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무라카미 하루키 "이 소설은 가시처럼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서믿음 2023. 9. 1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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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은 줄곧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며 "이 작품을 이렇게 다시 한번, 새로운 형태로 다듬어 쓸 수 있어서 솔직히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고 고백했다.

어쨌거나 나와 너는 적어도 그 시기,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서로의 마음을 티 없이 순수하게 한데 맺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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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6년 만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다. 해당 소설이 첫선을 보인 이후 단행본으로 나온 건 43년 만이다. 1979년 데뷔 이래 하루키는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소설을 모두 책으로 출간해왔다. 다만 1980년 문예지 '문학계'에 발표했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만은 예외로 남아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코로나19를 확산을 계기로 묻어둔 작품을 다시 꺼내어 새롭게 완성할 수 있다는 그. 그는 "이 작품은 줄곧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며 "이 작품을 이렇게 다시 한번, 새로운 형태로 다듬어 쓸 수 있어서 솔직히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고 고백했다. 소설은 열일곱 살 남고생인 '나'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여고생 '너'를 쫓아 꿈을 관리하는 미지의 세계로 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냥 원하면 돼.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사이 많은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 마.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도시가 사라질 일은 없으니까.” - p.15

우리는 연인 사이였을까? 간단하게 그런 이름을 붙여도 될까? 나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나와 너는 적어도 그 시기,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서로의 마음을 티 없이 순수하게 한데 맺고 있었다. 이윽고 둘만의 특별한 비밀 세계를 만들어내고 함께 나누게 되었다―높은 벽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도시를. - p.33

너에게 꿈이란 현실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과 거의 동급이었고, 간단히 잊히거나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꿈은 너에게 많은 것을 전달해주는, 귀중한 마음의 수원水源 같은 것이었다. - p.43

어쩌면 그것이 영겁이 지닌 한 가지 문제점인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어디로 향하면 좋을지 모른다는 것. 그러나 영겁을 추구하지 않는 사랑에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단 말인가? - p.80

“가끔 내가 무언가의,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너는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듯 말한다. “여기 있는 나한테는 실체 같은 게 없고, 내 실체는 다른 어딘가에 있어.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언뜻 나처럼 보여도 실은 바닥이나 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어.” - p.111

시간은 몹시 느릿느릿하게, 그래도 결코 뒷걸음치지 않고 내 안을 통과해 갔다. 일 분에 정확히 일 분씩, 한 시간에 정확히 한 시간씩. 느리게 나아갈지언정 거꾸로 가는 법은 없다. 그것이 그때 내가 몸으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때로는 그 당연한 것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 p.137

우리는 자신들이 서 있는 견고한 지면 아래, 땅속 미로를 흐르는 비밀에 싸인 암흑의 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것을 실제로 본 자는, 그것을 보고 이쪽으로 다시 돌아온 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 p.223

나는 그 슬픔을 무척 잘 기억했다. 말로 설명할 길 없는, 또한 시간과 더불어 사라지지도 않는 종류의 깊은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만히 남기고 가는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까? - p.280

“지금 여기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믿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강하고 깊게 믿을 수 있으면 나아갈 길은 절로 뚜렷해집니다. 그럼으로써 이다음에 올 격렬한 낙하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혹은 그 충격을 크게 누그러뜨리거나요.” - p.452

한 세계와 또다른 세계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각인. 나는 아마도 그것을 내 존재의 일부로 간직한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 p.667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동네 | 768쪽 | 1만95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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