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으로 문을 낸 집, 어딜 봐도 풍경이 좋네

박상준 2023. 9. 1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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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월연정과 월연대 일원을 둘러보다

밀양시가 한달살이를 일부 지원하는 '살아보소 밀양'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2주간 머물며 여행한 기록입니다. <기자말>

[박상준 기자]

2023년은 개인적으로 여행 복이 넘친 해인 것 같다. 4월 무렵에 우연히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한 달 살이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청을 마감한 곳이 많았지만 밀양시, 창원특례시, 부산광역시에 신청한 것이 운 좋게 다 선정되어 6월에 3주간 창원, 부산을 다녀온 후 9월에는 밀양에 왔다. 숙박비 일부와 체험활동비(주로 지역 관광지 입장료 및 시설 이용료 등이다)를 지원하니 여행을 나서는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9월 11일부터 시작한 밀양여행은 5월에 하려다 사정상 지금 오게 되니 기대가 더 크다. 밀성 박씨의 후손으로서 본관이면서 고향인 밀양은 어느 곳보다 더 친밀감을 느끼는 고장이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으니 이곳은 부모님 고향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늘 밀양이 고향이라 들었고 그렇게 알며 살아왔다. 아마 조상님들과 조부님, 부모님의 묘소들이 이곳에 있어 가끔씩 성묘를 다니곤 했던 기억 때문이리라.

금년이 '밀양 방문의 해'라고 하니 더 의미를 살려 밀양에서의 2주 살이를 하려고 한다. 고속도로를 달려 밀양으로 가리키는 표지판을 보며 들어와 먼저 찾은 곳은 밀양 월연정이었다.

명소가 된 용평터널 앞 공터에 차를 세운 시간이 오후 5시 30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시간이 늦어 월연정을 볼 수 있을까 걱정하며 걸어가는데 운 좋게도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시는 마음씨 좋으신 관리자 분을 만났다.
 
 월연대 일원을 관리하시는 여주 이씨 문중 어르신. 퇴근하시다 우리를 보고 발길을 돌려 월연대 일원을 개방하여 주신 고마운 분
ⓒ 박상준
이곳은 여주 이씨 문중에서 관리하는데 후손들이 순번을 정해 번갈아 맡는다고 한다. 퇴근을 하다가 우리를 보고는 다시 돌아가 잠근 문을 열어 구경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건물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잘해 주시고 팸플릿도 챙겨주시고 해서 늦게 간 것이 오히려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월연정을 설명하는 밀양의 문화재 표지판
ⓒ 박상준
 
경상남도 밀양시 용평동에 있는 월연정은 월영사가 있던 곳에 중종 때 한림학사 등 요직을 지내던 월연 이태(1483~1536)가 기묘사화가 일어나기 직전에 낙향하여 만든 별서이다. 이곳에 쌍경당과 월연대를 짓고 은거하였다고 한다.
문화재청 설명에는 쌍경당은 월연정의 대청으로 서술하고 있다. 쌍경당이란 헌액이 있는 건물이 월연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다.
 
 밀양 월연대 일원을 설명한 표지판
ⓒ 박상준
 
쌍경당, 월연대, 제헌이 조화를 이루는 이 일원은 담양 소쇄원처럼 여러 건물이 집합적으로 들어선 독특한 양식의 정원을 보인다. 2012년 월연대 일원 전체를 명승으로 지정하였다.
 
 쌍천교. 월연정 구역과 월연대 구역을 이어주는 다리
ⓒ 박상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진 월연대와 쌍경당 영역이 계곡 사이는 주변 풍경에 잘 어우러진 쌍천교가 이어주고 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후 1757년 6대손인 월암 이지복이 쌍경당을 고쳐 짓고 1866년 11대손 이종상과 이종증이 월연대를 복원하였다. 제헌은 1956년에 이태의 맏아들 이원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쌍경당 헌액이 있는 월연정 건물
ⓒ 박상준
 
월연정은 별서 건물 중 가장 중심 되는 건물로서 월연대 일원의 가장 남쪽에 있는 동향 건물이다.
 
 월연정
ⓒ 박상준
'쌍경'의 뜻은 맑은 물에 달이 잠기면 물과 달이 한 쌍의 거울과 같다는 뜻이라 한다. '사람의 마음을 거울같이 맑게 닦아라'는 의미라고 한다. 정면 5칸, 측면 2칸 구조로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건물 뒤쪽에는 아궁이가 있어 겨울에도 생활할 수 있게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월연대 건물
ⓒ 박상준
  
 밀양 월연대
ⓒ 박상준
 
월연대는 북쪽의 높은 언덕에 남동향으로 서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평면인데 중앙 1칸은 4면에 여닫이문을 두어 문만 열면 사방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전통 건축의 특징인 차경기법을 잘 살렸다. 방 둘레로 사방을 돌아가며 대청으로 만들어 정자의 기능을 하고 있다.
 
 밀양 월연대 아궁이
ⓒ 박상준
출입문을 들어서면 아궁이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겨울에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제헌 건물
ⓒ 박상준
  
 제헌 건물
ⓒ 박상준
 
제헌은 가장 낮은 위치에 남동향으로 서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 바라보면 왼쪽에 1칸짜리 대청이 있고 그 옆으로 2칸으로 이루어진 방이 있고 2칸짜리 대청이 옆으로 이어지고 있다. 방과 대청으로 이루어진 구조는 건물 앞으로 보이는 강의 풍경을 차경하여 품는 정자의 기능을 중시한 것으로 짐작한다.
 
 밀양 제헌 건물의 헌액
ⓒ 박상준
 
제헌의 헌액은 앞의 두 건물과 달리 건물의 앞쪽에 있지 않고 오른쪽 대청 쪽 방문 위에 걸려 있었다.
 
 'ㄱ'자로 배치된 고직사 건물
ⓒ 박상준
 
그 외에는 별서를 관리하는 고직사 건물이 2동의 건물이 'ㄱ'자 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밀양 월연정의 대문채
ⓒ 박상준
 
 외양간의 흔적이 있는 대문채
ⓒ 박상준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삼문이다. 대문채의 한쪽에는 화장실로 추정되는 공간이 있고 반대쪽에는 외양간이 있었다.

풍광이 좋은 밀양강 북천과 동천이 만나는 추화산  동편 기슭 절벽 위에 지은 월연정과 월연대·제헌 등은 위치한 지형에 맞춘 각각의 개성 있는 모양새로 만들어졌다. 월연대 일원은 이 정자들로 아름다운 공간을 이루면서 각 건물에서 보는 자연 풍광의 조화를 중시한 건축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이곳은 경관이 아름다워 국가명승으로 지정된 곳만큼 바라보는 풍광이 눈 맛을 즐겁게 한다.

여름에는 배롱나무 명소로 알려진 곳인데 우리가 찾은 때는 여름이 끝나는 시기라 꽃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하나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풍경은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용평터널
ⓒ 박상준
 
월연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밀양의 또 하나의 명물인 용평터널이 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단선으로 개통되었을 때 사용되었던 철도 터널이었는데 1940년 경부선이 복선화가 되면서 선로가 다른 곳으로 옮겨진 후에 일방 도로로 차가 지나다니는 독특한 터널이다.
폭이 3m밖에 되지 않아 좁은 편이다. 전체 길이는 130m이며 월연터널, 백송터널이라고도 한다. 명승으로 지정된 월연정이 근처에 있는 만큼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용평터널로 알고 왔는데 알림판에는 월연터널로 소개되어 있는 것이 낯설다.
 
 용평터널이 영화 '똥개' 촬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
ⓒ 박상준
 
이곳은 영화 <똥개>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월연정 쪽 입구 산 쪽으로 촬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설치해 두었다. 한쪽 입구에 차가 들어서면 반대쪽 입구에는 진입금지 신호가 나와 사고를 방지해 준다. 사람이 다니기에는 위험스럽기는 하나 차가 그리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라 잠깐 동안 터널을 배경으로 하거나 터널 안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사진을 찍을 수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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