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슈머 잡아라” 특명…백화점·호텔이 미술관으로 大변신? [스페셜리포트]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3. 9. 1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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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6일 오후 1시에 찾은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 입구는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아시아 최대 규모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를 찾은 이들이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는 지난해 첫 공동 개최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함께 열리게 됐다. 이번 전시에는 뉴욕 가고시안, 영국 화이트갤러리 등 세계 최정상급 갤러리를 비롯해 국내외 갤러리 330여개가 부스를 열고 관람객을 맞이했다. 제프 쿤스의 대형 조각 작품 ‘게이징 볼’, 스위스 하우저앤워스가 선보인 조지 콘도의 ‘내부 연소’ 등 유명 작품마다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재미있는 점은 유명 갤러리가 아닌, 국내 ‘유통 기업’이 마련한 부스가 이곳저곳 자리해 있다는 점이다. 신세계백화점과 신세계그룹 패션 플랫폼 W컨셉은 올해 프리즈 서울 공식 후원사로 참여해 부스를 차렸다. 약 100㎡(30평) 규모로 자리를 잡은 ‘신세계백화점 VIP 라운지’ 내부에는 정상화, 정창섭, 이정진 같은 국내 작가 작품 전시를 비롯해 신세계 주얼리 브랜드 ‘아디르’와 화장품 브랜드 ‘뽀아레’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준비돼 있다. W컨셉 라운지도 눈에 띈다.

라운지 중앙에 위치한 임지빈 작가 조형물 ‘대형 베어벌룬’ 앞에는 인증샷을 찍으려는 이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

유통 채널 외에도 여러 기업 부스를 전시회장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 티 브랜드인 ‘오설록’과 외식 전문 기업 GFFG가 운영하는 ‘카페 노티드’ 등은 지친 관람객을 위한 간식을 제공하는 팝업 스토어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백화점에서는 세계적인 거장들의 전시회가 열리고, 전시회장에는 팝업 스토어와 제품 매대가 들어선다. 이른바 ‘아트슈머’를 잡으려는 유통업계 투자가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유통과 예술의 경계가 흐려지는 중이다. 아트슈머란 예술품 감상과 구입 등 문화생활로 만족감을 느끼는 소비자를 뜻하는 신조어다. 백화점·호텔·마트 할 것 없이 ‘아트 마케팅’ 투자를 늘려가는 모습이다. 전시회 개최를 비롯해 유명 아티스트와 손잡고 매장 내외부를 꾸미거나 협업 제품을 내놓는 등 방식도 다양하다.

➊ ➋ 9월 6일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키아프 서울’에는 신세계백화점 VIP 라운지가 들어섰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예술 공간’ 늘려가는 백화점

신세계, 분더샵 청담에 갤러리 신설

‘아트 마케팅’에 가장 힘을 쏟는 건 역시 ‘백화점’이다. 예술에 관심 많은 구매력 있는 소비자는 백화점이 겨냥하는 고객층과 일치한다. 문화생활을 즐기러 온 ‘큰손’을 당장 고객으로 맞이할 수 있는 데다, 프리미엄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신세계백화점 행보가 특히 눈에 띈다. 유통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올해 프리즈 서울 공식 파트너사로 참여해 ‘신세계 라운지’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서울 압구정로데오에 위치한 편집숍 ‘분더샵 청담’ 지하 1층에 신세계갤러리를 새로 열었다. 창사 60년 만에 처음으로 백화점 이외 장소에 선보이는 정식 갤러리로, ‘관계미학’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개인전을 오는 11월까지 선보인다. 패션과 뷰티, 아트를 한데 모은 공간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지난 8월 신세계백화점이 세계적 그라피티 아티스트 앙드레 사라이바와 손잡고 펼친 아트 마케팅이 업계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신세계백화점 모든 점포 내·외부를 그의 작품으로 장식하고 ‘라이브 드로잉쇼’를 진행했다. 본점을 비롯해 몇몇 점포에서는 사라이바 그라피티가 들어간 에코백 등을 주는 행사도 했다.

지난 2020년 신세계 강남점 역시 ‘예술’에 방점을 찍고 리뉴얼을 단행했다. 국내외 유명 작가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것을 넘어 업계 최초로 직접 판매까지 나섰다. 3층 명품 매장을 회화, 사진, 오브제, 조각 등 국내외 예술 작품 250여점으로 가득 채웠다. 매장에는 신세계 소속 큐레이터가 상주하며 고객들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구매까지 돕는다.

사실 신세계백화점이 아트 마케팅에 힘을 쏟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신세계백화점이 운영하는 ‘신세계갤러리’는 한국 현대미술사와 궤를 같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1966년 1월 국내 백화점으로는 최초로 본점에 상설 전시장을 개관해 백화점이 미술 전문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었다. 이후 1969년 본점 본관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신세계미술관’을 재개관했다. 당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를 맡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 회화의 거장 김환기 등 유명 작가 전시는 물론 피카소·리히텐슈타인·앤디 워홀 등 여느 갤러리 못지않은 특별전을 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팀장을 제외한 팀원 20여명이 모두 큐레이터로 구성된 업계 최대 규모 미술관팀도 운영 중이다.

현대백화점이 예술 시장에 쏟는 투자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키아프 서울’ 공식 후원사로 참여했다. 현대백화점이 운영하는 정부 등록 1종 미술관 ‘현대 어린이 책미술관’ 전시 부스도 운영한다. 오프라인 전시뿐 아니다. 문화예술 메타버스 플랫폼 ‘쿤트라’를 통해 어린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가상 공간에 전시하는 등 게임형 콘텐츠를 선보였다.

현대백화점은 프리즈·키아프 서울 개최와 발맞춰 전국 13개 점포에서 다양한 아트 콘텐츠와 클래스를 선보이는 ‘더현대 아트 스테이지’를 진행한다. 미국 뉴욕 입실론 갤러리와 함께 현대미술 작품 총 44점을 전시하는 ‘슈퍼컬렉터전’, 그리고 김환기·박서보·이우환 등 한국 현대미술 거장 6인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단색화전’ 등이 대표적이다.

매장 내 문화예술 관련 공간도 지속 확대해가고 있다. 현대백화점 아트 마케팅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알트원(ALT.1)’이다. 지난 2021년 더현대 서울 개장과 함께 6층에 문을 연 대형 복합 문화 공간이다.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과 사진 작가 테레사 프레이타스 등 전시 개최로 올해 8월까지 누적 관객 65만명을 동원하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최근에는 프랑스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퐁피두 센터’와 손잡고 라울 뒤피 특별전을 열어 미술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더현대 서울뿐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현대백화점 대구점을 ‘더현대 대구’로 바꾸며 내부를 문화예술 콘텐츠로 가득 채워 넣었다. 백화점 1층 정중앙에 위치해 있던 매장 공간을 모두 빼고 프랑스 설치미술 작가 시릴 란셀린의 미술 작품을 설치하는가 하면 9층은 스페인의 세계적 아티스트 하이메 아욘과 협업해 예술관처럼 꾸몄다.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서울, 더현대 대구 등 전국 점포에 ‘아트 스폿’을 순차적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지리 여건과 방문객 특성 등을 고려해 점포별로 다른 콘셉트와 맞춤형 콘텐츠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한 층 전체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구현한 건 더현대 대구가 국내 백화점업계에서 처음”이라며 “특히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1층 중앙 공간을 미술 작품 설치에 쓴 건 연간 수십억원 매출을 포기하는 파격적인 시도”라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 역시 수준 높은 예술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한 시도를 꾸준히 이어나간다. 2021년 9월 신설한 ‘아트콘텐츠실’에선 2개월마다 전국 각지에 위치한 8개 롯데갤러리를 활용해 다양한 전시를 여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부산 시그니엘에서 개최한 ‘롯데아트페어’는 최고 히트작으로 꼽힌다. VIP 티켓 500장이 개막 전에 매진되는 등 부산 미술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아시아 최대 화랑인 홍콩의 ‘탕 컨템포러리 아트’와 싱가포르 현대 미술 갤러리 ‘해치 아트 프로젝트’ 등 국내외 유명 갤러리가 참가하며 유통업계 최대 아트페어로 자리 잡았다. 올해 개최된 2회 아트페어도 40여개 갤러리와 브랜드가 참가해 500여점이 넘는 작품을 출품하며 열기를 이어갔다.

롯데백화점에서는 ‘로컬 브랜드 협업’을 통한 아트 마케팅이 두드러진다. 올여름 롯데백화점 광복점에서는 부산 출신 아티스트 필독 작가의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마찬가지로 부산 출신 기업인 송월타올과 협업해 스페셜 굿즈를 선보이며 화제가 됐다. 올 9월에도 부산맥주, 골든블루, 밴드기린 등 로컬 브랜드·아티스트와 함께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지역 문화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다. 김영애 롯데백화점 아트콘텐츠실장은 “롯데백화점은 특히 예술에 대한 대중 접근성을 높이고 저변을 넓히는 데 역할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➌ 현대백화점은 프리즈·키아프 서울 개최와 발맞춰 ‘더현대 아트 스테이지’를 진행한다. 사진은 무역센터점에서 열린 ‘슈퍼컬렉터전’의 모습. ➍ 지난 9월 6일 서울 강남구 ‘분더샵 청담’ 지하 1층에 새로 들어선 ‘신세계갤러리’. 태국계 미국 작가인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개인전이 오는 11월까지 열린다.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제공)
객실에 작품 채워 넣는 호텔업계

전시회와 협업 ‘아트투어’ 상품도

백화점만큼이나 예술에 공들이는 곳은 호텔업계다. 작품 전시를 담당하는 큐레이터를 따로 둘 정도로 예술은 호텔 사업에서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파라다이스호텔은 예술을 핵심 콘텐츠로 내세운 ‘아트파라디소’를 올해 공개했다.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내에 위치한 아트파라디소는 전체 공간을 갤러리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성인 전용 부티크 호텔이다.

국내 최초로 58개 전 객실을 스위트룸으로 조성했다. 백남준 ‘히치콕드’, 알렉시아 싱클레어 ‘레이디 저스티스’ 시리즈 등 아트파라디소에 전시된 주요 작품을 중심으로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아트투어’ 상품 등을 제공한다. 최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전시를 시작한 ‘러브 인 파라다이스: 뱅크시 앤 키스 해링’도 주목받고 있다. 현대미술에서 가장 뜨거운 작가 중 한 명인 뱅크시의 국내 첫 전시작을 포함해 대표 작품 36점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코오롱 호텔은 객실 내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다이브인 아트스테이’ 객실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경주 코오롱 호텔과 부산 코오롱 씨클라우드 호텔에 ‘아트스테이’ 객실을 설치했다. 객실 전체를 호텔과 해당 지역 고유 정체성을 살린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다이브인 윤경현 아트스테이 경주 1·2’는 빈티지한 색감과 원, 삼각형 등의 도형으로 어우러진 아트월이 들어갔다. ‘다이브인 이지애 아트스테이 경주 1·2’에서는 지역 봄철 볼거리인 겹벚꽃을 한지로 표현한 조형물부터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를 압화 방식으로 재탄생시킨 작품까지 다양한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에 위치한 특급 호텔들은 전시회와 기획전으로 고객 발걸음 잡기에 나섰다. 호텔신라는 서울신라호텔 로비에 ‘프리즈 서울 2023’을 기념하는 이배 작가의 회화 작품을 전시한다. 전시 작품은 ‘붓질’ 시리즈 신작 2점으로 작가가 서울신라호텔을 위해 특별하게 작업했다. 프리즈 서울 연계 상품도 있다. 프리즈 서울 VIP 패스를 제공하는 객실 패키지 ‘프리즈 위크 앳 더 신라 서울’을 올해 8월 판매했다.

롯데호텔 서울도 여름을 맞아 호텔 내 예술 작품을 리뉴얼했다. 10여개가 넘는 작품을 호텔 곳곳에 전시 중이다. 대표작은 사랑의 형태를 다양하게 표현한 이성근 작가의 ‘HUMAN + LOVE + LIGHT’ 작품과 가는 구리선으로 한국적 미를 나타낸 정광호 작가의 ‘The Pot’ 등이 대표적이다. 롯데 시그니엘 서울은 프리즈 서울과 제휴한 아트캉스 패키지를 내놓기도 했다. 프리즈 서울 VIP 입장권과 투숙권을 결합한 해당 상품은 일찌감치 완판됐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운영하는 더 플라자는 휴식과 전시를 함께 즐기는 ‘체크인아트’ 패키지로 인기를 끈다. 디럭스 객실 1박에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 티켓 2매가 포함된다.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은 운동화의 역사와 미래가 담긴 국내 최대 규모의 운동화 전시다. 에어조던 컬렉션부터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상품 등 약 80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➎ 지난 5월 롯데월드타워 야외 미디어큐브 앞에서 진행된 권오상 작가와 패션 브랜드 잉크의 컬래버레이션 패션쇼 현장. ➏ 파라다이스호텔은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 ‘예술’을 메인 콘텐츠로 한 부티크 호텔 아트파라디소를 개장했다. (롯데백화점, 파라다이스 제공)
➐ 코오롱 호텔은 객실에서 예술 작품을 볼 수있는 ‘다이브 인 아트스테이’를 선보인다. ➑ LG전자는 프리즈 서울에서 故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디지털 창작물을 볼 수 있는 전시회를 열었다. (코오롱리조트앤호텔, LG전자 제공)
마트·온라인에서도 예술 감상

NFT 열풍에 가전 기업도 ‘참전’

‘미술은 일부 상류층만 즐기는 것’이라는 인식이 깨지며 예술과 거리가 멀었던 업체에서까지 아트슈머를 잡기 위해 적극 뛰어든다. 마트·이커머스를 비롯해 일반 제조 업체까지 예술 활용에 나서는 요즘이다.

롯데마트는 8월 31일부터 9월 9일까지 10일간 ‘Art in LotteMart-미술 슈퍼마켓’을 개최했다. 생필품 등 판매가 주력인 마트업계에서 미술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해당 전시회는 롯데마트에서 열리는 첫 전시회다. 송파점 2층 특별 전시장에서 예술가 100명이 완성한 300여점 작품을 전시해 운영했다. 방문객들이 손쉽게 작품 구매를 할 수 있도록 예술가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직거래 방식을 도입했다. 작품 구매를 희망할 시 전시회 내 상주하는 도슨트(전시 안내자)를 통해 문의 후, 예술가와 직접 거래하는 시스템이다. 전시된 작품의 가격은 50만원에서 300만원대 중저가로 구성했다.

롯데마트는 이번 전시회를 시작으로 다른 전시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현재는 Z세대 대학생들로 이뤄진 ‘롯데마트 ZRT(gen Z Round Table)’가 직접 기획한 ‘청년 예술 작가 전시회’가 9월 11일부터 진행 중이다. 행사는 9월 30일까지 롯데마트 양평점 1층 어반포레스트 메인홀에서 열린다.

이커머스 업체 SSG닷컴은 온라인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아트앤크래프트 페어’를 진행했다. 500여종에 달하는 원화, 한정판 판화, 공예품과 미술품 굿즈를 전시했다. 상품에 따라 최대 10% 할인 혜택도 제공하는 등 관람객 미술품 구매도 적극 지원했다.

가전 업체는 ‘디지털 예술’에 주목한다. 디지털 파일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NFT가 등장하면서 디지털 파일 형식으로 작품을 그리는 ‘디지털 아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LG전자는 지난 2021년부터 프리즈 글로벌 파트너로 참가한 데 이어 이번 프리즈 서울에는 최고 권위 레벨인 ‘헤드라인 파트너’로 참가했다. LG전자는 전시회를 통해 김환기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비롯한 원화 12점과 함께 그의 작품을 새롭게 표현한 미디어 아트 5점을 소개했다. 전시에는 박제성 서울대 교수, 안마노 작가, 김대환 작가, 미디어아트 그룹 버스데이(VERSEDAY) 등 국내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참여, 초대형 LG 올레드 TV를 캔버스로 활용해 디지털로 새롭게 구현한 김환기 작품을 선보였다.

LG디스플레이 역시 서울 용산 U.H.M. 갤러리에서 열리는 ‘김병종 NFT 디지털아트 페스타’에 대형 패널을 제공한다. 김병종 작가의 그림을 활용한 NFT 작품이 LG디스플레이의 패널을 통해 송출된다.

삼성전자는 예술 작품 관람에 특화된 TV ‘더 프레임’을 내놓으며 제품을 통한 아트 마케팅에 본격 뛰어들었다. 더 프레임에 특화된 예술 작품 구독 서비스인 ‘삼성 아트 스토어’도 운영한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과 갤러리가 소장한 명화를 비롯해 사진·일러스트·디지털 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 작품 약 2300점을 4K 화질로 볼 수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은 소비자 체류 시간을 자연스럽게 늘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문화예술을 중요시 여긴다는 기업 이미지까지 얻을 수 있다”며 “아트 마케팅은 기업과 업태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➒ LG디스플레이는 김병종 NFT 디지털 아트 페스타의 작품 감상용 패널을 제공한다. (옐로스톤 제공)
인터뷰 | 관계미학의 대가…‘리크리트 티라바니자’
‘문화 플랫폼’ 거듭나는 유통의 변화 반가워
최근 분더샵 청담에 새로 문을 연 신세계갤러리에 예술 애호가 이목이 쏠리고 있다. ‘관계미학의 대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태국계 미국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개인전이 열리는 덕분이다. 작가가 관람객을 위해 준비한 요리, 그 자체를 작품으로 내세우는 등 기존 전통 예술을 거부하는 작품 세계로 유명한 작가다.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뉴욕 근대미술관 등 전 세계 주요 미술관마다 작품이 자리할 만큼 높은 명성을 자랑한다. 이번 개인전에서도 ‘문제는 내일이다’라는 한글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관람객이 가져가도록 하는 등 파격적인 작품으로 시선을 모았다.

Q. ‘관계미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는 생소한 개념이다.

A. 관계미학은 서양 미술권에서 내 작품 세계를 설명하고 정의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일 뿐 직접 만든 개념은 아니다. 물론 작가로서 사람 사이 ‘관계’를 중요시하는 건 맞다.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버스에 타는 걸 비롯해 낯선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내가 생활하던 태국을 비롯해 아시아에서는 공동체 문화와 가족 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함께 나누는 행위’ 역시 일상에 가깝다. 하지만 서양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만약 음식을 누군가에게 만들어준다면 그들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일로 인식됐다. 누군가는 일상으로 여기고 또 다른 누군가는 특별하게 여기는 것, 그 인식의 차이로부터 관람객 사이에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Q. 최근 유통업계에서 예술 전시회를 여는 등 새로운 트렌드가 확산 중이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A.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행위가 거래고 물물교환처럼 여겨지고는 한다. 하지만 관계는 다르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상품 거래와는 다른 종류의 거래다. 항상 주는 만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관계라는 개념을 하나의 단위로 보거나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관계의 가치는 ‘함께하는 그 자체’다.

최근 유통업계에 불어오는 예술과의 협업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극히 상업적인 업계에서 비상업적인 예술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아이디어고 새로운 관계다.

Q. 이번 분더샵 청담 내 신세계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게 됐는데.

A. 예술 세계를 공유하고 관객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나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이다. 분더샵 역시 패션 플랫폼을 넘어 문화 플랫폼으로 변모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쇼핑 같은 일상생활에서 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는 최근 변화는 아티스트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유통과 예술 사이 협업 트렌드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하는지.

A. 사회적 요구라고 본다. 문화에 대한 정보를 한곳에서 제공받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난다. 문화는 미술뿐 아니라 음악과 공간, 심지어 옷이나 신발 같은 재화까지 포함한다.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창의력과 다양성 관점에서 유통과 예술은 공생 관계다. 특히 아티스트 입장에서 유통업계가 새로운 전시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건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신진 작가들의 발굴과 생계를 위해서도 이런 트렌드가 계속 확장됐으면 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6호 (2023.09.13~2023.09.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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