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은 하세월, 가해자 이승만 기념관은 속전속결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 정부(당시 행정자치부)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공모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람들이 묻힌 대전 산내골령골(동구 낭월동)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 시설’ 조성 부지로 선정했다. 사진은 평화공원 조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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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당시 행정자치부)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공모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람들이 묻힌 대전 산내골령골(동구 낭월동)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 시설' 조성 부지로 선정했다. 이곳은 1950년 전쟁 발발 직후 대전형무소 정치범과 국민보도연맹원 등 수천 명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처형당한 비극의 땅이다. 골령골에서 희생된 사람만 제주 4.3, 여수·순천 사건 관련자 등을 포함해 최소 4000명에서 최대 70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 건립은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아래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10년 한국전쟁 전후민간인희생사건 신청자에 대한 조사 결과 8187건, 피해자 2만620명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정부에 추모 공간 조성 등을 권고했다.
정부는 애초 대전 골령골에 2020년까지 전국 희생자 추모시설, 인권 교육관 등 전시관, 숲 체험 공간, 기념탑 등을 갖춘 추모평화공원을 준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약속과는 달리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2020년이 되자 다시 준공 시기를 내년까지로 4년 늦췄다. 늦어졌지만 정부 주도로 골령골 유해 발굴과 추모평화공원 설계국제공모, 설계용역 추진으로 속도를 내는 듯했다.
▲ 2018년 아산 설화산에서 드러난 유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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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해 중순께 설계 적정성 검토를 이유로 사업 추진이 중단됐다. 검토 결과 토지매입비를 포함한 총사업비가 402억 원에서 591억 원으로 늘어났다. 지난 2월 정부는 사업 타당성 검토를 시작했다. 총사업비가 500억 원을 넘는 사업의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게 돼 있다.
결국 행정절차 진행에 발이 묶이면서 일 년여가 넘게 사업추진이 모두 정지되면서 논란이 생기고 있다. 그동안 발굴된 희생자 유해와 유품은 갈 곳을 정하지 못해 10여 년 넘게 충북대 임시유해안치소를 거쳐 세종추모의 집(세종시 전의면)에 임시 안치돼 있다. 추가 발굴된 유해도 세종추모의 집에 임시 안치하고 있지만 이곳도 포화상태다. 현재까지 2700여 구의 유해가 이곳에 안치돼 있다.
추모평화공원 조성을 총괄하고 있는 행정안전부 과거사지원업무지원단 관계자는 "지난해 설계 적정성 검토에 이어 올해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3월 1년 기한으로 조사용역을 의뢰(한국조세재정연구원)해 비용편익 분석이 나오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 차례 연기를 통해 재약속한 2024년 준공도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유가족들의 원성도 커지고 있다. 대전산내골령골희생자유족회 전미경 회장은 "정부를 믿고 추모평화공원 조성을 기다리던 유족 상당수가 세상을 등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전시 우주산업 클러스터 조성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충남 서산공항은 예비타당성조사에 탈락했는데도 설계비 10억 원이 반영됐지만 전국희생자추모공원은 사업 확정 후 정권이 두 번 바뀔 때까지 시간만 질질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회장이 언급한 대전시의 우주산업클러스터조성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마저 면제됐는데 오히려 애초 정부 부처요구안(481억5000만 원)보다 두 배 많은 973억 원(국비 491억 원)으로 증액됐다.
▲ 재단법인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이사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아래 기념재단) 누리집. 기념관 건립을 위한 범국민 모금 운동을 시작했지만 기념관 건립 등 대부분이 설명 없이 '준비 중'으로 돼 있다. |
ⓒ 재단법인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갈무리 |
유가족들은 정부가 가해자로 지목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 추진에 유가족의 의견을 듣지 않고 속도를 내고 있는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하기로 결정한 8187건 중 이승만 정부의 불법행위(군인과 경찰에 의한 학살과 보도연맹원 등에 의한 학살)로 인해 살해된 건은 79.31%(6493건)에 이른다. 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측은 국민보도연맹원에 의한 희생자만 최소 2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유가족들이 정부에 이승만 대통령의 책임이 있는 민간인학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정한 사과와 엄정한 평가를 요구하는 이유다.
▲ 대전 산내 골령골 희생자 추모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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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이사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아래 기념재단)은 범국민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기념재단 측은 정부예산 30%에 국민 모금으로 나머지 70%를 충당하겠다고 밝혔지만, 홈페이지 어디에도 사업비가 얼마인지, 모금 목표액이 얼마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기념재단 관계자는 "350억~500억 원을 목표로 후원을 받고 있다"며 "아직 사업 부지와 건축 설계 등이 확정되지 않아 총사업비를 추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전체 모금액 대비 30%를 정부예산으로 요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전미경 대전산내희생자유족회장은 "정부가 수많은 '민간인을 불법 살해한 책임이 이승만 대통령에 있다'고 밝히고도 별다른 후속 조치 없이 가해자인 이승만 대통령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며 "같은 대한민국 정부가 맞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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