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없는 고용의 늪'에 빠졌다…방치하면 일자리 질 더 악화

세종=송승섭 2023. 9. 1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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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8월 고용동향 발표
고용률 0.3%P↑, 실업률 0.1%P↓
韓, 올해 성장률 1.4% 전망과 대비
고용률, 첨단산업 영향 덜 받아 호조
문제는 잠재성장률 하락…"구조개혁 필요"

경제성장률이 추락하는 와중에 고용률이 유례없이 고공 행진을 하면서 한국 경제가 ‘성장 없는 고용’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저성장=고실업’이라는 통념과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배경에는 산업재편과 인구구조 변화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지 못한 채 안정적인 고용지표에만 안주할 경우 구조개혁 시점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8월 15세 이상 고용률은 63.1%, 실업률은 2.0%로 통계 작성 이래 각각 최고,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해 고용률이 높았던 상황을 고려하면 플러스 상황을 유지하는 건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고용지표만 보면 한국 경제가 순항하는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은 유례없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4%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지난 7월 ‘세계 경제전망’ 수정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1.4%로 떨어뜨렸다. IMF는 "부동산 위험 등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할 경우 한국경제 성장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올 하반기 경기 회복의 원동력으로 기대를 모은 반도체 등 IT 분야의 수출 부진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고물가 및 고금리로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침체하는 전형적인 ‘불황’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성장률이 낮아지는데도 취업률이 높아지는 ‘불안한 고용실적’은 장기화할 수 있다. 저성장-저실업 현상은 기존의 경제학 이론과 정반대다. 그간 경제학에서는 성장률이 낮으면 실업률이 올라간다고 봤다. 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은 국내총생산(GDP)이 2% 증가하면 실업률은 1%포인트 하락한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오쿤의 법칙’에 따르면 경제가 정상궤도에 진입할 때까지 실업률은 계속 치솟는다. 2010년대 중반까지도 세계적인 경제 석학들과 국제기구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저성장·고실업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예상과 달리 저성장·저실업 현상이 나타나는 건 산업구조의 영향이다. 한국의 성장률을 좌우하는 반도체 산업의 경우 취업유발계수가 2.09명 정도에 불과하다. 취업유발계수는 10억원을 새로 투자했을 때 직·간접적으로 늘어나는 취업자를 말한다. 사회·복지(28.84명), 농림·어업(24.98명), 숙박·음식점(19.33명) 등과 비교하면 반도체가 고용에 끼치는 파급력은 미미하다. 반도체 산업이 어렵다고 실업률이 증가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금의 저성장 기조는 반도체 업종을 비롯한 첨단산업의 침체 때문"이라면서 "삼성전자 같은 첨단기업은 영업이 어려워졌다고 갑자기 고용을 확 줄이지 않기 때문에 성장률이 낮아지지만, 실업률 지표는 양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경제의 기초체력이 떨어질수록 고용의 질과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 5.1%에서 15년 후인 2021∼2022년에는 2.0%로 하락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 감소와 함께 근본적으로 생산성 둔화가 주요인으로 지목됐다.

최근 업종별 취업자 증가세도 서비스업종과 사회복지업종이 주도했다. 코로나19 종식에 따른 일상 회복 효과가 크게 작용한 영향이다. 지난달 서비스업종 취업자는 351만3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1만7000명(6.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보건업 및 사회복지업종도 13만8000명(4.9%) 늘어난 292만4000명을 기록했다.

반면 우리 경제의 핵심인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달 6만9000명 줄어들며 8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60대 이상 취업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고 하지만 15~29세 청년층은 10만3000명 줄어드는 등 고용시장의 양극화 역시 심화하는 추세다. 서운주 통계청 사회통계국장은 "제조업, 도소매 취업률이 계속 빠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취업자 비중이 높은 산업군에서 반등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 전반의 활력을 높이고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한 과감한 구조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고용률이 높다는 건 시장에 의해 만들어지는 양질의 일자리 확충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정부는 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를 제거해 경기 활력을 높이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제9차 일자리 태스크포스(TF) 회의’를 통해 "청년층 고용 상황을 지속 점검하면서 관계부처와 함께 청년의 원활한 노동시장 진입 지원을 위한 정책을 논의하고, 필요시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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