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의 법과 삶] 의료사고보험 활성화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사고는 연간 1만~4만건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대부분 의료사고인지 모르고 지나가거나 의사와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패배의식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건수는 연간 900건 전후에 불과하다.
소송에서 의료과실이 인정돼도 법원은 환자 측의 질병, 체질적 소인 등을 이유로 배상액을 대폭 삭감하고 있어 환자가 실제로 배상받는 액수는 교통사고나 산업재해사건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심지어 생명에 지장이 없는 단순 미용 성형수술을 받다 피해를 보아도 여러 이유를 들어 환자에게 30~40% 이상 책임을 지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환자 측의 책임을 묻지 않는 판결이 드물다. 의료인에게 지나치게 고액의 배상판결을 내리는 것이 가혹하고, 적극적 진료를 피하여 환자에게 해가 된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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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사고 놓고 의사·환자 대립
의료진에 대한 불신 도움 안돼
자동차보험식의 책임보험 도입
환자와 의료인 서로 양보해야
」
일부 언론에서는 최근 수술 직후 대량출혈로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거나, 분만손상으로 뇌성마비에 이른 사건에 대해 법원이 10여억원의 배상판결을 선고하자 “수술이나 분만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할 우려가 있다”며 보도하고 있다. 이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피해액은 판결금의 몇 배가 되는 데도, 피해 환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법원 역시 의료인에게 대폭 책임을 삭감해 주었음에도 환자·법원 모두 의료계의 공적으로 편가르기 하며 사회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환자와 의료인은 치료하고 회복하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협력자이다.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사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신체를 침습하는 행위여서 원치 않는 악결과가 발생할 위험이 항상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기존의 의료행위 원가인 의사비용, 임상인력인건비, 재료비, 장비비, 간접진료비용 이외에 1~2%로 추정되는 의료사고 위험도를 상대가치점수에 신설하여 의료사고 발생 시 적정보상을 하도록 하였다. 신경외과나 산부인과같이 위험한 진료행위에 대해서는 상대가치점수를 높게 인정해 주고, 더 지급받는 진료비에서 환자에게 의료사고 피해 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자동차보험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대중교통요금원가에 운전사들이 내는 교통사고 보험료가 포함되어 있다. 과거 교통사고 피해자는 가해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배상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아 치료조차 받을 수 없어 고통을 받고, 대중교통 회사 운영자와 운전사는 파산하기 일쑤였다. 국가는 사고 경중에 상관없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하여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범죄자가 운전기사였다.
1980년대 들어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하여 많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였다. 보험제도를 활성화해 교통사고 보험료는 승객이 내도록 하는 대신 가해 운전사는 “자동차의 운행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고, 피해자가 고의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배상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교통사고 피해자는 운전사의 과실을 입증하지 않아도 적절한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운전사는 형사처벌이 감면되고, 월급을 압류당하지 않아 안심하고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법원도 대중교통 회사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법리에 따라 손해배상액을 결정하여 사고 당사자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되었다. 민·형사 책임에서 해방되어 누구나 마음 놓고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되면서, 자동차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그 혜택이 모든 국민에게 다시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가 되었다.
보험료를 환자가 부담하고, 대신 보험에 가입한 의료인은 “불가항력적 원인이나 환자의 자해행위로 악결과가 발생하였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배상책임을 지우도록 하는 보험제도가 도입되면 현재와 같은 환자와 의료인의 갈등은 상당히 해결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환자가 부담하고 있는 의료사고 위험도 비율을 공개하고 진료비에 포함된 그 비용을 보험에 강제가입시키거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원천징수하여 의료사고배상보험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고가 늘면 위험도 비율을 높이면 된다. 의사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 의료인에게 형사처벌을 감경해 주어 고소·고발의 부담을 덜 수 있게 하여 보험가입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급속히 성장할 수 있던 원인 중 하나는 책임 있는 자가 적정한 책임을 지게 한 데 있다. 그러나 의료사고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책임원칙이 무너지면 사법이 불신받고, 사적 보복이 늘어난다. 피해를 보았다고 느끼면 못 참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환자는 의료인을 신뢰하고 따라야 치료된다. 의료인은 환자가 있어야 성취감을 느끼고, 진료수익을 얻는다. 상호 양보와 희생이 환자와 의사 모두 승자로 만들 수 있다.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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