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 脫중국 지금이 기회"..김재욱 BNW회장, 볼리비아 '정조준'
SPC 설립 후 현지 수산화리튬 공장 건설 추진
블라인드 펀드 조성중, SMR·AI 반도체 투자 계획
"中 의외 선전, 韓 배터리 기업들 바짝 긴장해야"
남미의 중심 볼리비아 포토시 우유니에 있는 염호(소금호수). 해발 3600m의 높은 고도 탓에 숨이 가쁠 정도로 산소가 부족한 지역이다. 이곳 염호에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의 핵심 광물인 리튬이 소금처럼 녹아있다. 리튬은 리튬이온전지의 핵심 원료로 전세계적으로 생산량이 제한돼 있어 '하얀 석유'라고 불린다.
아무도 이차전지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을 때 에코프로비엠을 발굴한 김재욱 BNW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지난달 직접 이 볼리비아 염호를 찾은 이유다. 고지대라 숨쉬기가 어려워 산소호흡기를 빌려 써야 했고 피곤해 눈이 빨개질 정도로 힘든 일정이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국내 제조업의 주요 길목에서 꼭 필요한 매듭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김 회장은 차기 사업으로 볼리비아 리튬 광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 회장은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기흥 공장장과 삼성전자 사장을 역임한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다. 국내 최고 기업의 공장장 출신답게 현장을 발로 디뎌봐야만 했다. 김 회장은 이차전지 소재 기업 이엔플러스,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원자재 기업 코린도그룹,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업체 JS물산 등 3개사 경영진과 함께 볼리비아를 방문했다.
BNW인베스트먼트를 포함한 4사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볼리비아리튬공사(YLB)와 리튬 공급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향후 별도 법인을 설립해 볼리비아내에 수산화리튬 생산공장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연간 1만t 이상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김재욱 BNW 회장은 지난 11일 서울 역삼동 사옥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리튬의 80%가량을 공급받고 있다"며 "이 사업이 성공하면 중국 의존도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은 국가 경제의 사활을 걸 경쟁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회장은 "중국이 리튬 자원을 무기화하면 한국 배터리 3사의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가격 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며 "포스코 등 대기업들도 리튬 등 배터리 원료 확보를 위해 힘쓰고 있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의 갈등으로 잠시 주춤한 틈을 타서 한국이 볼리비아 지역의 질 좋은 리튬을 확보하는 방안을 공격적으로 추진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판단에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등으로 중국보다 한국 자본과 기업의 가치가 높아진 지금이 리튬 자원 발굴 및 생산 투자를 위한 최적의 시기다.
첫 단독 블라인드 펀드, “SMR에 관심”
김 회장은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메모리제조담당 사장, 삼성전자 기술총괄 제조기술 담당 사장, 삼성SDI 사장, 삼성 LED 사장을 거친 뒤 2013년 BNW인베스트먼트를 창업했다. 주로 반도체. 2차전지 등 첨단 산업과 정보기술(IT)분야에 투자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2016년 적자 상태였던 에코프로의 이차전지 사업부를 물적 분할한 후 SK증권PE, 기업은행PE와 함께 600억원을 투자해 지분 30%를 확보했다. 이후 BNW는 투자금의 5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며 성공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했다.
BNW는 현재 단독으로 첫 블라인드펀드를 구성하고 있다. 블라인드 펀드란 사전에 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금을 조성한 뒤 투자 대상을 모색하는 방식의 펀드를 말한다. 그동안 좋은 성과를 보여온 덕분에 투자자들로부터 반응이 좋다. 현재까지 2300억원을 모집했다. 연말까지 5000억원을 모으는 것이 목표다. 이 경우 BNW의 운용자산(AUM)은 1조원을 넘기게 된다.
김 회장은 앞으로도 국가의 다음 먹거리가 될 만한 첨단 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볼리비아 리튬 사업도 그중 하나다. 볼리비아는 칠레, 아르헨티나와 함께 세계 최대 리튬 매장 국가다. 하지만 기술 부족 등의 이유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리튬 생산이 늦어졌다. 최근 중국, 러시아 등 해외 기업들과 계약을 통해 리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최대 배터리셀 기업인 중국 닝더스다이(CATL)도 볼리비아 리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기업중 볼리비아 리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은 아직 없다.
김 회장은 "1차로 순도 98.5%의 탄산리튬 샘플 3000t을 공급받아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테스트할 계획"이며 "이후 7000t으로 공급량을 늘린 후 장기적으로는 볼리비아에 수산화리튬 제조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주력하고 있는 인산철리튬(LFP) 배터리에는 탄산리튬이 들어간다. 이보다 순도가 높은 수산화리튬은 국내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니켈코발트망간(NCM) 등 삼원계 배터리에 쓰인다.
볼리비아 리튬 사업을 위해 BNW는 이엔플러스, 코린도그룹, JS물산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 기업들은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다음 투자 대상으로 에너지와 인공지능(AI) 반도체 분야를 눈여겨 보고 있다. 그는 "전기차 시대에 필요한 전기를 계속해서 화석연료로 만들 수는 없다"며 "우리나라에서는 태영열, 풍력보다는 원자력발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소형모듈원전(SMR) 쪽을 유망하게 보고 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가르침
김 회장은 3년간 보장된 삼성전자 자문역 기간 1년을 남겨두고 10년전 BNW를 설립했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에서 1등을 한 것처럼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도 1등 기업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투자 경력이 전무했던 그에게 선뜻 돈을 맡길 투자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3년 반도체 세정 및 코팅 장비인 코미코, 2016년 이차전지 양극재 업체인 에코프로비엠에 투자해 잇따라 성공을 거두자 업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제이오, 성일하이텍, 더블유씨피, 미래세라텍 등도 투자 성공 사례로 꼽힌다. 성일하이텍은 폐배터리 재활용 분야 선두 업체다. 역시 배터리 재활용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던 2019년 이 기업에 투자했다.
김 회장이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그 기업이 성장 산업에 속해 있는지다. 또 정말 기술이 있는지와 최고경영자(CEO) 등 사람을 본다. 유행이나 트렌드에 따라 투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가 투자 업계에 몸담은 과거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한테 받은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했다.
김 회장은 "제조나 투자 업계나 일하는 기본은 같다"며 "이 회장이 강조했던 '업의 본질'을 정확히 알면서 일하는 일하는 것, 그리고 반대가 없는 사업은 하지 않는 것 두 가지를 지켜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야 그 결정의 허점을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BNW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다른 사모펀드와 달리 삼성전자에서 쌓은 경영 노하우와 그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투자한 기업들의 CEO들로부터 자문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韓 이차전지 기업들 바짝 긴장해야”
반도체, 이차전지 기업에 투자해 성공했지만 그는 국내 소부장 기업의 미래를 무조건 낙관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디스플레이는 이미 중국에 따라 잡혔고, 반도체는 메모리를 제외하면 미국, 일본, 대만 등 해외 경쟁 기업에 밀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한국이 선전하고 있는 이차전지 분야도 마찬가지다. 김 회장은 "국내 이차전지 기업들이 긴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개발한 LFP 배터리가 당초 예상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시장을 차지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중국을 따돌려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투자업을 시작하면서 결심한 것이 있다. 절대 행운을 바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성장산업 분야에서 기술이 확실한 기업,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경영진이 함께하는 기업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제 역할"이라며 "국가 경제의 든든한 바탕이 되는 기업을 육성하고 엑시트(투자회수) 한 이후에 그 회사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투자자로서의 임무를 다 하겠다"고 말했다.
◆김재욱 BNW 인베스트먼트 회장 프로필
한양대 전자통신공학과를 졸업한 후 1978년 삼성전자에 공채로 입사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기흥공장장 부사장을 거쳐 2005년 반도체 총괄 메모리제조담당 사장에 올랐다. 삼성전자 제조직군 출신 첫 사장이었다. 이어 삼성전자 기술총괄 제조기술 담당 사장, 삼성SDI 사장, 삼성LED 사장을 지냈다. 삼성 반도체 역사의 산증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 2월 삼성전자 자문역을 그만두고 사모펀드인 BNW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들을 발굴해 투자하고 성장을 돕는데 주력하고 있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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