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에 이렇게 바빠도 되는지 나도 의아하다

이숙자 2023. 9. 14.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 낭송 수업도 가고, 연극 연습도 해야 하지만 추석 김치를 미리 담그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숙자 기자]

지난 토요일이었다. 한동안 발길을 멈추었던 재래시장에 갔다. 시장에 가면 삶의 활기가 넘친다. 살아가는 일은 먹어야 하고 먹는 일은 생명을 보존하는 엄숙한 일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우울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시장엘 가보라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 모습에서 삶의 의욕을 얻을 거라고.

시장에는 갖가지 야채와 과일들이 있고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식재료를 진열해 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추석이 곧 돌아오는 때라서 그런지 사람들도 많았다. 야채 값과 과일 값이 생각보다 비싸다. 비싸도 너무 비쌌다. 여름 동안 날씨가 덥고 홍수로 야채와 과일 작황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는 야채 가게 아줌마의 변명이 돌아온다. 아무리 비싸도 먹을 건 먹고 살아야 하지 어쩔 건가.

크지도 않은 사과 3개가 만 원이라 한다. 열무도 한단에 1만2000원 배추 또한 한 통에 5000원이다. 배추는 고랭지에서 오니까 그런다고 하고 열무와 다른 야채도 너무 비싸다. 야채 가게 앞에서 망설여진다. 그래도 사야 먹고 산다. 물가가 비싼 걸 어떻게 할 건가. 
 
▲ 김치 담기 위해 다듬어 놓은 배추와 열무 김치 담기 위해 배추 열무를 다듬어 놓았다
ⓒ 이숙자
  
▲ 소금에 절여 놓은 배추와 열무 김치 담으려 준비 해놓은 배추와 열무
ⓒ 이숙자
 
곧 있으면 친정에 찾아오는 딸들에게 김치라도 들려 보내야 마음이 편하다. 시장에서 속이 꽉 찬 통통한 배추 세 포기와 열무 3단을 샀다. 양념으로 들어가는 쪽파 역시 비쌌다. 비싸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지난날 물가와 비교를 하고 있는 나도 참 딱하다. 고추 조림을 좋아하는 나는 꽈리 고추를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부만 살고 있는 우리는 사실 김치를 많이 먹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재래시장 가는 일도 드문드문 시장을 본다. 어쩌다 딸네 가족이 오거나 특별한 일이 있으면 시장을 찾아간다. 곧 있으면 추석은 돌아오고 딸들은 군산에 내려올 것이다.

가족이 모이면 기본적으로 먹어야 할 음식이 필요해서 냉장고가 비어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친정에 오는 딸들에게 무엇이라도 손에 들려 보내고 싶은 것이 엄마 마음이다.
 
▲ 배추 김치 배추 김치 담갔다.
ⓒ 이숙자
  
▲ 열무 열무 김치 담기
ⓒ 이숙자
 
내 일정은 가을 축제를 위해 날마다 스케줄이 촘촘하다. 시낭송 수업을 가야 하고, 시극 연습에 군산시 시간여행 축제 때 참가해야 할 시낭송 연습과 또 다른 연극도 있다. 모두가 연습이 필요한 일이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그 모든 일을 소화하려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므로 주중에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집안일은 주말에 하고 있다. 나이 팔십에 이렇게 바빠도 되는지 나도 의아하다. 용돈 벌이 삼아 하는 도서관 사서 일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나가야 한다.

추석이라고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는 건 아니지만 맨 먼저 해 놓아야 할 일은 김치를 담가 놓는 일이다. 한국인들을 오래전부터 밥상에 김치가 떨어지는 일 없이 살아왔다. 밥 먹을 때 김치 한 쪽이라도 먹어야 밥을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가장 친숙한 음식이다.

김치는 품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렇다고 아직은 김치를 사서 먹어 본 적은 없다. 내가 움직이지 못하면 그때는 모를 일이다. 딸들은 "엄마 이젠 힘드니까 김치 담그지 마세요"라고 말은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러고 싶지는 않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해 줄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엄마가 딸들 살아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어 마음이 흐뭇하다. 산다는 건 늘 시간과의 싸움이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딸들은 김치 담글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이다. 사실 시간이 있어도 손에 익숙하지 않아 김치 담그기가 번거로울 수 있다. 만약에 내가 없다면 또 다른 방법으로 김치를 사서 먹고 살 것이다. 사람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아 산다. 

열무 김치는 된장이나 고추장에 참기름 넣고 비빔밥을 해서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딸들에게 담가 주는 김치는 엄마의 사랑이다. 딸들과 사위, 손자는 분명 인연이 되어 내게로 온 사람들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평생을 살다가 생을 마칠 사람들, 그 인연들이 소중해서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고민하면서 살아가려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