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과 뭘 하려고? 윤석열 정부 장관들의 무서운 공통점 [안호덕의 암중모색]
[안호덕 기자]
▲ 지난 8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아들이 가해자로 동료 학생들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했으며, 부모는 권력을 앞세워 자녀의 폭력을 두둔하고 학교 징계를 무마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순신 변호사의 낙마와 이동관 위원장의 임명. 이 차이를 폭력 잔인성이나 부모의 부당한 개입의 정도로만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언어적 폭력과 이동관 위원장 아들의 물리적 폭력.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무마시키려고 소송을 진행한 정 변호사와 학교 이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 이 위원장. 폭력은 이 위원장 아들이 더 심하다는 게 중론이나 권력을 동원한 무마와 교권 침해 행위는 누가 더 무거운가를 따지기 어렵다.
그러나 한 사람은 낙마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임명됐다. 궁금했던 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이다. 같은 잣대였다면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취소처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지명 철회로 이어져야 했다.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적임자." 대통령실은 이동관 위원장 지명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순신 변호사 낙마와 결부시켜 본다면 '수사역량을 키울 필요성을 고려했다'는 국가수사본부장은 다른 인물로 대체할 수 있지만, 방송통신위원장은 비난 여론을 감수하면서라도 임명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셈이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그 이유를 '방송 정상화의 적임자'라 했다. 그러나 과거 국가정보원까지 동원해 언론을 통제하려던 인물을 임명해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 확립' 하는 게 가능한 일이냐는 의문이 따른다. 차라리 야당과 언론 단체에서 주장하듯 방송장악 의도를 가지고 이동관 위원장을 임명했다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추론이라 할 수 있다.
▲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왼쪽부터),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2차 개각 발표 브리핑에 배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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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아시아를 지배해 봤기 때문에 준법정신이 좋다"는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내보내면서 이명박 정권 시절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탄압한 블랙리스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을 지명하는 게 무슨 차이가 있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앞장선 이종섭 국방부 장관을 내보내고 홍범도 장군을 "뼈속까지 빨간 공산당원"이라고 막말한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으로 바꾸는 게 해병대 채 상병 죽음으로 촉발된 수사외압의 꼬리 자르기 말고 어떤 정당성이 있나 말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무능력과 정권 감싸기로 국민의 눈밖에 벗어난 고위공직자는 한둘이 아니다. 무리하게 고속도로 계획안을 변경하고는 문제 삼는 야당을 향해 "간판 걸고 한판 붙자"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이태원 참사 대응 부실로 탄핵 소추되었다가 복귀하더니 잼버리 대회에서 또다시 무능력을 드러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방송사 앞에서 관제 데모를 사주한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백선엽 장군이 친일이 아니라는 것에 장관직을 걸겠다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이들이 보여준 무능력과 그릇된 역사 인식, 불법 행위는 경질된 장관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나가는 장관과 남아있는 장관, 새로 장관에 지명된 이들 사이에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모처럼의 개각이라지만 기대감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명된 사람들의 면면에서 '또 다른 이동관', '제2의 이종섭'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동관 방통위원장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지명자가 의기투합한 이른바 '방송개혁', 그것이 이명박 정권의 언론탄압을 능가하는 평지풍파로 다가올 수 있다는 상상이 우려로만 끝날 것 같지도 않다. '9·19 남북군사합의로 안보태세가 와해됐다'는 주장하는 사람이 국방부 장관이 되면 안보가 튼튼해질지 긴장 관계가 높아질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 지난 8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인천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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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 나타난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맞다. 정권에 있어서 중요한 건 이념이고 국정철학이다. 이념과 국정철학을 바탕으로 국정 기조가 세워지는 것이고, 기조를 구현하기 위해서 장관과 고위공직자를 임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전체주의'에 대응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는 대통령이지만 정작 대통령의 이념이 무엇인지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이 무엇인지 밝힌 적이 없다. 국익을 해쳤다는 이유로 언론인의 전용기 탑승 취재를 막는 건 전체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일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정립된 국가정체성을 뒤집으려는 건 보수 이념의 구현이 아니라 반동주의다. 검찰과 경찰, 감사원, 사정당국의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운용을 조장하고 방치하면서 민주주의가 국정철학이라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놀랍지 않다는 거다. 대통령이 야당과 쓴소리를 하는 언론, 시민단체까지 공산전체주의로 몰아붙이는 현실에서 장관과 고위공직자의 발탁 기준은 도덕성과 능력보다는 '공산전체주의'에 맞서 이길 수 있는 전투력 강한 인물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
공장에서도 불량품이 계속 나오면 제품보다 찍어내는 프레스를 점검해야 한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 지명이 이동관 방통위원장 임명 이유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국방부 장관에 발탁된 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로 촉발된 이념 전쟁을 더 가속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도 무리하지 않다.
2차 개각, 놀랄 것도 감흥도 없다. 우려해야 할 건 대통령의 이념이고 국정철학이다. 언론을 길들이려는 무모한 시도, 역사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는 폭거, 전체주의와 반동주의라 할 수 있는 국정운영 기조는 국가도 정권도 국민도 모두 불행해진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 탄압, 진실은 드러났고 처벌로 이어졌다. 박근혜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원희룡 국토부 장관, 박민식 보훈부 장관, 이동관 방통위원장, 그리고 새로 발탁한 유인촌 문체부 장관 지명자와 신원식 국방부 장관 지명자. 이들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구현하고 싶은 국가의 모습이 궁금하다. 정부의 이념과 국정철학이 무엇이길래 국민 여론에 반하는 사람들을 자꾸 등용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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