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구 던진 나균안, 롯데 감독대행의 무리수
[이준목 기자]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3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가을야구에서 멀어지고 있다. 선발 투수 나균안에게 2경기 연속 개인 최다투구수를 경신하게 할 정도로 무리수를 두고도 승리를 내주면서 벤치의 무리한 경기운영까지 도마에 올랐다.
9월 12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경기에서 NC가 롯데에 4-3으로 승리했다. 롯데는 3연패를 기록하며 시즌 전적은 55승 63패로 포스트시즌 진출 마지노선인 5위 SSG 랜더스와 경기 차는 8경기를 기록중이다. 시즌 종료까지는 이제 25경기밖에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 4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롯데 이종운 감독대행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 연합뉴스 |
나균안의 기용방식, 최선이었을까
그런데 이날 경기 결과보다 더 주목받은 것은 바로 롯데 선발 나균안의 기용 방식이었다. 나균안은 이날 선발등판하여 6이닝 11피안타 1볼넷을 허용했지만 3실점으로 막아내며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투구수는 무려 122구로 나균안의 프로 한경기 통산 최다 투구 기록이었다.
나균안은 이날 초반부터 고전했다. 1회초 2사 후에 박건우와 제이슨 마틴에게 연속 안타를 내주면서 선취점을 허용했고, 2회에는 1사 1.3루에서 김주원에게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추가점을 내줬다. 5회에는 무사 1,3루에서 박건우의 유격수 땅볼로 3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하지만 이어진 1사만루 위기에서 오영수와 서호철이 모두 삼진으로 물러나며 끝내 빅이닝은 허용하지 않았다.
5회까지 나균안의 투구수는 이미 104개에 이르렀다. 경기 초반부터 투구수가 많았고 특히 5회에만 33개의 공을 던졌다. 점수차도 0-3으로 롯데가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종운 롯데 감독대행은 놀랍게도 6회에도 나균안을 또 마운드에 올렸다. 나균안은 2사 후 손아섭과 박민우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면서 위기에 몰렸지만 여전히 벤치에서는 교체없이 밀어붙였다. 결국 나균안은 박건우를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내고 실점없이 6회를 마무리짓고 나서야 겨우 마운드를 내려올 수 있었다.
나균안의 종전 개인 한 경기 투구수 기록은 115구였다. 그리고 이 기록은 바로 직전 등판이던 지난 9월 6일 울산 삼성전이었다. 6일만의 등판에서 곧바로 최다 투구수 기록을 다시 경신해버린 것이다.
나균안은 포수 출신으로 2020년부터 투수로 전향했고 1군 마운드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2021시즌부터, 풀타임 선발은 올해가 첫 시즌이다. 나균안은 올시즌 6승 6패 자책점 3.45를 기록하며 롯데 선발의 한 축을 담당했고, 4월에만 4승 무패 평균자책점 1.34로 월간 MVP까지 수상하며 드디어 그 재능을 만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투수로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는 기쁨도 누렸다.
하지만 나균안은 여름들어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리며 페이스가 주춤하고 있다. 지난 6월 9일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시즌 6번째 승리를 올린 뒤 더 이상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고 9경기에서 5패만 추가했다. 이달 22일에는 아시안게임 대표팀 소집도 앞두고 있다.
또한 나균안은 이날 NC전을 통하여 총 120이닝을 소화하며 지난 2022시즌(117.2이닝)을 뛰어넘어 자신의 한 시즌 개인 최다이닝 기록도 경신했다. 풀타임 선발 첫해, 최근 부상 전력, 국가대표 소집 등을 감안하면 선수의 미래를 고려하여 적절한 '관리'가 필요했던 시점이었지만, 롯데는 정반대로 오히려 나균안을 갈수록 혹사시켰다.
나균안이 NC전에서 굳이 122구를 던질때까지 마운드를 지켜야만 했을 정도의 개연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간신히 대량실점은 최소화했지만 시작부터 NC 타선에 공략당해 무려 11피안타를 내줄만큼 컨디션과 구위에 불안감이 있었고, 경기도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휴식일(월요일) 이후 첫 경기라 불펜 운용에도 여유가 있었다. 이는 결국 이종운 감독대행이 승리에 대한 미련과 집착으로 무리수를 뒀다고 밖에는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혹사 논란에 시달리는 선수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경기 운영이 나균안만의 사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대행은 아시안게임 차출을 앞두고 있는 박세웅을 지난 4일 두산전(4.1이닝)에서 104구를 던지게 한뒤, 불과 4일 휴식만에 등판한 9일 NC전(6.2이닝)에서는 112구를 던지게 했다. 외국인 투수 윌커슨과 반즈 역시 4일 휴식 후 등판하여 평균 투구수 100개 내외를 던지는 일이 수두룩하다.
불펜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올시즌 롯데에서 많은 경기에 등판하며 혹사 논란에 시달렸던 김상수와 구승민 등이 최근 잇달아 부상으로 쓰러졌다. 모두 이 대행이 롯데 지휘봉을 잡고나서 아직 한달도 안되는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장면들이다.
이종운 대행은 지난달 28일 건강문제로 사임한 래리 서튼 전 감독의 뒤를 이어 롯데의 지휘봉을 잡았다. 특이하게도 이 대행은 지난 2015년 이미 롯데의 16대 정식 감독을 역임한 바 있으나 성적부진으로 한 시즌만에 경질됐다. 8년 만에 해임당했던 팀에 감독대행으로 부임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드문 장면이다. 다르게 말해 롯데의 '개혁 프로세스'가 돌고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버렸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대행은 롯데의 가을야구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총력전을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온갖 무리수에도 롯데는 이 대행이 이끈 11경기에서 5승 6패의 저조한 성적에 그치고 있다. 물론 롯데 선수들의 혹사 논란은 이미 서튼 전 감독시절부터 누적된 것이다. 하지만 이 대행 체제에서 개선이 되기는커녕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공교롭게도 나균안이 무의미한 122구 역투를 펼치던 12일은, 롯데의 전설인 고(故) 최동원 12주기 기념일을 맞이하여 '최동원 메모리얼데이'행사가 열린 날이었다. 최동원은 롯데의 전설이자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지만, 1984년의 혹사로 짧은 전성기와 어깨를 맞바꾼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이종운 대행의 경기운영과 선수들의 수난사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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