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기시다 개각, 주요인사 대부분 유임…"재선 앞두고 무풍지대 구축"
여성 장관 등용 늘려…역대 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개각 인선이 나온 결과, 실제 주요 보직을 맡은 장관들의 변동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정권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연내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재선을 앞두고 '포스트 기시다'가 될 수 있는 정적을 견제하는 등 당내 역학 변화를 꾀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선 위한 라이벌 견제…당 역학 구도 바뀐다
13일 아사히신문은 자민당의 파벌 수장들이 모두 이번 개각에서 유임될 것이라는 전망을 보도했다. 먼저 당 인사로는 자민당 내 두번째로 큰 파벌 '아소파'의 수장 아소 다로 부총재가 직책을 유지한다. 세번째 파벌인 '모테기파'의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도 유임될 예정이다.
이번 유임에는 본인의 재선을 고려한 기시다 총리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는 분석했다. 그간 기시다 총리와 아소 부총재, 모테기 간사장 세 명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여 정권 운영을 논의해왔다. 일본 정계에서는 이를 두고 '사실상 삼두정치가 아니냐'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총리와 집권 여당의 향방을 논의하는 인물들인 만큼, 이들은 차기 총리 물망에도 오르내린다. 특히 모테기 간사장의 경우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떨어지거나 총선 관련 이슈가 나올 때마다 '포스트 기시다'로 언급되던 인물이다. 모테기 본인도 차기 총리에 대한 의욕을 숨기지 않고 있기 때문에, 기시다 총리는 그를 유임시키지 않고 요직에서 제외할 경우 '반(反)기시다'로 돌아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는 "전략적 호혜 관계였던 모테기 간사장의 처우를 놓고 기시다 총리는 끝까지 생각을 거듭했었다"며 그의 고민을 언급하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가 생각한 해법은 오부치 유코 전 경제산업상이라는 견제구다. 자민당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오부치를 등용했는데, 그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으로 유명한 오부치 전 총리의 딸이다. 선대위원장은 자민당 내에서 간사장, 총무회장, 정무조사회장과 함께 4개 핵심 중책을 뜻하는 '당 4역'에 속한다.
오부치 전 경산상도 모테기파 소속이다. 다만 모테기파는 당내 기반이 탄탄하지 않기 때문에, 모테기 간사장을 둘러싸고 "제 아무리 간사장이어도 자기 파벌도 제대로 정리 못 하는 사람이 총리가 될 수 있겠느냐"라는 뒷이야기도 따라붙어 왔다. 그러나 오부치 전 경산상의 경우 아버지가 전 총리를 맡았고, 최초의 차기 여성 총리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이유로 등용과 동시에 존재감이 대폭 높아진 상황이다. 기시다의 '통 큰' 유임과 등용, 그리고 파벌 내 견제 구도까지 생성되면서 모테기파 안에서 기시다를 향한 반기를 들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여기에 기시다 총리는 아베파의 하기우다 고이치 정무조사회장의 유임도 결정했다. 이는 재선을 위한 아베파 포섭을 도모한 것이라고 아사히는 분석했다.
외무상·방위상 등 교체…여성 장관 늘려장관의 경우 11명이 새로 입각할 예정이며, 장관 6명은 그대로 직을 유지한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한 어민 설득과 경제 정책 등을 도맡은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산상, 고노 다로 디지털상 등은 유임됐다.
다만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 하마다 마사카즈 방위상, 일본 정부 공식 명칭인 '처리수'를 '오염수'로 발언해 논란이 일었던 노무라 데쓰로 농림수산상은 교체될 예정이다.
일본 언론은 특히 새 외무상에 임명될 가미카와 요코 전 법무상을 주목하고 있다. 기시다파로 분류되는 가미카와는 이번에 등용되는 여성 장관 중 한 명으로, 법무상 시절 옴 진리교 교주를 비롯해 사형수 13명의 사형 집행을 결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성 각료의 숫자도 늘어났다. 신생아정책 담당상에는 가토 아유코 의원이, 지방창생담당상에는 지미 하나코 의원, 부흥상에는 츠치야 시나코 의원이 등용된다. 이에 따라 기시다 내각의 여성 관료는 2명에서 5명으로 늘었으며, 이는 2000년의 1차 고이즈미 내각 때와 2013년 2차 아베 내각 때를 잇는 최다 기록이다.
무풍 선거 노리나…국민 지지는 글쎄일본 언론들은 이번 개각은 차기 선거를 파벌 갈등 없는 '무풍 선거'로 만들겠다는 기시다의 의지가 보이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전반적으로 현재 내각의 뼈대를 유지하는 소폭 개각인데다 자민당 내 파벌 간 안배에 더욱 신경썼다는 평가다.
다만 외부 인사 수혈 등이 없어 쇄신도는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사히는 "자민당 안에서 개각이 내향성을 띄어 오히려 국민 지지도는 멀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번 등용 인사들의 잠재적 리스크도 존재한다. 오부치 전 경산상의 경우 2014년 후원회 정치자금 허위기재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경산상 사임 이유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 도쿄지검 특수부가 가택수색을 하기 전 오부치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드릴로 파괴됐는데, 이 때문에 오부치 전 경산상은 본인의 이름을 딴 '드릴 유코'라는 별명이 항상 따라다닌다. 향후 정권 리스크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하기우다 정조회장의 경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다는 지적이 있다. 문부과학성은 얼마 전 재단에 과태료를 부과했고, 향후 정부는 해산명령을 청구할 방침이다. 옛 통일교 문제가 다시 비화하면 자연스럽게 하기우다 정조회장과 교단과의 접점이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또한 기시다 총리의 심복으로 불렸던 기하라 세이지 관방부장관이 연임을 고사하면서, 총리가 구심점을 잡는 데는 타격이 있을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기하라 관방부장관은 배우자의 전남편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 수사 중지를 위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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