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출판 시장 강타한 밴드 리더의 에세이
[김성호 기자]
에세이는 문학의 정수다. 세상과 마주한 인간이 삶 가운데 받은 인상을 글로써 담아낸 것이 바로 에세이다. 문학이 태동한 이래 만들어진 모든 기술이 활용될 수 있는 형식적 자유로움과, 그저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가치를 잡아채겠다 발버둥치는 노력을 한 편의 글 안에서 만날 수 있는 흥미로움이 있다. 자주 실패하고 말지만 가끔은 아름다움을 이루는 에세이를 많은 독자가 애정하는 이유다.
한국은 유독 에세이가 인기를 끄는 나라다. 시와 소설 등 문학의 여러 갈래가 고전하는 상황 속에서도 에세이만큼은 꾸준한 인기를 구가한다. 문학의 정수라 불릴 만한 예술적 가치를 가졌음에도, 독서 초심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턱 낮은 글이 또한 에세이이기 때문일 테다.
▲ 보통의 존재 책 표지 |
ⓒ 달 |
은퇴한 전설의 밴드 리더가 펴낸 에세이
새로운 에세이들도 매년 쏟아진다. 오늘의 독자는 오늘의 작가를 구하는 법, 독자들에게 새로 닿고자 자신을 갈아 넣는 작가들이 이 세상엔 넘쳐나는 것이다. 그로부터 지난 십 수 년 간 서점가엔 새로운 인기 에세이들이 여럿 나타났는데 <보통의 존재>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라 하겠다.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이 쓴 책으로, 음악 활동이 정점에 있던 2009년 첫 에세이로 출간됐다. 100일 만에 10만부가 팔릴 만큼 큰 인기를 누렸고 그로부터 수년 동안이나 꾸준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책은 이석원이 제 삶 가운데 마주한 여러 사건을 특유의 독특한 시각으로 잡아채 솔직하게 드러낸 기록이다. 음악과 문학적 성과를 독립적으로 평가받고자 한 그이기에 책에는 밴드며 음악과 관련한 내용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가정사를 비롯해 지나간 사랑, 우정에 대한 단상,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 가득 들어찼다. 적잖은 독자들, 특히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팬들은 그의 음악에 공명한 것만큼이나 그의 에세이에도 환호했다. 결코 밝지만은 않은 가정사를 꺼내어 담담하게 바라보는 태도로부터 독자들의 삶까지 돌아보도록 한다는 게 이 책에 자주 따라붙는 긍정적 평가다.
보기 드문 솔직함이 주는 특별한 인상
저자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점만으로도 에세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는 제가 좋아하는 이석원이라는 가수에게 한 발 다가설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할 테다. 또 누구는 저와 닮아 있어 공감할 수 있는 저자에게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다.
만약 나와 같은 독자가 있다면 가치관부터 태도며 취향, 기질과 성격에 이르기까지 자신과 완전히 다른 저자의 모습에 흥미를 느낄지도 모른다. 같으면 같은대로, 다르면 다른대로, 솔직함이란 꼭 그만큼 솔직한 감상을 얻어내곤 하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이 책에 대하여 '종종 이런 글쓰기를 나는 유서에서나 만났다'고 적었다. '일말의 응석도 없고 그렇다고 그 무언가를 호소하지도 않는다'고도 썼다. 그만큼 솔직하고 내밀한 기록이란 뜻이겠다. 그러한 기록을 공중에 그대로 공개한 용기만으로도 나는 그가 에세이스트라 불릴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
누군가에겐 위로를, 누군가에겐 즐거움을
경계성 인격장애와 우울증을 오래 겪었다는 고백, 불운하고 불행했던 가정사며 성장과정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일찍 결혼했다 일찍 이혼을 한 과거, 좋아하는 음식도 편하게 먹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된 건강, 제 어머니에 대해 '엄마만 없다면' 하고 수없이 되뇌었다던 애증의 감정 등이 여러 글 가운데 반복하여 등장한다.
보통이라면 꽁꽁 감추고 싶었을 이야기들을 바깥으로 꺼내어 바라보는 일련의 과정이 저자에게 치유며 안식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글이란 그렇게 타인이 해주지 못하는 위로를 전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 하나의 주제로 묶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글이 나오지만 특별히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다. 친구와 사랑과 관계 같은 것들이다. 책에는 거듭하여 관계맺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대목들이 등장한다. 저와 생각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 동류라는 동질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간절히 찾는 듯 보이는 그의 태도가 간절하게 느껴져서 애처롭다.
<보통의 존재>가 보여주는 이석원은 한없이 보통의 존재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특별하게 느껴진다. 누구는 그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누구는 내가 그렇듯 그와는 도대체 단 하나의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다고 놀라움을 표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솔직하게 제가 어떤 인간인지를 드러내고 있고, 그로부터 책을 읽는 독자가 스스로 제가 어떤 인간인지를 돌아보도록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알아갈수록 인간은 저를 보통의 존재로, 그래서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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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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