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 풀어도 ‘승수효과’ 85조…'가성비'에 건전 재정 달렸다
세수(국세 수입) 부족에 시달리는 정부가 재정을 넉넉히 풀기 어렵다는 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돈을 풀어도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이 딜레마다. ‘긴축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재정 지출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기획재정부·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 분기 대비, 잠정치)은 0.6%를 기록했다. 성장률에 대한 정부 기여도는 -0.5%포인트였다. 1분기(-0.3%포인트)에 이어 두 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2분기 연속 마이너스는 2000년대 들어 2009년·2010년·2020년 이후 네 번 째다.
정부는 보통 상반기에 재정 지출을 집중한다. 연말에 못 쓰고 남는 예산이 없도록 하는 취지에서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과 달랐다. 올해 2분기에 정부 소비는 전기 대비 1.9% 줄었다. 정부 소비가 줄어든 건 1997년 1분기(-2.3%) 이후 약 26년 만이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 기여도가 마이너스라는 건 정부의 지출·투자가 줄면서 수출이나 민간 소비 등 다른 부문이 만들어 낸 경제 성장률을 떨어뜨렸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일반적으로 ‘승수(乘數)효과’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오른다. 승수효과란 정부지출이 1원 늘어날 때 GDP가 얼마 늘어나는지 나타내는 개념이다. 승수효과가 2라면 정부지출이 100억원 늘어날 때 GDP가 200억원 증가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도로 건설에 1조원을 지출할 경우 효과는 건설업계 매출이 1조원 늘어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익이 늘어난 건설회사가 직원 임금을 올리거나 고용을 늘릴 수 있다. 소득이 불어난 근로자가 소비를 늘리면 다른 기업의 이익도 늘어난다. 나라 경제 전체로 보면 1조원의 지출을 넘는 경제성장을 가져온다는 얘기다.
문제는 재정 지출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승수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GDP 규모가 커지고 경제 구조가 선진형으로 바뀌면서다. 2020년 한은이 펴낸 ‘거시계량모형(BOK20) 구축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BOK20에 따라 정부 지출 1년 뒤 승수효과를 분석한 결과 소비 승수는 0.85, 투자 승수는 0.64를 기록했다. 3년 뒤 승수 효과도 소비(0.91), 투자(0.86) 모두 1에 못 미쳤다. 정부가 쏟아부은 예산 만큼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얘기다.
저출산·고령화 추세도 재정 지출의 가성비를 떨어뜨리는 요소다. 한은이 올해 1월 발간한 ‘인구구조 변화의 재정지출 성장 효과에 대한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층 인구 비중이 1%포인트 늘어날 경우 재정 지출의 경제성장률 증가 효과가 5.9%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고령화 시대에는 복지 지출 증가로 재정 부담이 커지는데 재정 지출의 성장 효과마저 약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지출은 과거보다 승수 효과가 떨어진 데다 (지출을 늘리면) 민간 투자를 위축하는 ‘구축(驅逐)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며 “재정 지출이 불가피한 만큼 국민이 늘어난 소득을 더 많이 소비하는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도록 내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을 성장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부분에도 투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긴축 재정 기조에도 불구하고 2024년 지방 공항 건설을 포함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올해보다 4.6% 늘렸다. 예산 지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강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부가 매년 통제할 수 있는 지출(재량 지출)을 전년 대비 10% 이상 감축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지방교부금 등 의무지출 예산부터 구조조정하고 건강보험료도 점진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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