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실학산책] 세종의 집현전, 정조의 규장각

2023. 9. 1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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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조선 500년 동안, 전제왕조국가에서는 임금 한 사람의 사람됨과 능력에 나라의 흥망성쇠와 백성의 안위가 걸려 있었다. 세종과 정조 같은 어진 임금이 나오면 백성이 제대로 숨 쉬면서 살겠지만, 연산이나 광해 같은 임금이 나오면 백성은 매우 고달팠고 훌륭한 학자와 인재는 탄압의 시간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악한 임금을 만나면 가장 먼저 괴로운 사람이 정직한 관료나 양심적인 학자였다. 독단적인 전제군주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정직한 관료이거나 진실과 정의를 부르짖는 지식인이기 때문이었다.

「 집단지성의 힘을 빌린 두 임금
인재 육성하고 국정에도 반영
관료들과 토론하며 정책 결정
‘불통’의 오늘날 정치에 회초리

역사에 악한 군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직한 관료를 우대하고 양심적인 학자를 존경하던 훌륭한 군주도 있었다. 조선 역사에서 전기에는 세종 대왕, 후기에는 정조 대왕이 뛰어난 관료를 양성하고 지식인의 능력을 빌리기 위해 온갖 제도를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세종은 집현전(集賢殿), 정조는 규장각(奎章閣)이라는 기관을 설립하여 국중(國中)의 뛰어난 인재를 재교육시키고, 집단지성의 장점을 살려냈다. 군왕의 독단을 막고 합의된 정책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소통의 정치 제도를 구현하였다.

공부에 집중하는 ‘사가독서’ 제도

창덕궁 규장각의 야경. 그 앞의 부용지에도 규장각 그림자가 담겨 있다. [중앙포토]

집현전은 학자를 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세종 2년인 1420년 설립하여 경연(經筵)과 서연(書筵)을 열어 임금과 유신이 경사(經史)를 강론하여 국왕의 학문을 넓히고 세자를 교육하는 일을 하였다. 경전과 사서를 읽고 강론하면서 정치의 득실을 따져 군왕이 올바른 정치의 길로 들게 인도해주고, 장래의 군왕인 세자가 올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국가적으로 가장 우수한 인재 20여 명을 선발하여 집현전에서 일하게 하여 경사를 익힌 실력으로 통치를 보좌하게 하였으니, 세종의 치세가 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인재들이 온갖 지혜를 발휘하여 끝내는 훈민정음이라는 문자를 창안해냈고, 『고려사』 『농사직설』 『팔도지리지』 『삼강행실도』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 귀중한 문헌을 간행할 수 있었다. 더구나 ‘사가독서(賜暇讀書)’라는 학문 연구 기간을 두어 학자들이 마음껏 학문을 연마하도록 하였다.

규장각은 정조가 즉위한 해인 1776년 3월 창설할 것을 명한 것으로, 왕실의 도서관이자 학술과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이었다. 전제군주의 독단을 막고 당대 최고로 우수한 관료들이 임금과 함께 정책을 토론하고, 그렇게 얻어낸 결론으로 올바른 통치를 하려는 목적에서 세운 기관이었다. 중국에서 수입한 1만권이 넘는 『고금도서집성』을 비롯한 수만 권의 도서를 비치하여 학자 관료들에게 마음껏 읽을 기회를 주었다. 경연을 열어 임금과 경전과 사서를 강론하고 토론하며 심도 있는 정책을 입안해내는 지극히 생산적인 업무를 수행하던 기관이었다.

더구나 규장각에는 초계문신(抄啟文臣) 제도를 수립하여 37세 미만의 우수한 소장학자들을 선발해서 3년 동안 마음껏 학문을 연구할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40세에야 벼슬에 나아가 본격적으로 임금과 함께 국가를 경영하는 일에 노력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정조는 꼼꼼한 지도자이자 학문이 높고 깊은 군주여서 그들에게 직접 시험문제를 내고 답안지까지 직접 채점, 성적을 발표하고 포상까지 했다.

위대한 통치자,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우선 통치자 본인이 인품이 높고 학문이 뛰어나야 한다. 세계적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도 초계문신 출신인데, 그는 글 곳곳에 학자·관료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학문을 닦은 정조에 대해 탄복하면서 극찬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그런 위대한 지도자 아래서 다산 같은 학자가 배출되었던 셈이다.

초계문신 출신의 다산 정약용

조선시대에도 학문이 높고 글 잘하는 임금은 악행을 덜 저질렀다. 자신의 학문이 어느 정도 높았기 때문에 나라를 통치하려면 우수한 학자나 실력 있는 관료가 나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집현전과 규장각 같은 제도를 설립했을 것이다.

집현전도 규장각도 없는 오늘의 정치, 전제군주에 버금가는 힘과 권한을 지닌 제왕적 대통령제 시대를 살고 있다. ‘제왕’의 독단을 막을 제어장치가 빈약한 상황이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중요 정책이 바뀌고 결정되는 일이 잦다. 세종이나 정조만큼의 학문과 철학을 갖춰도 어려운 게 국정 운영인데 여전히 ‘불통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방법은 있다. 지금이라도 집현전이나 규장각 같은 기관을 신설해 집단지성의 힘으로 나랏일을 의논해보면 어떻겠는가.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세종과 정조의 치세술이 더욱 그리울 뿐이다. 그런 대왕의 지혜를 본받아 나라를 꾸려간다면 백성도 보다 편안해질 것이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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