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빛 때깔 곱다, 고와…RM의 1억으로 되살린 조선왕실 ‘웨딩드레스’

강혜란 2023. 9. 1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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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활옷 만개 ... ’. 미국 시카고의 필드 박물관이 독일 수집가 움라우프에게 1899년 구입한 소장 활옷 등이 전시됐다. [뉴스1]

진홍색 비단에 모란·연꽃·백로·봉황 등 복된 문양을 있는대로 수놓았다. 앞섶 부근 양쪽엔 연꽃을 든 어린이와 함께 수여하해(壽如河海), 복여하해(福如河海) 즉 바다와 강처럼 오래 살고 복을 누리라는 축원 문구를 새겼다. 등쪽 상단엔 이성지합(二姓之合), 만복지원(萬福之源) 즉 남녀의 결합은 만복의 근원이라고 새겼다. 일생에 한번 있는 혼롓날, 공주·옹주·군부인(왕자의 부인) 등 왕실 여성들이 겹겹의 예복 맨 바깥에 걸쳤던 활옷이다. 섬세한 자수에 화려한 금박 무늬로 마무리해 고귀한 신분의 경사스러운 날을 빛냈다.

국내외에 50여점만 전하는 조선 왕실 활옷 가운데 완성도와 보존 상태가 뛰어난 9점을 포함해 관련 혼례 유물 110여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는 1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 혼례복’ 특별전이다.

RM

특히 방탄소년단(BTS)의 RM(김남준)이 지난 2021년 쾌척한 1억원으로 보존처리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라크마) 소장 활옷이 세월의 때를 벗은 화사한 모습으로 관객을 맞는다. 조선 골동품이 활발하게 거래되던 시기인 1939년 미술품 수집가 벨라 매버리가 라크마에 기증한 이 활옷은 2020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해외 문화재 보존복원 공모에 미술관 측 신청으로 선정됐다. 마침 RM이 국외소재문화재 활용에 써달라고 1억원을 기부하자 재단 측은 지원 대상을 RM 측과 논의한 끝에 이 활옷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RM은 전시 개막을 맞아 공개 편지를 통해 “세월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자수 탈락이 거의 없는 등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들었다”면서 “보존처리 후 전반적인 활옷 연구에 도움이 되고 대한민국 전통 문화를 전세계인들이 향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활옷은 조선 전기 기록물엔 홍장삼(紅長衫)으로 기록됐다. 당시 신분제 사회에서 가장 진한 붉은색인 대홍(大紅)의 염색은 왕실에만 허락됐다. 하지만 민간에서도 혼례 때 이를 착용하는 일이 잦아지자 예외적으로 허용하게 됐고 명칭도 민간에서 부르던 할옷 또는 활옷으로 굳어져갔다. 민간 여성도 혼삿날만큼은 공주처럼 화려하게 ‘웨딩드레스’를 뽐낼 수 있었지만 제작비용이 엄청나고 고도의 정교함이 필요한 예복이라 관아에서 보관했다 대여해주는 식이었다고 한다.

총 2부로 구성된 전시의 1부에선 왕실 혼례 관련 용품과 문헌을 가례(嘉禮) 절차에 맞춰 배치해 자연스럽게 동선을 따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자수 문양을 디지털로 확대해 비교·감상할 수도 있다. 2부에선 상의원(尙衣院) 등 관청과 장인을 중심으로 한 활옷의 제작과정과 ‘라크마 활옷’의 보존처리 과정 등을 소개했다. 김충배 고궁박물관 전시과장은 “우리 기술로 되살린 활옷을 라크마 측에 내년 초 되돌려주기 전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면서 “조선 혼례 문화의 상징성과 아름다움을 많은 분들이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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