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만들 때 중요한 건 나무 배치가 아니었다 [일본정원사 입문기]
일본 현지에서 75세 사부에게 정원사 일을 배우는 65세 한국 제자의 이야기. <기자말>
[유신준 기자]
사부가 담임선생이라면 정원 디자이너 요시다씨는 내게 과외선생쯤 된다. 사부에게는 정원관리 이론 공부를 마치고 실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론에 실습에 과외까지 몰아치기로 공부하는 건 늦은 나이에 시간이 많지 않아서다. 단기완성하려면 어쩔 수 없다. 대입 수험생처럼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는 수밖에.
▲ 쓸모있는 디자인은 기초작업이 더 중요하다 |
ⓒ 유신준 |
쓸모있는 디자인은 기초작업이 더 중요했다. 왜 이 디자인이 여기에 필요한지 근거가 되는 과정이었다. 좋은 디자인이란 장식이 아니라 실용이었다. 알록달록한 모양속에 그런 깊은 뜻이 숨어있는 줄 처음 알았다.
▲ 디자인이란 디자인 이전의 사전작업이 핵심이다 |
ⓒ 유신준 |
그녀는 한 시간 넘게 일본정원 디자인을 소개했다. 자기는 혼자 일하는 스타일이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란다. 늘 하고 있는 일이라서 무의식 중에 이야기가 술술 나왔단다. 이야기 하는 동안 자신의 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도 했다. 그녀의 귀한 구술자료를 공짜로 들었으니 공짜로 이곳에 옮긴다. 30년 경력 프로 디자이너의 정원 디자인 강의를 공짜로 들어 보시라.
정원 디자인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게 해당 토지의 기후입니다. 큐슈 기후라면 대개 정해져 있어서 아무리 추워도 마이너스 10도까지는 안 내려가요. 표고가 높은 곳이라면 좀 더 추울 수도 있죠. 예를 들면 아소 지역이라면 11월부터 추워지는 곳이니까.
▲ 식물에게는 아침햇볕이 가장 좋다 |
ⓒ 유신준 |
토지특성 중 두 번째는 토질입니다. 디자인하는 데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식물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이니 잘 살펴 봐야죠. 배수가 좋은가 나쁜가. 토질이 점질토인가 사질토인가. 나쁜 곳이면 흙을 바꿔줘야 합니다. 바꿀 때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거름을 넣어서 좋은 땅을 만들기도 합니다. 상황에 따라 땅을 높여주기도 합니다.
다음 신경써야 할 것이 주변환경입니다. 옆집이 있나. 있으면 옆집 창문은 어느 쪽에 있나. 만약 창문이 보인다면 의뢰인이 신경 쓰이나 괜찮은가. 현지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가림나무를 심기도 하지만 그건 고객의 선호에 따릅니다. 최근에는 가려지면 오히려 방범 저해 요인이 된다며 오픈하는 집도 많아요. 처음 의뢰인과 면담할 때 이런 것들을 조사해야 합니다.
▲ 기본조건을 알게되면 어떤 나무를 심어야하는지 자연스럽게 나온다 |
ⓒ 유신준 |
제 경우는 고객의견을 들을 때 어떤 정원이 좋은가 묻습니다. 어떤 나무를 심고 싶은지, 정원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아이들이 어린 가족의 경우 농구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농구대를 세워줄 것인지. 개를 키우고 있는 경우도 있고 여러가지 조건을 폭넓게 고려하게 됩니다.
단순히 보는 정원을 좋아할수도 있어요. (양식도 보는 정원이 있습니까?) 있어요. 베르사이유 정원도 왕이 성 위에서 보기 좋게 만드느라 그런 양식으로 발전했잖아요. 영국도 그렇게 동물 모양을 만드느라 가리코미가 발전하게 됐고.
자동차가 몇 대 있나도 알아야 합니다. 요즘은 주차장이 우선이어서 현실적인 이유로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런 것을 전부 파악하고 디자인을 시작합니다. 실제로 할 경우는 당연히 예산을 알아야 하지만 공부로서 하는 거라면 자유롭게 좋아하는 걸 설계해 봐도 돼요.
현지 상황도 파악됐고 면담도 끝났으니 그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것들로 디자인 범위가 좁혀집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방식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런 스타일로 설계를 진행해 나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자연환경 조건은 모르면 디자인을 할 수 없으니까 누구든 당연히 알아야 할 거고. 고객의 희망사항은 어떤지도 당연히 필요할 거고.
기본적인 조건을 알게 되면 여기에 어떤 나무를 심어야하는지 자연스럽게 나와요. 햇볕이 안 좋으니까 음수를 고려한다든지 가림나무가 필요하면 가림나무를 넣는다던지... 디자인을 제로 베이스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는 거죠.
▲ 아름답게 보이도록 시선을 고려한 위치가 왕의 눈높이다 |
ⓒ 유신준 |
장소가 결정되면 나무 배치같은 건 그다지 큰 문제가 없어요. 정문을 통과하면 퍼스트 인플렉션을, 보통 시선을 잡는다 해서 아이스톱이라고 합니다만, 여기에 배치하고 다음은 입구가 직접 보이지 않도록 나무를 적당히 둡니다. 두 그루가 정해지면 거기서 분위기가 생기죠.
부등변 삼각형이나 식재 원칙들을 참고 해서 현장 상황에 맞게 나무를 세워 나가죠. 이 나무 종류는 뭘로 할 거냐 하는 것은 최후의 작은 결정사항일 뿐이죠. 그 나무가 뭐가 됐든 골격은 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체 계획으로서 배치입니다. 넓은 공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작은 길은 어떻게 마무리할 건가. 이런 건 공통이죠. 일본식이든 양식이든. 차니와(茶庭;차정원)라면 도비이시(징검돌)를 놓는다든지, 양식정원이라면 또 거기에 맞게 대응해야겠죠.
내가 디자인하면서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게 있어요. 일본정원이라면 대부분 다다미에 앉아서 정원을 보게 되는데 시선이 낮아도 아름답게 보이도록 식물 배치를 세심하게 신경씁니다. 몇 번이고 현장을 둘러보면서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다시 둘러보면서 고치기도 합니다. 최후까지 물고 늘어지며 신경 쓴 만큼 좋은 디자인이 만들어지거든요.
시선 중심이 아래 있으니 보는 위치를 고려해야죠. 아까 말한 베르사유궁전은 위에서 왕이 내려다 보니까 화단 모양을 그렇게 만들었잖아요. 아래서 봐서는 그런 거 알 수 없죠. 역시 왕이 위에서 볼 때 아름답게 보이도록 시선을 고려해야 되듯이. 그게 왕의 눈높이죠. 목욕탕이라면 욕조에 누워서 보이는 위치. 거기가 왕의 눈높이가 되는 거죠.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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