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도 무너졌다" 리비아 5300명 사망…'정치무능'이 부른 최악참사
열대성 저기압 ‘대니얼’이 휩쓸고 지나간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12일(현지시간) 사망자가 5300명을 넘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AP통신이 보도했다. 실종자가 1만명에 달해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날 저녁 리비아 동부를 장악하고 있는 리비아국민군(LNA)의 대변인 모하메드 아부 라무샤는 국영 언론에 “전날 리비아 북동부에 발생한 홍수로 인한 사망자 수가 5300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이번 태풍으로 지중해와 접한 데르나시와 수사·마르즈·샤하트 등의 소도시가 수해를 입었다.
특히 인구 10만의 데르나시에선 70년대에 지어진 댐 두 곳이 붕괴하며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 도심을 관통해 지중해로 흘러드는 와디 데르나 강이 범람하며 강둑의 민가는 초토화됐다. LNA 정부의 히헴 치키와트 민간항공부 장관은 로이터통신에 “도시의 25%가 사라졌다”면서 “사망자 중 상당수가 여전히 물 속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바다, 계곡, 건물 아래 등 모든 곳에 시신이 있다”고도 했다.
현지 주민 후다이파 알 하사디는 현지 언론에 “최대 400m 깊이인 댐이 무너져 그 안의 물이 원자폭탄처럼 터져 나왔고, 다리와 집들은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자신을 손도스 슈와이브라고 밝힌 생존자도 소셜미디어(SNS)에 “집에 있는데 갑자기 물에 쓸려갔다”면서 “내 옆이나 위·아래 어딜 봐도 시신이 있었다. 어린이와 아기도 봤다”고 경험담을 올렸다. 또 다른 주민도 “물이 길 위의 모든 것을 지웠다”고 망연자실해 했다.
외신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악천후에 부패와 정치적 무능이 더해지며 최악의 참사를 불렀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대니얼은 지난 4일 그리스 상공에서 발생해 15명의 사망자를 낸 뒤 10일께 리비아 북부에 상륙했다. 태풍은 지중해를 횡단하는 과정에서 따뜻한 물을 머금고 더욱 강해졌다. 올여름 북반구를 전례 없이 달군 이상 고온 현상이 해수면 온도를 끌어올린 탓이 컸다. 리비아 북동부에 닿았을 때 태풍의 바람은 최대 시속 160~180㎞였고, 일일 강우량 440mm의 물폭탄을 뿌렸다.
이와 관련 독일 라이프치히대 기상학 전문가인 카르스텐 하우스타인 교수는 “따뜻한 해수는 태풍의 호우 강도를 부채질할 뿐 아니라, 태풍을 더욱 격렬하게 만든다”면서 “인간이 유발한 온난화로 인해 폭풍의 강도가 더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WMO도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극심한 강우 현상이 더욱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경고했다.
리비아의 정치 혼란으로 데르나의 댐들이 최소 수년 간 유지·보수 없이 방치됐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 때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된 이후 10년 넘게 ‘두 개의 정부’가 정당성을 서로 주장하고 있다. 리비아통합정부(GNU)는 서부 트리폴리를 수도로 하고, LNA은 동부의 벵가지를 거점으로 통치권을 주장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GNU 쪽을 인정하는 추세인데, 이에 따라 동부 여러 도시에선 도로와 기반 시설의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참사도 “예상된 인재”였단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지 싱크탱크 사데크 연구소의 아나스 엘 고마티 회장은 “이웃 모로코의 지진은 몇초, 몇 분 만에 일어났지만 리비아에서는 홍수 피해에 대한 숱한 경고가 있었다”면서 “정부의 부패와 무능력이 참사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작년 리비아의 한 학술지에는 “데르나시에 대형 홍수가 발생하면 댐 붕괴로 주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연구가 실렸다.
현장에선 신원 확인도 이뤄지지 않은 시신들이 쌓여 가고 있다. 미 CNN은 데르나 중앙광장과 묘지, 지역 병원 앞마당 등에는 담요에 덮인 시신 수백구가 쌓여 가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도시에선 통신이 두절되고 인터넷도 끊겼다. 세계보건기구(WHO) 리비아 공보 담당관 라미 엘샤헤이비는 “상황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재앙적”이라고 한탄했다. 이에 리비아 서부 정부 GNU는 12일 14t 분량의 의료용품을 항공편으로 동부 거점 벵가지로 보낸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 지역들이 벵가지에서도 동쪽으로 최대 250㎞ 떨어져 있어 구호 물품이 제때 닿을지는 미지수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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