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청년 세대는 ‘봉’이 아니다

주정완 2023. 9. 1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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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 논설위원

‘우리 세대는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겠다. 모든 부담은 다음 세대에 떠넘긴다.’ 지난 1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발표한 연금개혁안을 보고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전문가 위원회가 제시한 연금개혁 시나리오는 겉보기엔 그럴듯했다. 개혁안의 골자는 ‘더 내고 더 늦게 받기’였다. 다만 결정적인 약점이 눈에 들어왔다. 극심한 세대 간 불평등이다. 이대로 가면 청년 세대는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세대에 비해 지극히 불리한 조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연금개혁
기성세대만 혜택, 청년에겐 불리
‘실질 연금액 삭감’ 일본 참고를

차분하게 따져보자. 우선 연금 보험료율 인상이다. 전문가 위원회는 해마다 0.6%포인트씩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는 9%인데 단계적으로 12~18%까지 올리자는 제안이다. 인상 개시 시점은 2025년이다. 1965년 출생자가 60세 환갑을 맞는 해다.

원칙적으로 국민연금은 60세까지만 보험료를 납부한다. 연금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1964년 이전 출생자는 보험료율 인상의 부담이 전혀 없다. 이들은 현역 시절 소득의 9%를 연금 보험료로 내고 남은 평생 연금 지급을 보장받는다.

특히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약 700만 명)에겐 수지맞는 계산법이다. 현역 시절엔 적게 내고 은퇴 이후엔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국민연금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왠지 불안했던 연금 고갈 가능성도 이번 기회에 떨쳐버릴 수 있다.

청년 세대 입장에선 완전히 계산이 달라진다. 누군가 혜택을 본다면 다른 누군가는 그 비용을 치러야 한다. 한때 ‘밀레니엄 베이비’로 불렸던 2000년 출생자를 생각해보자. 이들이 25세가 되는 2025년부터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단계적으로 오른다. 전문가 위원회가 제시한 시나리오에는 세 가지가 있다. 그중 중간 시나리오는 2034년까지 꾸준히 올려 최종적으로 보험료율이 15%가 되게 하는 것이다.

2000년생을 기준으로 보면 30대 중반부터 60세까지 약 25년간 소득의 15%를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최고 보험료율을 부담하는 기간이 더 길어진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연금 재정이 다시 불안해진다면 보험료율이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직장 가입자라면 근로자와 사업주가 절반씩 나눠 내긴 한다. 어쨌든 건강보험 등 다른 사회보험과 세금까지 포함하면 소득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거둬가는 걸 피하기 어렵다.

현재 국민연금에는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모순이 있다. 먼저 가입한 세대는 비교적 많은 혜택을 받고 나중에 가입한 세대는 큰 부담을 떠안는 점이다. 이런 식의 세대 간 불평등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오히려 심화시키는 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그렇다고 연금 보험료율을 올리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만일 연금 보험료율을 동결한다면 최악의 선택이다. 당장 여론의 반발은 피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연금 고갈이란 ‘파국’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식의 파국은 어느 세대에게도 좋을 게 없다. 그나마 현 단계에서 최선은 세대 간에 조금씩이라도 부담을 나눠 갖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연금개혁안에는 세대 간 형평성에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다.

연금 수급 연령을 늦추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행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1969년 이후 출생자는 65세가 돼야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미 법적 정년(60세)과 비교하면 5년의 괴리가 있다. 전문가 위원회는 단계적으로 68세까지 늦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1973년생부터 연금 수급 연령이 늦춰진다. 특히 1981년 이후 출생자는 68세까지 기다려야 노령연금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

이렇게 연금 수급 연령을 늦추면 법적 정년도 함께 연장해야 한다는 요구를 피하기 어렵다. 기성세대가 회사에 오래 남아 있을수록 청년 세대로선 왠지 손해 본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자칫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이 첨예하게 불거질 수도 있다. 이래저래 청년 세대의 피해 의식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기성세대는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인 2004년 도입한 ‘연금 자동조절장치’다. 연금 수급자의 통장에 찍히는 명목 금액은 줄이지 않으면서 물가나 임금 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연금액을 조금씩 깎아나가는 방식이다. 일본에선 ‘매크로 경제 슬라이드’라고 부른다. 일본식이 꼭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기성세대도 일정 부분 성의를 보여야 하는 건 분명하다. 청년 세대도 납득할 수 있는 연금 개혁안이 필요하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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