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베트남 외교를 배워야 한다

박민중 2023. 9. 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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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미국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내재된 경제˙군사적 의미

[박민중 기자]

 2023년 9월 10일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베트남 공산당 본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응웬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을 하고 있다.
ⓒ UPI=연합뉴스
 

포털을 통해 뉴스를 보고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설령 주요 국제뉴스를 본다 하더라도 국내 언론들은 지나치게 미국 중심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짙다. 이에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외신들을 비교해 보면 지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물론 특정 사안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견지에서 접근할 수 있다. 

오늘은 베트남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새로운 외교관계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이틀 전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베트남의 하노이를 방문했다. 하노이에서 베트남과 미국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를 체결했다. 이 관계는 베트남이 추진하는 외교 단계 중 가장 높은 단계이며 두 국가가 약 50여 년 전에 전면전을 했던 관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매개로 세계 많은 국가들과 가치동맹의 구도 하에 외교전을 펼치는 미국이 여전히 공산당이 통치하는 베트남과 이 같은 외교 관계를 수립한다는 것은 다층적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국 BBC 방송은 두 국가 사이의 새로운 외교관계 격상으로 50여 년 전 과거 적이었던 두 국가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다고 평했다. 그렇다면 두 국가가 체결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란 무엇이며 이 외교관계 수립에 동의한 두 국가의 입장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란?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최근 개별 국가뿐만 아니라 유럽연합과 같은 지역연합체에서도 활발하게 활용하는 외교 수단이다. 그러나 개념이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표현에서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포괄적 동반자 관계' 등 동반자 관계(partnership)라는 명사를 다양한 형용사(포괄적, 협력, 전략적 등)가 꾸미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어떤 언론에서는 2010년에 한국이 맺고 있는 외교관계를 우호관계의 순서대로 6단계로 나누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1) 포괄적 전략적 동맹관계 2)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3) 전략적 동반자 관계 4)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5) 상호 신뢰하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 6)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구분했다.

그러나 이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구분이 아닌 한국의 사례일 뿐만 아니라 최근 외교부가 발표한 문서들을 보면 우즈베키스탄, UAE, 인도를 한국의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고 명시했다. 이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위의 6단계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기 협력 분야 또한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동반자 관계라는 것은 국제정치적으로 다소 모호한 개념이다. 그러나 이 개념을 외교 수단의 관점에서 '동맹'(alliance)과 비교해 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동맹이 전통적으로 두 국가 이상이 군사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동반자관계는 1990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탈냉전이 도래하면서 과거 군사 일변도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의미한다.

특히 동반자 관계를 뜻하는 'partnership'이라는 용어가 원래 경제·경영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제 정치에서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에서 비록 군사·안보 분야의 협력은 아니더라도 경제·문화 교류와 같은 분야의 협력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외교수단으로써 '동반자 관계'를 '동맹'과 비교해 보면 간략하게 두 가지 특징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동반자 관계는 탈냉전이라는 국제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외교수단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냉전 시기에는 대부분의 외교가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진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탈냉전 시기에는 진영을 넘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가능한 많은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둘째, 동맹이 군사·안보 분야의 협력이라면 동반자 관계는 단계는 다양하지만 경제분야가 협력의 공통 분모라는 점이다. 이는 경제라는 하위 정치 분야의 협력을 매개로 과거 교류가 없었던 두 국가 또는 행위자가 새로운 관계를 맺는 측면이 있다. 이후 지속적인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면 경제 분야의 협력을 고리로 정치·군사와 같은 고위 정치 분야의 협력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에 베트남이 미국과 맺은 동반자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전쟁 이후 두 국가는 외교적으로 단절되어 있었다. 냉전이 붕괴되고 두 국가는 1995년 수교하기에 이른다. 이후 약 30여년 동안 두 국가는 외교관계를 발전시켰고, 결국 '비동맹 외교'를 고수하는 베트남은 외교적으로 미국과 가장 높은 수준의 외교 관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이른 것이다.

현재 베트남이 이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인도, 러시아, 중국 등 4개국뿐이다. 결국 이번 베트남과 미국이 맺은 동반자 관계는 경제는 물론 경제와 군사, 안보 분야의 협력 모두 내재되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미국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매체들에 따르면 이번 바이든 행정부는 베트남과 외교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로 격상시키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공을 들였다고 한다. 어떤 이익이 있기에  미국은 이 같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첫 번째는 당연히 경제적 이득이다. BBC 보도에 따르면, 베트남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청년 노동력이 풍부한 국가이며 이들의 교육 수준 또한 매우 높다. 이는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고자 하는 미국 기업들로서는 매력적인 부분이다.

실제 미국의 델(Dell), 구글(goog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애플(Apple) 등과 같은 주요 기업들이 최근 공급망 일부를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은 스마트폰과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희토류를 중국 다음으로 많이 매장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이번 협력으로 중국을 대체할 공급망 확충이라는 경제적 이득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번 바이든 행정부의 베트남 방문에 인텔, 구글, 보잉 등 다수의 미국 기업의 고위 관계자들도 동행해 11일 진행된 양국 간 비즈니스 회의에 참석한 것은 이러한 점을 뒷받침한다. 

두 번째는 바이든 대통령은 부인했지만 미국의 중국 견제라는 군사·안보적 이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하노이에서 베트남과의 협정 체결 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협정은 중국을 봉쇄(containning)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규칙에 따라 안정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이 규칙을 따르면서 성공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이 오랜 시간 미국 주도로 세워진 국제질서의 규칙을 흔들고 있으며, 미국은 이를 안정 및 유지시키기 위해 베트남과 협정을 체결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 태평양에서의 주도권을 분명히 하고 있었는데, 최근 중국의 세력 확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강하기 때문에 이를 몇몇 우방국과 함께 봉쇄하고자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그 외교가 바로 미국, 일본, 인도, 호주를 중심으로 한 쿼드(Quad)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과도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면서 중국 봉쇄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한 안보 전략인 셈이다. 

베트남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고, 미국과는 전쟁을 경험한 국가다. 그런 베트남이 자국이 행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외교단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를 미국과 체결하면서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첫 번째는 당연히 경제적 이득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동맹과 달리 동반자관계는 경제라는 공통분모를 하나의 시작점으로 한다. 베트남에 미국은 제1의 수출시장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022년 베트남의 대미 수출액은 2021년 대비 무려 13.6%가 증가해 1093억 9천만 달러(약 146조 원)를 기록했다. 베트남은 미국에 주로 의류와 신발, 스마트폰, 목재가구를 수출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베트남에 직접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110억 달러(14조 7천억 원)를 넘어섰다. 이런 맥락에서 한 응웬(Hanh Nguyen) 연구원은 DW NEWS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의 공산당은 이번 미국과의 협정으로 반도체 산업과 같은 분야에 미국의 투자를 이끌어내어 최근 타이완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같이 두 번째는 군사·안보적 이득이다. 베트남은 현재 남중국해(Sough China Sea)에서 중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베트남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해에서도 분쟁을 하고 있다. BBC 보도에 따르면, 실제 지난주 중국의 해안 경비정이 파라셸 제도 인근에서 베트남 어민들의 배를 향해 대포를 발사했다. 역사적으로 중국과 베트남이 우호적인 관계라고는 하지만 중국의 부상 속에서 남중국해에서 보이는 두 국가의 영토분쟁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이번 협정을 통해 양국 간 안보 협력 차원에서 베트남에 890만 달러(약 120억) 상당의 군수 물자 지원도 발표했다. 이처럼 미국과의 동반자관계는 베트남에 경제는 물론 군사·안보적으로도 이득이 된다. 

외교란 무엇일까

미국과 베트남의 이번 외교를 보며 근본적으로 '외교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냉전 시기에는 두 진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외교였다면, 탈냉전 시기에는 다양한 국가, 지역연합체들을 가능한 한 많이 친구로 만드는 것이 외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냉전 시기에는 군사협력 중심으로 동맹이 중요한 외교였다면, 탈냉전 시기에는 서로 합의가 비교적 쉬운 그리고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경제협력을 매개로 점차 군사·안보 분야의 협력을 도모하는 것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그 형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동반자 관계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에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한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몸값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외교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Chatham House)의 빌 헤이튼(Bill Hayton) 아시아 태평양 지역 연구원은 베트남이 '미중경쟁 구도 하에서 특정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결정을 했다'고 분석했다.

즉, 전통적으로 중국과 우방관계지만 최근 무역에서 가장 큰 이익이 되는 그리고 중국과의 영토분쟁에서 자국의 안보 이익을 위해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미국과 협력하는 베트남의 이번 결정은 어느 한쪽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몸값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전략적 외교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외교에서 베트남 정부가 보여준 세심한 행보는 우리 행정부도 꼭 배워야 할 부분이다. BBC에 따르면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중국과의 관계 악화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계산했을 것"이라면서,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하노이를 방문하기에 앞서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은 중국과의 국경 지대를 방문해 미리 중국 대사를 만나 양국 간 우정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에 앞서 베트남이 중국이 대응하기 어렵도록 미리 계획한 외교다. 이번 베트남과 미국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협상을 보며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약자의 편에 있는 베트남의 외교를 통해 한국 정부는 배울 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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