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들고 덤벼서, 발로 찼더니 쌍방폭행?…정의 어긋난 판결” [박성우의 사이드바]

박성우 2023. 9. 1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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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판사가 할 말입니까?”
“뭐?”
“기록도 안 보고 선고할 거면 재판은 왜 하셨습니까? 그냥 자판기에서 판결 뽑으면 되잖습니까?”

판사 출신 추리소설 작가 도진기 변호사가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판사 출신 추리소설 작가 도진기 변호사(56·사법연수원 26기)의 장편소설 『합리적 의심』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1년 동안 무죄 판결을 한 번도 안했다고 큰 소리 치는 부장판사에게 배석판사가 대드는 설정이다.

도 변호사는 2010년 판사 시절, 단편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했다. 2017년 20년 간 판사 생활을 마감하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 추리소설을 좋아했다는 그는 “판사는 호기심과 무관하게 관행대로 해오던 것을 그대로 잘 하는 직업이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소설에 나오는 배석판사에 자신의 로망을 투영시킨 것 같았다.

도 변호사는 “유전무죄나 정치편향이라고 비판해봤자 판사들은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법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넘겨버린다는 것이다. 판결문을 꼼꼼히 읽고 ‘판결 논리가 엉성하다’고 하는 식의 비판이 더 효과적인데, 이건 또 ‘판사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야한다’ ‘다른 판사가 한 판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아니다’라는 문화가 있어 금기시된다고 했다.

도 변호사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형사사건에서 무죄가 났다고 민사사건에서도 범죄 혐의가 다분한 사람에게 보험금 같은 금전적 이득을 취하게 하는 판결 흐름이다. 형사와 민사가 입증 책임이 다른데 너무 안이하고 관행적 판결이라는 것이다. 지난 12일 서울 서초동 법원 앞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긴 이야기를 나눴다.

Q : 왜 추리소설 작가가 되셨어요.
A : 추리소설은 누가, 왜, 어떻게 해서 사건이 만들어진 건가 하는 궁금증이 크면 클수록 더 재미있는 장르인데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호기심이 강했던 것 같아요.

Q : 판사가 되는 데도 영향을 미쳤나요.
A : 판사는 호기심과는 정반대죠. 그냥 관행대로 해오던 걸 그대로 잘 하는 사람이 판사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법원에서 나올 무렵에 전문가 통해서 한 40여 명의 판사들이 함께 심리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 전문가가 제 결과를 보더니 ‘법원 생활 굉장히 힘드셨겠다’ 그러더라고요. 재미와 상상력,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기질이 있는데 잘 안 맞는다는 거죠.

Q : 그래도 법원에 20년이나 계셨네요.
A : 단독 판사를 하다가 힘들 즈음에 해외 연수를 가게 되고, 다녀와서 다시 힘들 즈음에 부장판사가 돼서 배석판사와 함께 판결하게 되니까, 그런 식으로 버텨온 것 같습니다.

김현동 기자

Q : 지금은 변호사와 작가를 병행하시는 건가요.
A : 추리소설은 제가 좋아서 쓰는 것이고요. 변호사 업무가 ‘메인’이죠. 작가 수입은 형편 없습니다. 추리소설이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장르는 아니거든요. 책을 사지 않고 도서관 등에서 빌려보는 사람도 많고요.

Q : 2019년에 『판결의 재구성』이란 책을 내셨어요. 추리소설이 아닌데요.
A : 그 책은 시민들이 생각하는 법과 판사들이 생각하는 법 사이의 괴리를 좀 메워보려고 쓴 것인데요. 그러면서 판결 비판도 했습니다. 법을 오해한 상태에서 비판하면 판사들은 ‘법을 모르고 저러네’하고 넘어갑니다. 법을 알고 그 논리 안에서 ‘이게 잘못되지 않았느냐’라고 해야 뼈아픈 비판이 되죠.

Q : 일반인들은 법원이 선과 악을 구분해서 착한 사람 손을 들어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A : 사실 그건 법조인으로서 평생 가는 주제인데요. 법이라는 것은 ‘실체’보다 ‘절차’를 추구하는 시스템 입니다. 흔히 법이 질서와 정의를 둘 다 추구한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돌아가는 걸 보면 질서 쪽에 훨씬 더 치우쳐 있어요.

Q : 정의보다 법적 안정성을 더 추구한다는 말인가요.
A : 사실 법적 안정성을 제일 많이 깨는 데는 대법원이에요. 하급심은 대법원 판례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바꿔도 사회가 무너진다거나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더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판사들이 법적 안정성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그게 깨지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절차’의 뒤에 숨지 않고, 좀더 실질적인 정의를 추구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Q :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면요.
정당방위 같은 게 대표적인데요. 칼을 들고 덤비는데 그걸 발로 차서 막았더니 쌍방 폭행이다, 이런 건 너무 정의 관념에 안 맞는, 질서 집착적 판결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요. 보험금을 노리고 캄보디아 출신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에 대해 1%의 입증 부족으로 무죄가 난 사건도 마찬가지 입니다. 형사 사건은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즉 완벽한 입증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민사 사건은 다릅니다. 증거의 우월성이 있으면 됩니다. 더 믿을만한 쪽이 이기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1%의 입증 부족으로 무죄를 받았을지언정, 민사 재판에선 상당한 증거가 있다면 살인을 했다고 인정하고, 보험금 청구를 기각하는 게 분명히 맞는 법리거든요. 형사 판결과 민사 판결의 결론을 일치시키는 관행에 대해선 의아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정책 관점에서 이런 판결은 오히려 범죄를 부추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Q : 그렇게 판결하는 판사들을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A : 여수 금오도 사건이라고 있습니다. 이것도 아내를 죽인 혐의를 받는 남편이 무죄 받고 보험금 청구한 사건인데, 1심에서 청구 기각하면서 ‘민사적으로 살인 맞다. 그래서 보험금 청구 기각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판결, 너무 잘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캄보디아 아내 살인 사건을 보면 이 판결도 뒤집어지게 생겼죠.

김현동 기자

Q : 일반 시민과 판사 사이의 생각차가 더 벌어지겠네요.
A : 예전에 미국의 OJ 심슨 사건 보면 형사상 무죄 받았지만 민사상 살인 인정하고 수백억 배상 판결해서 파산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하는 게 정의 관념에 맞는 것 같아요. ‘형사가 무죄인데 민사 재판에서 어떻게 돈을 안 줘’ 하는 어떤 장막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참 아쉽습니다. 이은해 계곡 살인 사건의 경우에도 작위 살인(가스라이팅)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너무 신중하게 내린 판단 같습니다.

Q : 형사 재판에서 ‘합리적 의심’도 판사님마다 다른 것 같아요.
A : 합리적 의심이 존재할 때 피고인에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라고 하지만, 어떤 경우엔 합리적 의심이 아니라 황당한 의심, 정말 바늘 끝이 들어갈까 싶은 의심을 하는 판사도 있죠. 그렇게 보면 전부 판사 개개인에 맡겨놓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토론도 하고, 외국과도 비교해 보고, 논문도 쓰고 했으면 좋겠어요.

Q : 그렇게 보면 대법원 판례가 참 중요하네요.
A : 하급심이 판례에 맞추려고 하는 측면에서 그렇죠. 하지만 솔직히 대법원 판결문도 논리가 납득이 안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3심제여서 대법원 판결이 최종적이고 ‘노 터치’라고 하는 것이지, 4심제였다면 대법원 판결의 30%는 깨질 겁니다(웃음). 대법원 판결이라고 건드리지도 말라고 하기보다는 논리적인 비판 정도는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Q :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졌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A : 우선 우리 국민의 수준이 예전보다 높아졌고요. 다시 말하지만, 절차나 형식에 대한 추구보다 좀 현실과 실질에 맞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이 아무리 이상하고 세상의 욕을 먹어도 판사 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절차를 위반한 판사는 징계받습니다. 과연 이게 정의 관념에 부합하는 것인지 국민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고, 법원도 ‘절차만 올바르면 됐어’ 하는 것을 넘어서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도 변호사는 현재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다. SF(공상과학)와 미스터리를 결합한 내용으로, 굳이 비교하자면 일본 만화 ‘데스노트’ 같은 분위기의 소설이라고 한다. 도 작가의 작품엔 판사 시절 차마 하지 못했을 것 같은 얘기들이 담겨 있다. 최근작은 『복수 법률사무소』다.

「 ※사이드바(sidebar)는 미국 법정에서 판사가 재판 진행에 대해 할 말이 있을 때, 또는 검사나 변호인이 배심원들을 피해 판사에게 직접 얘기하고 싶을 때, 법대 앞에 모여 논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문업계 용어로는 메인 기사 옆에 붙는 ‘해설 박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화제의 법조인들을 열심히 만나고, 열심히 해설하겠습니다. 2주 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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