금껏 무대에서 배우가 자기 이름을 읊는 순간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의 특징은 라이브 뮤직이고, (그런 즉흥성에 기대) '나는 이 무대의 누구야'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역사와 스토리를 만들어 낸 배우들을 관객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존 뮤지컬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색다른 무대다. 쇼도 아닌, 콘서트도 아닌 쇼 뮤지컬에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공연은 오는 11월1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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