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방러 일성 "전략적 중요성"…전방위 협력 대놓고 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새벽 러시아 극동 연해주 하산역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북·러 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러시아와의 전방위적인 협력을 시사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만들어진 신냉전 구도에서 양국 간 밀착을 강화해 국방건설 목표는 물론 경제계획까지 달성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13일 김정은이 탄 전용 열차가 현지시간으로 12일 오전 6시 하산역 구내로 들어섰다면서 환영행사 소식을 전했다. 김정은은 "2019년에 이어 4년 만에 또다시 러시아를 방문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세계적인 공공보건 사태(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해외 방문으로 러시아에 온 것은 조로(북러)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우리 당과 정부의 중시 입장을 보여주는 뚜렷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그간 사회주의 우호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에서 '전략적 협조', '전략적 소통' 등의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해왔다. 이를 감안해도 러시아와는 양국 간 '무기거래 커넥션'이 불거진 이후 '전략전술적 협력', '전략적 협력·신뢰' 등의 표현을 보다 빈번하게 사용하며 양국 간 밀착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김정은은 2019년 4월에 열린 북·러 정상회담 당시에도 "전략적 의사소통과 전술적 협동"을 언급했다. 당시에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두 번째 정상회담(하노이 회담)이 '노 딜'로 끝나 외교적 고립을 맞은 가운데 전통적인 우방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대외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날 김정은의 발언은 양국 간 무기 거래를 축으로 하는 군사 협력뿐 아니라 경제협력·극동개발과 같은 전방위 협력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추정된다.
정상회담과 관련해 양국이 '극동', '수일 내' 등 모호한 공식 발표만 내놓는 상황에서도 김정은의 러시아 체류 기간이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4박 5일)과 같거나 길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트럼프와의 '핵 담판' 만큼이나 푸틴을 만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김정은은 오는 10월 재발사를 천명한 군사정찰위성 관련 협력은 물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상대적으로 미진하다는 평가를 받는 핵 관련 기술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내비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북한이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발사체 기술은 어느 정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회담에서 조악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위성의 광학 감시 능력을 보완할 수 있는 기술이나 장비를 전격적으로 확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가진 ICBM과 전술핵 탄도미사일의 위력을 높이는 동시에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식별 및 추적할 수 역량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한·미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러시아 현지 매체인 RBK는 지난 12일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이 16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 국방장관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해당 보도가 사실이라면 당초 뉴욕타임스(NYT)가 김정은 일행이 방러 기간 방문할 것이라고 예상한 블라디보스토크항 33번 부두를 전격적으로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이 최근 해군력 강화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전격 방문해 잠수함을 비롯한 양국 간 군사협력을 심도 있게논의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정은이 강순남 국방상까지 대동했기 때문에 양국 간 연합훈련이나 군사교류 프로그램이 구체화 될 수 있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이번 회담을 계기로 현재 운용하지 않고 있는 핵추진잠수함을 대여하는 형식으로 북한에 전격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경제 분야와 관련한 북·러 간 논의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 김정은의 수행원 중에는 내각에서 건설분야를 담당하는 박훈 내각 부총리와 김정관 국방성 제1부상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쇼이구 장관은 지난 7월 방북 당시 "조선인민군(북한군)은 외부세력의 위협을 믿음직하게 막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며 "세계에서 제일 강한 군대"라고 치켜세웠다.
특히 푸틴이 극동지역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극동개발부가 위치한 하바롭스크 등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북한 입장에서도 노동자 해외 파견은 주요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극동지역 내 각종 인프라 건설과 관련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유석 IBK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연구위원은 "북한은 자신들의 주요 수입원으로 떠오르고 있는 암호화폐 해킹에 대해 한·미·일이 강력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외화벌이 창구의 다원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러시아 측이 유엔의 대북제재 문제까지 테이블에 올린 만큼 노동자 파견 문제도 비중 있게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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