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이었던 '파파' 하이든, 젊은 연주자들이 불러낸다
놀랍고 새로운 곡들로 녹음하고 연주
"파격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하이든 보여줄 터"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이야말로 ‘아버지’라는 별칭이 많은 작곡가다. 모차르트ㆍ베토벤으로 이어지는 고전주의, 수많은 작곡가가 매달린 교향곡, 그리고 현악기 넷이 함께하는 현악4중주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특정 장르들의 기틀을 마련했고 자리 잡도록 했다. 많은 음악가에게 영향을 줬고, 상대적으로 장수하면서 살아있을 때부터 ‘파파(아버지) 하이든’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한국의 현악4중주단인 아벨 콰르텟이 포착한 하이든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바이올린 주자인 박수현(34)의 추천 악장은 하이든 현악4중주 작품번호 74-1의 1악장이다. “첫 마디부터 쇼크에요. 꼭 음악이 끝나는 것처럼 시작하죠. 그리고 한참을 쉬다가 진짜 시작이 나와요.” 하이든은 정말 작품이 끝나는 것처럼 화음을 두 번 울린 다음, 다음 마디에 거의 통째로 쉼표를 써놨다. 청중이 어리둥절한 사이, 진짜 음악은 그제야 시작한다. 하이든이 즐겨 썼던 기법이자 위트다. 박수현은 “당시 이 곡을 초연했던 런던의 청중이 늘 소란했기 때문에 이렇게 집중을 시켰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파파 하이든이야말로 그 시대의 가장 전위적인 현대 음악가였다”며 하이든의 현악4중주 4곡을 녹음해 음반으로 냈다. 같은 작품들로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20일 광주 유스퀘어 문화관에서 공연한다. 아벨 콰르텟은 하이든과 인연이 깊은 팀이다. 2015년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한국인 현악4중주단 최초로 우승했다. 또 하이든의 주 활동무대였던 오스트리아 빈의 공기와 친숙한 팀이기도 하다. 박수현은 10살부터 빈에서 컸고, 아벨 콰르텟은 빈 국립음대에서 실내악 과정을 공부했다. 이번 음반도 빈 국립음대에서 녹음했다.
이들은 하이든의 음악에 빈의 억양이 들어있다고 소개했다. “독일어 중에도 빈의 독일어는 훨씬 부드럽고 농담과 같은 센스가 있어요. 이를테면 현악4중주 ‘황제’ 중의 백파이프 사운드 같은 데에 빈의 뉘앙스가 있죠. 그 하이든의 발음을 살리는 게 이번 녹음과 연주의 관건이었어요.”(박수현) 이들은 레코딩 엔지니어까지 빈 토박이로 골라 빈에서 녹음을 마쳤다.
하이든의 파격, 실험성, 유머는 현악4중주의 곳곳에 드러난다. 바이올리니스트 윤은솔(36)은 현악4중주 작품번호 33-1의 3악장으로 하이든을 소개했다. “네 악기가 서로 다른 층위에서 끼어들고 겹치면서 혼란스러워져요. 꼭 발이 꼬이는 것처럼 어지러워지기 쉬운 음악이죠.” 듣기에는 정갈한 미뉴에트지만 하이든은 그 안에 복잡한 화성과 리듬을 숨겨놨다. 윤은솔은 또 현악4중주 ‘황제’ 4악장의 의도적이고 명백한 불협화음을 하이든 작품의 포인트로 꼽았다. 윤은솔은 “우리 현대인의 귀에는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불협화음에, 음악을 갑자기 끝내거나 시작하는 작곡가였다”라고 했다.
아벨 콰르텟은 이런 현대성을 보여주기 위해 연주 속도를 바짝 당겼고 팽팽한 소리로 하이든을 녹음했다. “하이든의 짜릿한 작품들이 비슷비슷하게 들린다면 그건 연주자들의 책임”(윤은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반에서 특히 빠른 악장들이 아찔하다. 비올리스트 박하문(25)은 “작품번호 33-1의 4악장이 정말 재미있었다”며 “하이든을 단조롭고 평화로운 음악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빠른 4악장엔 굉장한 흥분이 들어있다”고 했다. “제1바이올린이 솔로로 빠르게 달려나갈 때 다른 악기들이 뒷받침해주는데 모두 함께 마음에 짜릿했다.”
이처럼 파격적인 하이든의 작품은 어떻게 현악4중주 음악의 뿌리가 된 걸까. 첼리스트 조형준(36)은 이렇게 답했다. “그 전에는 이런 현악4중주가 없었죠. 하이든부터 작곡가들이 4대의 현악기를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하이든이 파격적인 실험으로 네 현악기의 연주를 드라마틱하게 만들면서 현악4중주는 극적인 음악이 됐다. 자신의 첫 정식 출판을 현악4중주 작품으로 시작했고, 현악4중주만 총 68곡을 쓴 하이든부터 이 장르가 빛을 발했다는 뜻이다. 후배인 모차르트는 하이든에게 자신의 현악4중주 작품들을 헌정했고, 베토벤은 하이든에게 배우기 위해 고향인 독일 본을 떠나 빈으로 왔다.
아벨 콰르텟은 2013년 결성해 하이든 콩쿠르를 비롯해 제네바 국제 콩쿠르, 리옹 국제 콩쿠르 등에서 입상했다. 현악4중주 부문에서 한국팀 최초라는 타이틀도 여럿 달았다. 뮌헨 국립음대, 스위스 바젤 국립 음대, 빈 국립음대에서 현악4중주를 제대로 배운 팀이기도 하다. 멤버들이 '파격적 하이든'으로 소개한 작품들로 채운 이번 앨범이 첫 녹음이다. 공연에서도 같은 곡들인 작품번호 64-5 ‘종달새’, 74-1, 33-1, 76-3 ‘황제’를 연주한다.
가장 자신 있는 오스트리아 빈의 음악, 그중에서도 하이든으로 10주년을 맞은 아벨 콰르텟은 낭만 시대로도 범위를 넓힌다. 이들은 “내년에 멘델스존의 현악4중주 전곡(6곡)과 알려지지 않았던 곡도 연주할 계획”(윤은솔)이라고 했다. 또 “베토벤 전곡을 하지 않으면 현악4중주 팀이라 할 수 없다”(조형준)는 말로 그 이후의 행보도 암시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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