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프리즈 아트페어, ‘메기 효과’가 나타났다
최근 SNS를 도배질한 영국 프리즈 아트페어는 지난해 서울에 상륙했다.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가 아시아의 거점으로 홍콩이 아닌 서울을 택했다는 자부심은 개막 첫날부터 낭패감으로 바뀌었다. 물 건너온 프리즈와 토종 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는 코엑스 3층과 1층에서 각각 열렸지만 그 풍경이 극명하게 대비돼서다. 3층 프리즈는 전 세계 미술계 인사들과 한국의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곳에선 영어가 공용어였다. 1층 키아프는 파리 날릴 정도로 텅텅 비었다.
프리즈에 참여한 21개국 110여 갤러리 중 한국 갤러리는 겨우 12개. 결국 외국 작가 작품을 한국 컬렉터들에게 무더기로 팔아주는 장터를 열어준 결과밖에 안됐다. 그 프리즈를 키아프를 주최하는 한국화랑협회가 유치했다. 키아프는 사상 처음으로 매출 실적을 발표하지 않았다. 공동 개최를 통해 메기 효과를 노리다 메기에게 잡아먹히는 처지가 될까 우려됐다.
하지만 2회째인 올해는 프리즈가 그야말로 ‘메기 효과’의 그 긍정적인 메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이후 전 세계에서 처음 열린 글로벌 아트페어라는 지난해의 특수 상황이 사라져 분위기는 차분했다. 프리즈의 매출 실적은 나흘 만에 6500억원을 달성한 것으로 소문난 지난해보다는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매출과 무관하게 프리즈가 한국 미술시장의 질적 향상에 끼칠 긍정적인 효과가 올해부터 감지됐다. 세 가지로 요약이 된다. 프리즈에 참여한 외국 화랑들이 올해부터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깨진 도자기를 이어 붙이는 이수경 작가의 작품을 이탈리아 마시모 드 칼로 갤러리에서,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영상 작품을 일본의 스카이더바스하우스에서 발견하곤 어찌나 반갑던지. 서울에도 진출한 미국계 리만머핀 갤러리는 전속인 서도호, 이불, 성능경 외에 예상치 못했던 홍순명 작가의 작품을 팔려고 들고 나왔다. 리만머핀 서울의 손엠마 대표는 “호반미술상을 수상한 홍순명 개인전을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지난봄에 보고 감동했다. 라셀 리만 공동대표에게 추천했더니 가을 프리즈 아트페어에 선보이자며 바로 수락했다”고 뒷이야기를 전해줬다.
홍 작가는 주변적 사물을 주인공인 것처럼 포착해 그리는 ‘사이드스케이프(옆의 풍경)’로 한국 미술계에서 평가받지만 문경원, 전준호, 이수경, 이불처럼 베니스비엔날레에 진출한 작가는 아니다. 다시 말하면, 홍 작가 사례는 한국 작가가 해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지 않고도 한국 안에서 외국 갤러리에 발탁될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신호다. 효과를 높이기 위해 예술경영지원센터는 키아프·프리즈 측과 공동으로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시니어 큐레이터 융 마 등 해외 미술계 유력 인사 18명을 초청해 한국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가졌다.
두 번째는 키아프의 변신 가능성이다. 키아프는 화랑협회가 운영하는 것이라 온정주의 때문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과거와 달라진 게 확연했다. 키아프는 말이 국제아트페어이지 그간은 한국 화랑들의 잔치였다. 그런데 올해는 200여 참여 갤러리 중 해외 갤러리 비중이 전체의 34%를 차지했다. 해외 갤러리 숫자를 20% 늘려서다. 화랑 관계자는 “키아프가 프리즈와 바로 현장에서 비교되니 바짝 긴장했다”고 했다.
세 번째는 관람객의 안목을 높이는 교육 효과다. 프리즈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시대 대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도널드 저드,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 현대미술사에 거론되는 작가들의 작품은 키아프에서는 나오기 어렵다. 프리즈를 구경하며 높아진 안목은 키아프가 말 그대로 국제적인 아트페어로 성장하도록 독려하는 채찍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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