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스타트업, 규제와 함께 춤을?
스타트업들이 고대하던 ‘비대면 진료 법제화’가 국회에서 무산된 지난달 말, 다른 이유로 고사 위기에 처한 헬스케어 플랫폼이 논란이었다. 유료화 전환을 선언한 병원 예약 앱 ‘똑닥’이다.
똑닥은 동네 소아과 의원에 ‘오픈런’을 하거나 몇 시간씩 대기하던 부모들 고충을 해소한 서비스로 유명하다. 진료 예약 정보를 병원 전산시스템(EMR)과 연동한 서비스는 병원들도 환영했다. 그런 똑닥이 월 1000원을 받겠다고 하자, 100만 이용자들이 배신감을 토로했다. 앱 운영사 비브로스 측은 “최근 3년 적자만 200억이 넘는데 투자 혹한기라 자금 수혈도 힘들어 내린 고육책”이라고 호소했다. 36년째 시범사업 지위를 못 벗어나는 비대면 진료가 아니어도, 한국에서 민간 의료 서비스 플랫폼이 생존하기란 이렇게 힘들다.
그럼에도 똑닥은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들보다 처지가 낫다. 의약업계의 반대나 사업의 법적 근거가 없어 불안할 일은 없다. 비결은 간단하다. ‘대면 진료’ 중심인 기존 질서에 맞서지 않는 것. 똑닥도 코로나19 확산기에 비대면 진료를 중개했지만, 의약업계가 반발한 ‘약 배송’엔 손도 안 댔다. “(의약협회들과) 절대 척 지지는 말자는 게 사업 기조”라는 회사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나니 쓴웃음이 났다.
규제 자체에서 기회를 찾은 스타트업은 또 있다. 국내 등록 변호사 43%(1만4500만명)가 회원 가입한 판결문 검색 서비스 ‘엘박스’다. 회원 변호사들로부터 공유 받은 판결문으로 262만건 넘는 DB를 구축했다. 법원 직원이면 누구나 편하게 검색·열람하는 미확정 하급심(1·2심) 판결문을, 일반 국민은 경기도 고양시 법원도서관에 가야만 무료 열람할 수 있는 규제 환경을 활용했다. “법원이 판결문을 다 공개해버리면 어쩔 건가”는 우려에도 여유가 있다. 이진 대표는 “법원이 갑작스럽게 그런 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공개 판결문이 늘수록) 우리의 검색 기술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법원의 한계를 꿰고 있다.
그러나 모든 스타트업이 이들처럼 규제와 공존할 순 없다. 그 길이 생존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모난 돌은 정 맞는 사례가 반복된다면 정부의 ‘혁신성장’은 말잔치가 될 뿐이다.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뭐 필요하노? 의료기관이 다 하면(되지)”이라는 명언을 남긴, 약사 출신 전혜숙 의원의 ‘이권 카르텔’이 의심스럽지만 그게 어디 전 의원뿐일까. 내년 총선을 앞둔 지금 여야 모두 이해집단 눈치를 본다. 3~4년 전 택시 노조에 떠밀려 ‘타다’를 외면하던 국회의 역주행은 계속되고 있다.
박수련 IT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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