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기지' 향한 김정은 열차…북·러 만남 장소에 담긴 메시지는
세계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거래’를 예고한 북한과 러시아 정상이 13일 극동 최대 우주기지에서 만날 것으로 보인다. 북ㆍ러가 만남의 장소를 우주기지로 정한 것을 놓고 전문가들은 “미국을 향한 노골적인 경고의 메시지를 발신하려는 의도”란 해석을 내놨다.
12일 새벽 러시아 국경을 통과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기차는 당초 예상됐던 블라디보스토크를 그대로 지나쳐 계속 북쪽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향했다. 아무르주 우글레고르스크에 위치한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약 1500㎞ 떨어져 있다.
김정은의 열차가 계속 북쪽을 향하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동방경제포럼(EEF)에서 직접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푸틴은 정상회담 장소가 보스토치니 기지가 될 거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가 우주기지에 도착하게 되면 당신들도 알게 될 것”이라며 사실상 우주기지에서의 만남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푸틴의 EEF 공식 일정은 13일까지다. 이와 관련 러시아 매체인 RBK는 러시아 대표단의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은 13일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고 16일에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회담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김정은의 특별 열차는 현지 시간으로 이날 정오 무렵을 전후해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은 오전까지 EEF 일정을 마무리하고 항공기를 이용해 우주기지에 먼저 도착해 김정은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러시아가 2012년부터 새로 건설한 러시아 극동지역 최대의 첨단 시설이다. 회담 장소가 이곳으로 정해진 것은 김정은과 푸틴이 이번 회담에서 어떤 분야를 놓고 ‘주고 받기’를 할지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회담 장소가 우주기지가 된 것은 김정은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을 위한 무기를 내주는 대신 군사위성ㆍ핵미사일 등 첨단 핵기술을 얻어갈 거라는 강력한 대미(對美) 메시지”라며 “말하자면 북한은 러시아의 ‘현재’ 위기를 지원하는 대신, 러시아가 북한의 ‘미래’ 무기체계를 책임지는 방식의 거래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은 지난 5월 31일과 8월 24일 정찰위성을 두 차례 발사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김정은의 입장에선 이미 여러차례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군사위성 분야 실험이 연이어 실패로 돌아가며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다.
김정은은 이번 순방에 박태성 당 과학교육비서(국가비상설우주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와 김명식 해군 사령관을 수행단에 포함시켰다. 각각 정찰위성과 핵추진잠수함 개발을 담당하는 인물로, 김정은이 처음부터 해당 분야의 러시아 기술 이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를 잘 알고 있을 러시아도 적극적인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전쟁무기와 첨단기술의 ‘잘못된 맞교환’ 시도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경고가 지속되자 “미국의 경고에는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경고가 아닌 양국의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더 나아가 “안보리에서의 사안에 대한 프로세스도 논의 주제가 되고 있다”며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마저 와해시킬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러시아는 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로 그간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에 동참했다. 만약 러시아 스스로 찬성했던 제재결의안을 부정하게 될 경우 유엔의 근본적인 존재 근거마저 타격을 입게 될 수도 있다.
김정은과 푸틴은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이어 하바롭스크주 산업도시인 콤소몰스크나아무레를 함께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 전투기와 잠수함 등 군함 생산시설이 있는 곳이다. 이중 핵추진잠수함은 김정은이 핵심 목표로 내세워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상이다. 또 북한이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첨단 5세대 다목적 전투기 Su-57의 첫 비행이 이곳에서 이뤄졌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특히 러시아 매체의 보도처럼 오는 16일 김정은과 러시아 국방장관의 별도 회동이 이뤄질 경우, 북·러 간의 거래는 보다 급물살을 타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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