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진관동 진관사 간판이 특별한 이유
[김슬옹 기자]
▲ 진관동에서 한글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김병무 회장(오른쪽)과 김용관 감사(왼쪽)) 진관동 주민자치위에서 한글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김병무 회장(오른쪽)과 김용관 감사(왼쪽) @김슬옹 |
ⓒ 김슬옹 |
이미 세계적인 사찰로 유명한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의 진관사, 사찰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은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한옥마을 한가운데 '은평한옥마을 어울림터'라는 은평글꼴(일명 '은평구 사가독서체')로 만든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은평한옥마을 어울림터’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은평한옥마을 어울림터’ @김슬옹 |
ⓒ 김슬옹 |
조금 더 올라가니 화장실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비움터'는 보통 'WC, Toilet, 화장실, 해우소' 등으로 익숙하게 부르기에 더욱 새로웠다. 옆 공간에 있는 주차장 이름은 '차쉼터'이다.
그 앞에는 진관사에서 운영하는 한문화 체험관이 있는데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흙다움, 물다음, 빛다움, 아름다움'으로 층별 이름을 지어 한결같이 토박이스럽고 정겹게 느껴진다.
▲ 진관사 입구의 화장실과 주차장 새이름, ‘비움터’와 ‘차쉼터’ 진관사 입구의 화장실과 주차장 새이름, ‘비움터’와 ‘차쉼터’ @김슬옹 |
ⓒ 김슬옹 |
김병무 회장 : "우리 진관동은 한문화 전당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진관사의 한식과 한옥마을, 한문화 체험관 등이 있습니다. 특히 세종 시대에 진관사의 사가독서당이 운영이 됐고 그 사가독서당의 학자들이 한글과 연관된 역할을 하신 역사적 유래가 있지 않습니까?
사가독서는 관리가 집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제도입니다. 처음에는 각자의 집에서 책을 읽었으나 독서에 전념하기 어렵다 하여 세종 24년(1442)부터는 진관사에서 책을 읽게 했지요.
한글 창제 1년 전인 1442년에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이개, 하위지, 이석형 등 여섯 명이 진관사에서 처음 사가독서를 했습니다. 1442년은 훈민정음 창제 공표(1443) 1년 전이고, 해례본 간행(1446년) 4년 전입니다. 여섯 명 가운데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등 네 명은 해례본 저술과 반포에 큰 공로를 남긴 훈민정음 반포 1등 공신이었습니다.
또한 우리 진관동에는 국립한국문학관이 11월에 착공을 앞두고 있고 그 밑에 예술인 마을이, 그 옆에는 한국고전번역원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글 관련 역사성을 살려 우리 진관동에서 순우리말과 한글을 활용한 사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인사동이나 세종시에서는 한글로 표기된 간판은 있지만, 순우리말을 적극적으로 살려 쓴 것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진관동에서 한글만 아니라 순우리말도 빛내자고 주민들이 뜻을 모은 것이죠."
필자가 진관사에 여러 차례 가보니 사찰 안 큰법당 앞쪽 관련 안내판에 진관사가 조선 시대 한글 창제를 위해 사용되었던 비밀연구소인 독서당이 있었던 곳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글 창제를 위한 비밀연구소라 한 것은 창제 1년 전 사가독서를 진관사에서 했고 사가독서에 참여한 중심 인재들이 한글 반포를 위한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 저술, 관련 서책 연구와 저술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 한글새소식 598호 표지로도 쓰인 진관동 한글길 한글새소식 598호 표지로도 쓰인 진관동 한글길 @한글학회 |
ⓒ 김슬옹 |
- 한글길 조성과 비움터 등 이색 글꼴 간판 설치에 대해서는 감사님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김용관 감사 : "이 모든 사업은 회장님이 말씀하신 사가독서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주민자치회에서 서울시에 건의하여 2021년에 '진관사 사가독서 터'를 진관사 입구에 설치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글길이 조성이 된 것이죠. 사찰 입구인 해탈문부터 북한산 자락까지 이어지게 한 것입니다. 실제로 훈민정음 연구와 반포 공로자인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분들이 이 길을 산책하면서 연구도 하고, 많은 토론도 하지 않았을까요?
2022년에는 은평구와 업무협약을 맺은 세종국어문화원이 훈민정음과 동국정운 한글 글꼴을 응용한 은평글꼴 시안을 개발했지요. '비움터, 차쉼터, 은평한옥마을 어울림터' 등 공공간판에 이를 적용해서 올해 3월에 준공했습니다. '비움터, 차쉼터'라는 말도 은평구와 세종국어문화원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만든 말입니다."
기자는 현장 확인을 위해 진관사 입구에 있는 '비움터'를 9월 2일 방문을 했다. 마침 북한산 산행 중에 들렀다는 이재성 님(경기도 부천시)은 '비움터'라는 간판에 대해 "일단 다른 곳과 다르므로 눈에 확 들어왔고요. 다른 화장실 이름보다 더 정겹고 그 의미가 좋았어요. 특히 비운다는 말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비우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더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동행자는 글꼴 모양이 투박하면서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했다.
글꼴 개발자인 양효정 디자이너는 이 글꼴에 대해 "사가독서 인재들이 참여한 훈민정음 해례본(1446)과 동국정운(1448)의 역사성도 살리면서 지금의 가독성과 실용성을 살릴 수 있도록 모음자의 짧은 획을 옛날처럼 점으로 하는 것과 지금처럼 짧은 막대로 하는 두 안이 설계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무, 김용관 두 사람은 2010년 무렵 진관동 아파트 입주민 단체를 이끌면서 처음 만난 사이지만 사가독서 관련 지역민 운동을 함께 하면서 늘 붙어 다니는 동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제 이들은 꿈도 같은 꿈을 꾼다며 웃었다. 김병무 회장은 앞으로 계획이나 꿈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제 앞으로 은평 고유 글꼴도 개발되고 한국문학관도 준공되고 한글 역사공원까지 들어서면 은평구는 명실상부한 한글문화 특구가 될 것입니다. 거기다가 은평구 내 불광동 축제 등 세계적인 문화 축제와 더불어 은평구가 세계 한류 중심지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나라를 찾아올 많은 관광객들이 '한식·한옥·한복·한글과 우리말을 체험하러 은평을 찾아왔다'라고 말하며 대한민국을 관광하는 그날을 위해 은평구의 우리말글 이야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김용관 감사도 한마디 거들었다.
▲ 진관사 입구 화장실(비움터)에 설치 된 ‘세종 서문(청농 문관효 글씨)’ 진관사 입구 화장실(비움터)에 설치 된 ‘세종 서문(청농 문관효 글씨)’ @김슬옹 |
ⓒ 김슬옹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민연금 개혁안? MZ세대들에게 날벼락인 이유
- 문재인 부친 물고 늘어지는 보훈부장관의 우문, 놀랍다
- 이들과 뭘 하려고? 윤석열 정부 장관들의 무서운 공통점
- 박민식 '정율성 저격' 동조 시민단체 성명, 여당 의원 보좌관이 썼다
- 일일 좌석 3만석↑ 30% 할인까지... 이 파업을 응원한다
- 들어보셨나요? 기내식 말고 해발 4000m 화산식
-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아요, 그래도 꿈은 있죠"
- 유인촌과 이동관, 왜 '최악의 조합'인가
-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은 하세월, 가해자 이승만 기념관은 속전속결
- 푸틴 만난 김정은 "제국주의 맞선 투쟁,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