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단식, 與 설득은커녕 조롱…"여의도 정치가 사라졌다" [현장에서]
#. 2018년 8월, 당시 국회 본관에서 김성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마주 앉았다. 김 원내대표는 무더운 날씨에도 정장 재킷까지 차려입고 있었다. 우측 다리 옆엔 조그마한 전기난로가 켜져 있었는데, 기자가 “덥지 않으냐”고 묻자 김 원내대표는 “단식 후유증으로 계속되는 오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 그리고 석달가량이 지난 초겨울 무렵, 이번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김 원내대표의 얼굴엔 식은땀이 억수같이 흘러내렸다. 재킷까지 벗고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는데도 머리카락은 함빡 젖어 있었다. “건강이 안 좋은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온몸이 고장 난 것 같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단식으로 죽은 정치인은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2018년 5월의 김 전 원내대표 단식을 두곤 기자들은 물론이고 민주당에서조차 “이러다 큰일 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스러운 반응이 많았다. 그는 단식 도중 한 청년의 폭행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을 때도 단식을 만류하러 달려온 당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향해 “죽어서 나갈 거야”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물론 당시에도 “혼수성태”라며 조롱하는 사람이 없진 않았지만.
반면 13일로 단식 14일차에 접어든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단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민주당을 제외하곤 싸늘할 정도다. 아니, 조롱과 비하가 넘쳐난다.
전날 국민의힘 공식 논평만 살펴봐도 “‘날 것’을 이리 좋아하시니, 단식 또한 날로 먹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김민수 대변인)라면서 단식 시작 전날 횟집에 간 것을 꼬집거나 “단식 쇼로 인한 동정이 아닌 후안무치에 대한 괘씸죄가 추가돼야 할 판”(강민국 수석대변인) 등의 표현이 수두룩하다.
물론 단식의 희화화를 이 대표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우선 단식의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 그는 지난달 31일 단식을 시작하며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막겠다”며 ▶민생 파괴ㆍ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과 개각 등을 촉구했다.
이를 두고 여권 고위관계자는 “타협이 불가능한 모호한 정치적 주의ㆍ주장만 늘어놓거나, 국정 운영방향을 완전히 반대로 돌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며 “결국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방탄용, 이를 위한 내부 결집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회 과반을 장악한 원내 1당 대표가 최후의 정치적 수단으로 여겨지는 단식을 택한 것을 두고선 민주당에서도 “정치 포기”(이상민 의원)란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정치 포기’란 비판이 꼭 민주당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간 정치인의 단식 땐 으레 상대 당 지도부나 대통령 정무수석이 찾아 “건강이 우선”이라며 중단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 이 대표의 단식엔 항의 방문차 찾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하곤 여권 인사는 아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한 입법 과제를 풀어낼 수 없는 소수 여당이다. 이참에 차라리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이 대표를 찾아 “앉아서 죽기보다 서서 싸우는 것을 택하라”며 단식 중단과 정치 복원을 설득해보는 것은 어떤가. 그런데도 이 대표가 버틴다면 이후의 일은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 듯, 사라진 정치의 복원도 여야가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정치가 너무 천박해져 버렸다”는 김성태 전 원내대표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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