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담(手談)]한국바둑 최초의 ‘카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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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께서 우승하게 된 것에 대해 더욱더 존경심을 갖게 됐다."
민망한 해프닝 덕분에 그날 카퍼레이드는 응씨배 우승의 기억을 더 오래 각인시켰다.
신진서는 다시 응씨배 우승컵을 한국에 선사했지만 국내 반응은 1989년과 다르다.
1989년 조훈현 우승은 앳된 모습의 이창호를 세계 최강자로 성장시키는 동기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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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께서 우승하게 된 것에 대해 더욱더 존경심을 갖게 됐다."
1989년 9월6일, 김포공항 환영 인파 속에 앳된 얼굴의 바둑기사가 방송 인터뷰를 이어갔다. 주인공은 이창호. 이창호 9단은 훗날 세계 바둑의 최강자로 성장했다. 앳된 이창호에게 영감(靈感)을 안겨준 스승은 누구일까. 그는 한국 바둑의 살아 있는 전설 조훈현 9단이다.
그날 김포공항은 조훈현의 금의환향을 축하하는 인파로 넘쳐났다. 제1회 응창기배(응씨배) 세계바둑대회 우승은 바둑계는 물론 국가적인 경사로 인식됐다. 그날은 한국 바둑 역사상 최초의 카퍼레이드가 열린 날이다.
조훈현은 오픈카를 타고 김포공항에서 한국기원이 있던 서울 종로2가까지 이동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날 카퍼레이드가 이른바 전설의 ‘짤’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조훈현은 정장 차림에 꽃다발을 손에 든 모습이었다. 오픈카에 플래카드가 부착돼 있었는데, 처음과 끝부분에 ‘환’자와 ‘영’자가 적혀 있었다. 플래카드 가운데는 ‘장하다 조훈현’이라는 글귀가 담겼다.
그런데 사진기사로 전달된 카퍼레이드는 플래카드의 일부 문구만 노출됐다. 플래카드의 ‘환’자 다음에 ‘장하다’까지만 사진에 담겼다. 환하게 웃는 조훈현 옆으로 ‘환 장하다’라는 문구가 담긴 어색한 조합의 장면이 탄생한 배경이다. 민망한 해프닝 덕분에 그날 카퍼레이드는 응씨배 우승의 기억을 더 오래 각인시켰다.
응씨배는 대만 출신 부호인 응창기(잉창치)가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 수준인 40만달러의 우승 상금을 내걸고 창설한 대회다. 4년에 한 번 열리면서 바둑 올림픽이라는 애칭도 붙었다.
응창기는 중국 또는 대만 바둑기사 선전을 기대했겠지만, 초반에는 사실상 한국 독무대였다. 제1회 대회부터 제4회 대회까지 한국 기사가 우승을 휩쓸었다.
중국은 2005년 창하오 9단을 통해 응씨배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응씨배는 중국의 강세 흐름이 이어졌다. 한국은 2009년 최철한 9단 이후 응씨배 우승컵과 인연이 없었다.
응씨배는 2016년 이후 7년간 우승자를 가리지 못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20년 4월, 제9회 대회의 막을 올리고자 했지만,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면서 5개월이 지나서야 온라인 대국으로 본선을 시작했다. 2021년 1월, 결승 진출자를 가렸지만 결승전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대면 대국을 희망한 주최 측 입장이 반영된 결과다.
우승자는 대회 시작 3년 만인 올해 8월23일 가려졌다. 중국 상하이 창닝구 쑨커별장에서 열린 제9회 응씨배 결승전. 중국은 셰커 9단이 출격했는데, 한국 신진서 9단의 벽을 넘지 못했다.
신진서는 다시 응씨배 우승컵을 한국에 선사했지만 국내 반응은 1989년과 다르다. 바둑계 경사 정도로 의미가 축소된 모습이다. 신진서의 쾌거는 충분히 평가받고 인정받아야 할 성과인데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있는지 의문이다.
1989년 조훈현 우승은 앳된 모습의 이창호를 세계 최강자로 성장시키는 동기로 작용했다. 이번 응씨배 우승 역시 마찬가지다. 제2의 신진서를 꿈꾸는 바둑 꿈나무들에게 좋은 자극을 안겨줄 기회다. 문제는 응씨배 우승의 열기가 너무 빨리 식어 버렸다는 점이다. 한국 바둑의 현재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더 안타까운 일이다.
류정민 이슈1팀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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