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TSMC의 배신자, 삼성의 용병에서 중국 반도체의 영웅으로

백종민 2023. 9. 14.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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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업체 SMIC 량멍쑹(Liang Mong Son) 대표는 요즘 글로벌 반도체 업계 화제의 중심이다. 중국 IT 제조업체 화웨이가 이달 초 3년만에 최신 반도체로 무장한 새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발표해 세계 정보기술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메이트 60 프로 안엔 최신 기술(7나노 반도체 공정기술)로 만든 반도체 칩(AP, apllication processor), ‘기린9000S’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10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공정 기술을 보유하는 것을 기를 쓰고 막고 있었다. 메이트 60 프로는 말하자면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가 먹히지 않았다고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제품이다. 화웨이는 여러 업체가 만든 부품을 조립해 새 스마트폰을 만든다. 논란의 중심인 최신 반도체칩을 만들어 화웨이에 공급한 업체가 바로 SMIC다. 중국이 정말 7나노 반도체를 만들었는지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세계 반도체 업계는 중국이 7나노 기술로 반도체를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7나노 칩을 만들었다는 SMIC 대표가 ‘칩의 마법사’란 별명을 가진 량멍쑹이란 것이 결정적이었다.

량멍쑹은 미국 UC버클리에서 반도체를 공부했다. 대만 출신인 그는 1992년 TSMC에 입사했다. 량멍쑹은 TSMC에서 돋보이는 엔지니어였다. 2003년 TSMC가 IBM을 제치고 130나노 공정에서 업계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량멍쑹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그는 성과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했다. 승진도 하지 못한데다 한직으로 밀려났다. 량멍쑹은 과감히 TSMC의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의 목적지는 삼성이었다. 2009년 퇴사 후 대만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2011년 삼성에 입사했다. TSMC는 바로 대만 법원에 이직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냈다. 그리고 2015년, 삼성이 세계 최초로 14나노 공정을 이용해 반도체를 만들어 세계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삼성 14나노 공정 개발의 주역이 바로 량멍쑹 대표였다. 최소한 TSMC는 그렇게 믿었다. TSMC 입장에서 그는 배신자였다. 회사를 대표하는 엔지니어였던 그가 숙적 삼성의 용병으로 회사를 향해 칼을 들이밀었다고 느낀 것이다. 2015년 그는 삼성에서 나간다. 대만법원이 그가 삼성에서 일할 수 없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후 량멍쑹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2017년 중국 SMIC 대표를 맡은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량멍쑹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법의 손길을 지닌 칩 마법사로 부실한 사람들도 챔피언으로 만들 수 있다. 고집이 세서 갈등을 일으키고 다시 (반도체 업계) 자유계약선수(FA)가 되곤 한다." TSMC와 삼성을 거쳐 SMIC에서도 좌충우돌하면서 혁신적인 성과를 내온 그의 삶을 간추려 표현한 것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그가 반도체 산업 중흥이라는 국가과제를 맡았다고 본다. 2019년 미국은 중국이 10나노 이하 반도체 공정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시작했다. 결정타는 10나노 이하 반도체 공정에 꼭 필요한 극자외선(EUV) 장비 수출을 금지한 것이다. EUV 독점 생산 업체인 네덜란드 ASML은 중국에 EUV 장비를 공급할 수 없게 됐다. TSMC도 미국의 입장에 따라 화웨이용 칩 생산을 중단했다. 중국에 남은 희망은 SMIC뿐이었다. 그리고 량멍쑹은 중국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중국 매체들은 “자주혁신으로 반도체 자립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의 제재가 실패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사실 SMIC가 7나노 공정 기술을 확보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한참 전의 일이다. 2022년 SMIC가 7나노 공정 칩을 생산했다는 신호가 포착됐다. 가상화폐 채굴에 쓰이는 칩을 SMIC가 7나노 공정으로 생산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결국 메이트 60 프로에 들어간 ‘기린9000S’ 칩이 나왔다. SMIC는 미국 규제의 구멍을 파고들어 7나노 기술을 확보했다는 분석이다. EUV 대신 구형 심자외선(DUV) 장비로 여러 번 작업하면 7나노급 반도체 회로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TSMC도 활용했던 이른바 멀티패터닝 기술이다. 삼성전자와 TSMC는 과거 7나노 공정 개발 경쟁을 벌였다. 삼성전자는 EUV를 사용했다. 반면 TSMC는 사용 중이던 DUV를 이용했다. EUV를 이용해 7나노 반도체를 만들 때는 한 번에 작업을 끝낸다. 반면 DUV는 여러 번 작업해야 한다.

2018년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XR 등에 들어간 애플 A12 프로세서가 이런 방식으로 만든 제품이다. SMIC는 과거 TSMC가 했던 것처럼 노광 작업을 4번 이상 거듭해 7나노급 반도체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분석 기관 세미애널리틱스의 딜러 페이털 창업자는 “중국이 보유한 장비로도 7나노 이하 제품도 생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중국은 미국의 제재 이후 DUV를 마구 사들였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23년 1~7월 사이 중국이 ASML의 DUV 장비를 25억달러어치나 수입했다고 보도했다. 전년동기 대비 약 65% 급증한 규모다. 이쯤이면 사재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화웨이가 SMIC와 협력해 반도체 공장을 신설 중이라는 루머도 흘러나왔다. ASML은 DUV 장비가 연말까지만 중국에 인도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소 잃고 외양 고치는 격이다. 이미 중국이 충분한 규모의 DUV를 확보했다.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물론 중국이 확보한 기술은 불완전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DUV를 활용한 7나노 공정은 EUV 활용 공정과 비교하면 제조 시간과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만들 수 있다는 것과 대량생산해 팔 수 있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먼저 대량생산할 때 불량품이 많이 나오는 이른바 수율 하락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TSMC, 삼성은 3나노 공정에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현재 갤럭시 시리즈에 들어가는 AP는 4나노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7나노는 사실 최신기술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EUV 없이 삼성과 TSMC, 인텔이 추진중인 2나노급 공정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여기가 한계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MCP)에 실린 메이트60프로 사용기를 보면 기린9000S의 한계가 보인다. SMCP는 실제로 사용해보니 메이트60프로가 아이폰15, 갤럭시Z 폴드 5보다 칩 성능이 떨어진다고 했다. 3나노 공정칩을 사용한 아이폰15와는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화웨이가 메이트60프로의 칩 성능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을 인식하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SMCP가 더 관심을 보인 주제는 운영 체제(OS)였다. 화웨이 스마트폰에는 자체 개발한 하모니 OS가 들어간다. 하모니는 ‘짝퉁 안드로이드’로 불릴 만큼 안드로이드와 유사하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사용하기에 불편하지 않다는 말이다. 안드로이드와의 차이점은 구글이 만든 앱들이 없다는 점이다. 구글 앱 장터인 플레이 대신 ‘앱 갤러리’라 불리는 스토어에서 다양한 앱들을 내려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X(옛 트위터)를 설치해 쓸 수 있다.

하모니는 스마트폰 이외의 TV, 차량, 스마트워치, PC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운영체제다. 사실 미국이 주도하는 분야는 반도체가 아니라 OS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하모니 4.0이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의 규제가 실패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외 반응은 차갑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해외 소비자들이 구글 앱을 사용할 수 없는 화웨이 전화기를 구입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진단했다. 윌 웡 IDC 애널리스트는 "화웨이가 해외 사용자를 다시 확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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