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의장 ‘대통령 탄핵조사’ 지시…백악관 “최악의 극단정치”
미국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12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 개시를 지시했다. 탄핵 조사(Impeachment inquiry)는 탄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의회가 벌이는 조사 절차지만 탄핵에 꼭 필요한 절차는 아니다.
매카시 의장은 이날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지난 몇 달간 하원 공화당 의원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부패에 대한 심각하고 믿을 만한 혐의를 밝혀냈다”며 “나는 하원 상임위에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공식 탄핵 조사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바이든 대통령은 가족의 해외 사업과 관련해 거짓말을 했다”고 탄핵 조사 지시 배경을 밝혔다.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재임 시절 차남 헌터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에너지기업 임원으로 일하면서 부당 이득을 취했으며 헌터의 탈세 의혹에 대한 국세청 기소를 바이든 정부가 막았다며 탄핵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매카시 의장은 자신의 지시에 따라 하원 감독위·법사위·세입위가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미 의회 탄핵 조사는 약 60회 있었다. 하원에서 탄핵 소추가 가결된 대통령은 1868년 앤드루 존슨, 1998년 빌 클린턴, 2019년과 2021년 도널드 트럼프 등 3명뿐이다. 셋 모두 상원 탄핵 심판에서 최종 부결됐다. 만일 바이든 대통령 탄핵 절차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민주당 다수인 상원에서 가결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언 샘스 백악관 감독·조사담당 대변인은 “최악의 극단 정치”라며 “지난 9개월간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대통령을 조사했지만 잘못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민주당 상·하원 지도부도 “황당하다”(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유감스럽고 무모하다”(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고 비판했다.
당내 입지 약한 매카시의 강경파 다독이기
매카시 의장은 당초 “탄핵 심판을 하려면 한 사람(하원의장 자신)의 선언이 아니라 하원 표결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었다. 이달 초에는 “정치적 목적으로 (탄핵) 조사를 개시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었다.
이랬던 그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하원 표결을 거치지 않고 의장 직권으로 탄핵 조사를 지시한 것은 복잡한 당내 정치적 역학 구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단 ‘프리덤 코커스’ 등 친트럼프 성향의 당내 강경파를 다독이기 위한 카드로 풀이된다. 지난 1월 하원의장 선출 때 같은 공화당이면서도 매카시에 반대표를 행사했던 이들은 매카시 의장이 2024 회계연도 연방정부 예산안 협상에서 정부 지출 삭감 등을 강경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며 ‘의장 소환 투표’를 추진하겠다고 압박해 왔다.
뉴욕타임스(NYT)는 “매카시의 탄핵 조사 개시 명령은 당내 극우 강경파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고 보도했다. 연방정부 셧다운을 피하기 위해 2024 회계연도 시작 전인 이달 말까지는 임시 예산안을 처리하길 원하는 매카시 의장이 공화당의 강성 의원들을 달래기 위해 바이든 탄핵 조사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얘기다.
‘트럼프 측과의 정치적 타협 산물’ 분석도
매카시 의장과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의 '우회적 타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두 건의 탄핵 기록 말소 투표를 8월 의회가 휴회에 들어가기 전까지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던 매카시 의장이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자 트럼프 측이 고강도 압박을 폈고, 매카시 의장이 바이든 탄핵 조사로 시간 벌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0일 저녁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 등 공화당 내 극우 성향 정치인들을 만나 바이든 대통령 탄핵 문제를 논의했다는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의 보도(12일)가 이런 관측을 뒷받힘한다.
매카시 의장이 탄핵 조사 표결을 건너뛴 건 실제 표결에 들어갈 경우 자당 내 중도 성향 의원 일부가 이탈해 가결에 충분한 표가 확보되지 않을 것이란 계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공화당 하원 지도부의 최근 내부 여론 파악 결과 탄핵 조사 표결 시 찬성표가 충분치 않은 것으로 나오자 매카시 의장이 전략을 바꿨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탄핵 조사 표결을 피한 것에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 선거구를 둔 공화당 하원의원 일부는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수세 몰린 바이든, 때 이른 TV 광고 공세
최근 고령 대선 주자에 대한 여론 악화와 저조한 국정 운영 평가 등으로 고전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 탄핵 조사까지 맞게 돼 더욱 수세에 몰리게 됐다. 재선 가도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에서 그는 TV 광고 조기 집행으로 국면 타개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바이든 대통령 대선 캠프는 일부 경합주에서 경제 성과를 홍보하는 TV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3주간 약 2500만 달러(약 332억 원)가 투입된다고 한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의 자신감에 찬 모습도 담겼다.
특이한 건 재선 도전에 나섰던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빠른 시기라는 점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대선 1년 전인 2011년 11월 말에 TV 광고를 시작했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대선이 있던 해인 2004년 3월에 광고를 내보냈다. 바이든 대통령 대선 캠프의 케빈 무노스 대변인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경합주 유권자들에게 직접 다가가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지난 8~10일 미 유권자 1029명을 대상으로 벌인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소폭 상승해 42%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지난 3월 이후 가장 높게 나온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매카시 하원의장이 대통령 탄핵 조사를 추진하는 상황에서도 바이든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미 비영리 연구 기관 루거센터의 폴 공 선임연구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당 일각에서 바이든 재선 회의론이 있지만 2016년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내세웠다 트럼프에게 석패한 경험이 있는 민주당 지지층은 선거전이 본격화되면 바이든 중심으로 다시 결집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보수 강경파에 의한 이번 대통령 탄핵 조사도 역풍을 부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공화당 일각에서 신중론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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